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3장 기록의 역사로 본 음악 문헌
  • 5. 음악을 집대성한 관찬 서적
  • 『세종실록악보』
김세종

『조선 왕조 실록』은 태조에서부터 철종 때까지 25대 472년간(1392∼1863)의 역사 기록으로 총 1,893권 888책으로 구성되었다. 각 왕을 중심으로 연·월·일에 따른 편년체(編年體)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사건을 담고 있는 역사 기록의 보물 창고이다. 따라서 조선시대 음악사를 연구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귀중한 역사 기록이다.

앞서 조선시대 음악적 흐름을 분류하였을 때 첫 번째에 해당하는 태조에서 명종까지는 태조의 지용(智勇)과 태종의 영명(英明), 그리고 세종의 제례작악(制禮作樂)과 문종의 숭문열무(崇文烈武)의 정신을 토대로 여러 제도를 완성한 시기이다. 특히 문화적 황금기인 세종대에는 음악 제도의 기틀이 마련된다. 곧, 세종대에는 악장 제작, 율관 제작, 아악기·당악기·향악기에 따른 악기 제작, 제사와 조회의 아악 정비, 회례와 연향의 향악 정비, 복식 제작, 악공(樂工)·악생(樂生)·가동(歌童)의 선발 기준안 정비, 악곡 제작, 회례와 연향의 춤 정비, 악보 창안, 악서 찬술 등을 집대성하였다. 이러한 세종대의 음악 정비는 조선 후기에 이르기까지 면면히 전승되어 우리나라 음악 제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 그 과정을 바로 『세종실록(世宗實錄)』에서 추적할 수 있다.

『세종실록』은 조선 제4대 국왕인 세종이 재위한 31년 7개월(1418년 8월∼1450년 2월)간의 역사를 기록한 사서이다. 『세종실록』은 약칭이고, 정확한 명칭은 『세종장헌대왕실록(世宗莊憲大王實錄)』으로, 여기에서 세종(世宗)은 왕의 묘호(廟號)이고, 장헌(莊憲)은 시호(諡號)이다. 모두 163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 권136에서 권147까지가 악보이며, 이를 약칭하여 『세종실록악보(世宗實錄樂譜)』라 한다. 여기에 수록된 음악들은 아악(雅樂)과 신악(新樂)으로 크게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중 아악은 주희(朱熹)의 『의례시악(儀禮詩樂)』과 임우(林宇)의 『석전악보(釋奠樂譜)』에 근거하여 지었으며, 신악은 전해 내려오는 고취악(鼓吹樂)과 향악(鄕樂)에 의거하여 제작하였다. 악보 편찬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정인지(鄭麟趾)가 작성한 ‘아악보(雅樂譜)’ 서(序)에 실려 있다.

이 밖에 종묘, 사직, 석전(釋奠) 등의 국가 제향에 사용하기 위하여 제정된 악장을 갖추고 있어 정대업(定大業), 보태평(保太平), 발상(發祥), 봉래의(鳳來儀) 등의 신악을 수록하고 있다. 이 가운데 정대업은 조종(祖宗)의 무공(武功)을, 보태평은 조종의 문덕(文德)을 각기 노래한 무악(舞樂)으로 세종대 에는 회례(會禮) 음악이었으나, 세조대에 이르러 이 두 곡이 채택되어 오늘날 종묘 제례악으로 자리 잡았다.

조선 초기에는 왕조 창업의 정당성을 노래하고, 왕조를 세운 태조의 무공을 칭송하며, 태평성대를 염원하고 송축하는 악장을 주요 행사 때마다 지었다. 대표적인 것이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를 노랫말로 삼은 여민락(與民樂), 치화평(致和平), 취풍형(醉豊亨) 등인데, 모두 『세종실록악보』에 수록되어 있다. 또한 권147에는 세종대에 윤회(尹淮)가 지은 봉황음(鳳凰吟)의 악보가 실려 있는데, 조선의 문물제도를 찬미하고 왕조의 태평을 기원한 송축가(頌祝歌)이다. 879년(헌강왕 5) 처용랑(處容郎)이 지은 신라 향악인 처용가(處容歌)의 악곡 위에 봉황음이라는 가사만 붙인 것이다. 봉황은 중국 요순시대부터 성왕(聖王)이 나올 때마다 세상에 나타난다 하여 상서(祥瑞)로 여겼는데, 봉황음은 태조의 건국을 성왕이 나타남에 비유하여 붙인 이름이다. 오늘날 봉황음의 가사는 『악학궤범』 학연화대합설(鶴蓮花臺合設)에 수록되어 있고, 악보는 『세종실록악보』와 『대악후보』에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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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악보』 중 봉황음
『세종실록악보』 중 봉황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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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악보』가 음악사에서 차지하는 가치와 위상은 매우 높다. 왜냐하면 현재 실물로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악보이며, 전래되는 고취악과 향악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새롭게 창안된 신악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를 통해 조선 전기와 그 이전의 음악 문화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그뿐 아니라 『세종실록악보』는 중국에 남아 있는 고악보(古樂譜)와 비교해 보아도 상당히 발전된 악보임을 알 수 있다. 정간보(井間譜)로 대표되는 『세종실록악보』는 새롭게 창안한 ‘정(井)’이란 형식을 통해 음의 길이를 규정할 수 있었고 음고와 가사, 장고와 장단 등을 함께 기록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행마다 32개의 ‘정’으로 구성하여, 음악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2행에서 6행의 체제에 이르는 여러 다양한 형식의 음악을 기록할 수 있도록 하였다. 이처럼 음악의 기록, 연주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정간보라는 총보(總譜) 형식으로 표현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동양 음악사에서 중요한 한 획을 그었다고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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