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3장 기록의 역사로 본 음악 문헌
  • 3. 국가 행사의 꼼꼼한 기록, 의궤
김세종

의궤는 국가의 주요한 행사를 기록한 책이다. 왕실의 행사가 있을 때 임시 기구인 도감(都監)을 두어 행사를 주관하게 하며, 도감에서는 행사 준비 과정 일체를 날짜순으로 기록하는데 이를 ‘등록(謄錄)’이라고 한다. 행사가 끝나면 도감은 해체되고 별도로 의궤청(儀軌廳)을 설치하여 행사의 전말을 기록한 의궤를 편찬하는데, 이때 등록이 기본 자료가 된다. 조선 왕조의 의궤는 2007년 6월 세계 기록 유산에 등재되어 세계적으로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더욱이 의궤는 의식 자체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논의 과정, 인적·물적 자원의 동원 사례, 인력의 노임(勞賃) 지급 사례까지 기재하고 있다. 또한 의식 절차에 따른 도식(圖式), 복제(服制) 등 당시의 풍속적인 면모에 이르기까지 각종 행사의 전모를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어 그 가치를 더하고 있다.

따라서 의궤는 왕이나 세자의 가례(嘉禮), 왕·세자·왕비 등의 책례(冊禮), 국장(國葬), 산릉(山陵) 묘소의 축조, 선대왕(先代王)·왕비 등에 대한 존호(尊號)의 가상(加上) 또는 추상(追上), 궁전이나 능원(陵園)의 축조·개수 등의 왕실 행사 때 제작되었다. 그뿐 아니라 사신을 영접하거나 공신(功臣)을 책봉(冊封)할 때, 또는 어진(御眞)을 도사(圖寫)하거나 어실(禦室)을 개 조할 때도 작성되는 등 종류가 다양하다.

악기를 제작하거나 제기(祭器)를 조성할 때에도 도감을 설치하고 의궤를 편찬하였는데, 네 점만이 현존한다. 『제기악기도감의궤(祭器樂器都監儀軌)』는 1624년(인조 2) 3월부터 11월에 걸쳐 제기악기도감에서 제기·제복(祭服)·악기·의장(儀仗) 등을 만든 기록이다. 『인정전악기조성청의궤(仁政殿樂器造成廳儀軌)』는 1744년(영조 21) 10월부터 이듬해인 1745년 5월에 걸쳐서 악기조성청에서 불에 탄 창덕궁(昌德宮) 인정전(仁政殿)의 악기를 만들 때의 기록이다. 1744년 10월 14일 밤 인정전에 화재가 발생하여 전정(殿庭)에 배열된 악기가 불타자 편종(編鐘), 편경(編磬) 등을 개조하게 된 것이다. 이때 만든 악기는 5월 13일의 기록인 ‘인정전헌가악기별단(仁政殿軒架樂器別單)’에 기록되어 있는데, 편종 32매, 편경 32매, 건고(建鼓) 1틀, 응고(應鼓) 1좌, 삭고(朔鼓) 1좌, 어(敔) 1좌, 축(祝) 1좌 등 일곱 종의 아악기를 제작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인정전악기조성청의궤』는 악기 조성의 전말을 기록한 책으로 『악학궤범』처럼 중요한 음악 문헌이다. 『악학궤범』이 조선 초기 음악 이론과 실제 연구를 위한 필수적인 음악 문헌인 것처럼 영조대(1725∼1776) 악기 제작과 관련된 수많은 정보를 지닌 『인정전악기조성청의궤』는 조선 후기 음악사 연구는 물론이고, 나아가 조선시대 문화사 연구에도 필수적인 문헌 사료의 하나이다.149)송방송, 「악기조성청의궤(樂器造成廳儀軌)의 사료적 가치-『인정전악기조성청의궤(仁政殿樂器造成廳儀軌)』를 중심으로-」, 『국악원 논문집』 6, 국립 국악원, 1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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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기악기도감의궤』
『제기악기도감의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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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景慕宮樂器造成廳儀軌)』는 1776년(정조 즉위년) 9월부터 1777년 5월까지 악기조성청에서 악기를 만들 때의 기록이다. 정조는 즉위하자마자 자신이 사도 세자(思悼世子)의 아들임을 천명하고 억울하게 돌아가신 사도 세자를 위해 경모궁을 지었는데, 그곳에서 사용할 악기를 제작하는 데만 무려 43개 분야 148명의 장인을 동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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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의 악기 그림
『경모궁악기조성청의궤』의 악기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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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악기조성청의궤(社稷樂器造成廳儀軌)』는 1803년(순조 3) 11월부터 1804년 5월까지 사직에서 사용할 악기를 제작하는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였다. 의궤 내용 중 ‘계사(啓辭)’에 의하면 1803년(순조 3) 11월 2일 밤에 사직의 악기고(樂器庫)에 화재가 일어나 풍물(風物)과 관복이 불타 버렸는데, 이때 편종 일곱 개와 석경(石磬) 15매가 파손되었다고 한다. 즉시 악기조성청을 설치하여 파손된 편종과 석경을 개조하려 하였으나 겨울이라 주재료인 옥(玉)을 구하기 어려워 이듬해 봄인 4월 28일에 편종 여덟 매와 석경 17매를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오늘날 다양한 종류의 의궤를 통하여 의례 공간과 함께 의례 절차, 의례 음식, 제기, 악기, 의장물, 의례 음악, 의례 무용 등이 조화된 왕실 행사의 생생한 현장 모습과 진행 과정 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의궤는 노래, 춤, 악기 제작은 물론 음악과 관련된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에, 조선시대 음악 문화사 연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음악 문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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