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4장 음악사의 또 다른 흔적들
  • 1. 그림 속 음악 문화의 흔적
  • 음악 문화의 흔적과 음악 도상학
송혜진

음악 문화의 흔적은 문자나 악보 기록 외에 그림 속에서도 만날 수 있다. 인류 문명 초창기의 동굴 벽화에서부터 훗날 독자적인 예술 영역으로 발달한 회화, 조각, 공예 등의 미술품 속에 춤추고 노래하며 악기를 연주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출 때 사용하던 악기, 소도구 등의 음악 유물은 무형(無形)의 시간 예술인 음악사를 간직한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그림과 음악 유물은 문자 기록 이전의 음악사를 연구할 수 있는 실질적인 자료일 뿐만 아니라 상상과 창조의 근원이라는 점에서 소중하다. 물론 조형 작품에 표현된 음악과 춤에 관한 모든 내용이 충실한 ‘역사 기록’의 의미와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것은 아니다. 도상의 제작 시기와 목적, 작가의 음악에 대한 인식 정도에 따라 음악 사료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밀한 자료 해석 없이 ‘사실’로 받아들이는 방식의 도상 활용은 위험한 일로 지적되고 있다. 따라서 도상 자료의 발견과 수집, 분류, 해석 방법을 거쳐 조형 예술에 표현된 음악과 춤의 시대적·문화적 의미를 찾아내는 것이 중요한데, 이것을 음악학 분야에서는 음악 도상학(音樂圖像學)이라고 한다.

한편, 음악 유물 등의 고고학 자료는 문자 기록과 함께 음악사 연구의 중요한 연구 대상이다. 특히 음악 고고학 자료는 문자 기록 시대 이전의 음악 문화 및 문자 기록에서 소외된 음악 문화의 흔적을 살피는 데 매우 유용하다. 고대 음악 유물의 발굴, 수집, 연구, 재현 등의 작업을 통해 음악사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연구는 음악 고고학(音樂考古學)이라 한다. 이 밖에 악기 유물은 악기학(樂器學)의 관점에서 악기의 변천 과정을 살피는 데 중요하다.

음악 도상 연구는 음악을 기록과 악보 중심으로 연구하는 음악사 연구에 비해 역사가 짧다. 음악 도상학은 원래 미술품에 표현된 종교와 문화를 연구하는 도상학의 한 갈래로 출발하였다. 도상학이란 작품의 일정 주제, 또 그 안에 포함된 개별 형태, 개별 형태의 상징물(attribute), 상징(symbol), 알레고리(allegory)에 대한 일종의 ‘형상 프로그램’을 파악하고, 다시 그 모든 개체를 종합하여 해석하도록 하는 인문학적 미술사 연구 방법론이다. 도상학 연구에서는 맨 먼저 작품에 보이는 모든 대상을 있는 그대로 서술하며, 두 번째 단계에서 작품에 묘사된 사물들의 관계를 밝혀 ‘주제’를 찾아 읽어 낸다. 그리고 세 번째 단계에서는 작품에 내재된 ‘의미’와 ‘내용’을 드러낸다. 이와 같은 연구는 도상의 의미를 포괄적으로 읽고 분석하는 인문학자들이 주도하였으며 점차 작품에 표현된 여러 가지 상징과 주제, 그리고 소재가 지닌 분야별 연구로 확장되었다.159)에케하르트 캐멀링, 노성두 외 옮김, 『도상학과 도상 해석학』, 사계절, 1997.

도상학의 한 갈래인 음악 도상학은 서양의 바로크(baroque) 이전의 음악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연구에 활기를 불어넣기 시작하였다. 고음악 연구자들은 문자 기록만으로는 부족한 악기와 악기 연주 방식 등을 도상을 통해 보완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특정 악기의 연주에 관한 연구가 주류를 이루었지만 점차 각 시대의 합창 양식, 악기 배치, 연주 기법, 작곡가 연구, 그림 속 악보 등의 연구까지도 수행하게 되었다.160)허영한, 「도상학(圖像學)과 음악학-음악 안에서의 문화 상징에 대한 탐구-」, 『낭만 음악』 4(통권 20호), 낭만 음악사, 1993 가을 참조.

서양의 음악 도상학자들은 서양 문화사의 첫 장에서 만나는 기원전 2000년 전의 그리스 조각품 중 리라(lyra)를 연주하는 악사상(樂士像)이라든가, 기원전 1400년 전의 이집트 벽화에서 하프(harp)를 연주하거나 목이 긴 류트(lute)를 연주하는 여인의 모습, 탬버린같이 생긴 악기를 두드리며 춤을 추는 무희의 모습에 주목하는 한편, 고대 그리스의 유물, 서양의 중세 성당에 남아 있는 벽화나 조각품을 비롯한 수많은 미술품에 각 시대를 대표하는 악기의 모습, 연주 형태에서 종교적·문화적 상징성과 음악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실들을 읽어 냈다.

그 결과 현재까지 서양 음악 연구에서 도상 자료를 이용한 음악사 연구에서는 악기의 구조와 형태, 악기 연주 방법, 악기와 성악의 어울림, 악보 등의 음악과 관련된 문헌, 연주의 공간 배열과 악기 위치, 음악의 청중, 무대와 연주 공간, 음악의 사회적 역할, 음악가의 초상, 상징주의와 우화(寓話), 음악 학습 등을 주요소로 다루었다.161)김병규, 「음악의 도상학적 연구」, 『논문집』 12, 서원 대학교, 1983, 645∼663쪽.

이와 같은 연구 방법은 동아시아 문명권, 인도와 남미 문화권의 음악 도상 연구에도 영향을 끼쳤다. 고대 중국의 한대(漢代)의 화상석(畵像石), 실크로드 문명의 보고(寶庫)인 둔황(敦煌) 벽화 및 중국 회화의 명편을 널리 소개하고, 연구하였다. 이 밖에도 인도 문명과 남미의 잉카 문화유산으로 전하는 수많은 음악 도상이 흥미진진한 음악 문화의 장면을 간직한 채 연구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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