•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2장 기보법의 발달과 악보
  • 3. 사대부와 풍류객이 펴낸 악보
  • 19세기 악보
권오성

19세기에 들어오면 음악에 대한 유흥적 수요는 더욱 증가하였다. 한양을 비롯한 상업 도시가 급속도로 발달함에 따라 음악에 대한 수요는 더욱 늘어났고 다양해졌다. 가객·광대·소리패 등의 활동에 따라 시정 문화(市井文化)가 본격적으로 꽃을 피우게 된 것도 이 시기이다. 가객과 풍류객은 가곡집과 악보를 여러 종류 편찬하여 시조·가곡·영산회상 등과 같은 민간 풍류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광대와 소리패는 판소리를 크게 발전시키고 있었다.134)권도희, 「19세기의 음악 유통」, 『한국 음악사 학보』 29, 한국 음악사 학회, 2002 ; 김학성, 「고전 시가와 예술사의 관련 양상(3)-18∼19세기를 중심으로, 18, 19세기 예술사의 구도와 시가의 미학적 전환-여항/시정 문화와의 관련 양상을 중심으로-」, 『한국 시가 연구』 11, 한국 시가 학회, 2002 참조.

19세기에도 풍류객은 악보를 활발하게 편찬하였다. 이 시기의 대표적인 거문고 악보로는 『구라철사금자보(歐邏鐵絲琴字譜)』·『삼죽금보』·『현금오음통론』·『죽취금보(竹醉琴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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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철사금자보』
『구라철사금자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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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철사금자보』는 실학자인 이규경(李圭景, 1788∼?)이 엮은 양금(洋琴, 서양금) 악보이다. ‘구라철사금(歐邏鐵絲琴)’은 이름 그대로 구라파(歐羅巴)의 철 줄을 얹은 금(琴)이라는 뜻이다. 이규경은 이 악보의 편찬 동기를 양금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내용은 창래(刱來)·율명(律名)·자점(字點)·의용피자(宜用彼字)·제형(製形)·장기(藏棄)·고현(鼓絃)·금명(琴銘)·전고(典攷)의 아홉 항목으로 나누었고, 양금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경위·타는 법·율명 등을 자세히 설명하였다. 악보는 율자보로 기보되어 있으며, 영산회상·가곡·자진한잎·시조 등의 악보가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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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금
양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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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라철사금자보』는 5음의 계면조가 현재와 같은 3음 내지 4음의 음계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 주고 있으며, 속칭 자진한닢(紫芝羅葉)과 시조의 악보는 시조창의 원류를 찾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구라파의 악기인 양금이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에 들어온 경위 등 당시의 음악을 연구하는 데 있어 귀중한 악보이다.

『삼죽금보』는 이승무(李升懋)가 엮은 거문고 악보인데 육보로 기보하였다. 보허사·여민락·도드리·영산회상·평조회상·가곡·가사 등 많은 곡이 실려 있다. 역대 거문고 악보 가운데 가장 광범위하고 상세하다.

서문에 “성상 즉위 원년 신축년 음력 11월 원산(元山) 사람 이승무가 서문을 쓰다.”라는 내용이 있어서 1721년(경종 1)에 편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거문고의 명인인 홍기후(洪基厚)의 제자 이승무가 거문고 가락 및 연주법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 이 악보를 편집한 것이라는 내용도 들어 있다.135)김종수, 「삼죽금보 서와 범례」, 『민족 음악학』 19, 서울 대학교 동양 음악 연구소, 1997 참조. 그러나 악보의 내용을 검토한 연구 성과에 따르면, 악곡이 『유예지』보다도 오늘날의 음악에 가깝기 때문에 편찬 연대를 1721년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고 하여 대개 1864년(고종 1)으로 추정하는 것이 통설이다.136)최종민, 「삼죽금보 해제」, 『음대 학보』 4, 서울 대학교 음악 대학교 학생회, 1968, 49∼54쪽.

기보법은 16정간보에 육보를 사용하였고, 악보는 보허사·여민락·본환입·소환입·영산회상·평조 영산회상·우조 타령·계면가락제이(界面加樂除耳)·군중취타·노군악(路軍樂)·가군악(家軍樂)·소보허사 등이 실려 있다.

『삼죽금보』는 많은 거문고 악곡을 수록하고 있고, 정조 때에 출판한 『유예지』와 현대 음악 사이의 중간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음악사 연구 에 매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무녀시조(巫女時調)·월곡(月曲) 등과 같은 새로운 시조보가 등장하기도 하고 12가사의 악보 등도 포함되어 있어서 시조와 잡가 연구에도 많은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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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죽금보』
『삼죽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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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오음통론』은 1886년(고종 23)에 윤용구가 편찬한 거문고 악보로 필사본이다. 정간이 없는 육보로 기보된 이 악보는 우조 장리음(羽調張理音)·영산회상·계면 가락조·양청환입(兩淸還入)·우조 가락조·취타조·본환입(本還入)·세환입(細還入)·우조 초삭대엽·이삭대엽·중거(中擧)·평거(平擧)·두거(頭擧)·삼삭대엽·계면 초삭대엽·소롱이(搔聾耳)·율당(栗糖)·언롱(言弄)·평롱(平弄)·계락(界樂)·우락(羽樂)·언락(言樂)·편락(編樂)·편(編)·환계락(還界樂)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죽취금보』는 1890년(고종 27)에 편찬한 거문고 악보로 필사본이다. 표지에 이름이 ‘금보(琴譜)’라고 쓰여 있으나 서문에 “광서(光緖) 경인년(1890) 8월 죽취만학(竹醉晩學)이 유영 양로당(柳營養老堂)에서 서문을 짓 다.”라고 한 내용이 있어 『죽취금보』라고 이름을 붙였다. 한자를 차용한 한자 육보로 기보되어 있다. 거문고를 연주하여 바른 마음을 갖게 하고 후대에 당시의 음악을 전하려는 의도에서 편찬하였다고 하는데, 책의 형태는 병풍 같은 모양으로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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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금오음통론』
『현금오음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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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보는 상령산에서 시작하여 중령산·잔령산(孱靈山)·가락·상현도드리·잔도드리·하현도드리·염불·타령·군악의 10곡이 실려 있다. 편찬 연대가 분명한 이 악보는 편찬 연대가 불분명한 다른 악보와의 비교 연구를 통해 악보의 연대를 추정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

이후에도 거문고 악보는 계속 활발하게 편찬되어 1861년(철종 12)으로 추정하는 『우헌금보(愚軒琴譜)』, 고종 무렵으로 추정하는 『희유(羲遺)』·『원객유운(園客遺韻)』, 편찬 연대 미상의 『학포금보(學圃琴譜)』 등이 나왔다. 20세기 초에도 계속 이어져 『증보고금보(增補古琴譜)』 외에 1916년에 『방산한씨금보(芳山韓氏琴譜)』가 편찬되었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는 거문고 악보 외에도 양금 악보도 활발하게 편찬되었다. 이는 서양 악기인 양금의 보급과 연주 행위가 그만큼 활발해졌음을 의미한다. 그리하여 1884년(고종 21)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거문고와 양금의 악보인 『아금고보(峨琴古譜)』, 1892년(고종 29)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서금가곡(西琴歌曲)』, 편찬 연대 미상인 『서금보(西琴譜)』·『일사금보(一蓑琴譜)』 등이 계속 나왔다. 그뿐 아니라 1893년(고종 30)에는 윤용구가 중국의 칠현금(七絃琴)을 연주하기 위해 『휘금가곡보(徽琴歌曲譜)』를 편찬하기도 하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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