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3장 기록의 역사로 본 음악 문헌
  • 5. 음악을 집대성한 관찬 서적
  • 『악장등록』
김세종

선조에서 영조까지는 조선 중기에 해당한다. 이 시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며 사회적으로 많은 손실과 변화를 가져왔다. 마찬가지로 세종 이래 찬연대비(燦然大備)하였던 음악이 모두 흩어지고, 음악을 연주할 수 있는 악공과 악생은 포로가 되거나 죽음을 맞았다. 따라서 전란으로 손실된 악기들을 제작하기 위하여 임진왜란 이후인 1624년(인조 2)과 병자호란 이후인 1646년(인조 24)에는 악기도감을 설치하였다. 이 밖에도 1627년(인조 5) 악기수개청(樂器修改廳)을 두었고, 1682년(숙종 8)에는 종묘 영녕전(永寧殿)에 쓸 방향(方響)을 만들기 위해 악기조성청을 처음으로 설치하였다.

이와 같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손실된 옛 음악을 복구하기 위한 과정과 노력을 『악장등록(樂章謄錄)』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다. 『악장 등록』은 1637년(인조 15) 5월 23일부터 1753년(영조 29) 9월 3일까지 116년 동안 장악원(掌樂院)에서 일어난 주요 사건을 일기체로 편찬한 것이다. 총 1책 8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내용상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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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명전야진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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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는 악공과 악생의 충원, 습악(習樂), 급료에 관한 것이다. 성종 때 악공·악생의 총인원은 971명이었으나 임진왜란 이후 크게 감소하자, 도별로 인원을 할당하여 선상(選上)하였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또한 봉족(奉足), 가포(價布), 복호(復戶), 가자(加資), 반상(頒賞) 등의 규정이 실려 있는데, 당시 악공 및 악생은 녹봉이 없어 봉족이 내는 가포를 받아 생활하였으며, 민가에 기숙하며 장악원에 출퇴근하게 하였다는 기록도 전한다. 따라서 『악장등록』은 당시 악인의 신분과 생활상, 잡직(雜織)의 운영 방식을 보여 주는 귀중한 사료이다. 둘째는 종묘 제례악의 복설(復設)에 관한 내용이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종묘가 불타고 악공과 악생이 포로가 되거나 도망하여 종묘 제례악이 10년간 중단되었는데, 종묘의 재건 과정 및 악공·악생의 충 원과 훈련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셋째는 악기의 제조 및 무역에 관한 내용이다. 전란으로 손실된 옛 음악을 복구하기 위하여 악기도감, 악기수개청, 악기조성청을 설치하고 이를 운영한 내용이 실려 있는데, 새로 제조한 악기의 명칭, 수량, 새로운 제조 방법, 책임자 등을 기록하였다. 전란으로 인해 악기장(樂器匠)과 황엽장(黃葉匠)이 죽거나 도망하자 아악기는 주로 중국에서 수입하였는데, 특히 생황(笙簧)을 여러 차례 수입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밖에도 『악학궤범』의 복간에 관한 내용과 청나라 칙사(勅使)의 환영에 관한 내용도 실려 있어 조선 후기의 음악사 연구에 귀중한 사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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