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4장 음악사의 또 다른 흔적들
  • 2. 우리나라의 주요 음악 유물과 종류
  • 관악기
  • 함경북도 웅기군 굴포리 서포항 출토 골제 적
송혜진

함경북도 웅기군 굴포리 서포항에서 출토된 골제(骨制) 적(笛)164)김용간·서국태, 『서포항 원시 유적 발굴 보고서』, 『고고 민속 논문집』 4, 고고학 연구소, 1972, 116쪽 ; 송방송, 『한국 음악 통사』, 일조각, 1984, 41쪽의 각주 21 참조.은 한반도에서 발굴된 가장 오래된 음악 유물이다. 해안가에 자리 잡은 굴포리는 1940년대부터 선사시대 유적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1963년과 1964년에 이루어진 발굴 과정에서 구석기시대부터 청동기시대에 이르는 유물이 발굴 되었다.165)한창균, 「북한 지역의 구석기 문화」, 『우리나라의 구석기 문화』, 연세 대학교 출판부, 2002, 108쪽.

이곳에서 출토된 골제 적은 굴포리 유적지의 청동기시대 지층(地層)에서 다양한 석기, 질그릇, 토제 조각품, 조개껍질 등과 함께 발굴되었다. 북한에서 조사 발굴하였기 때문에 국내 학계에는 사진 자료와 발굴 보고서에 간단히 도해된 내용만 소개되었을 뿐이며, 북한 학자들은 골제 적의 제작 연대를 기원전 2000년경으로 추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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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제 적
골제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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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제 적 추정 복원도
골제 적 추정 복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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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골제 적은 관의 길이는 17.3㎝, 관의 너비는 1㎝이며, 여기에 일곱 개의 지공(指孔)이 뚫려 있다. 관의 한쪽 끝은 온전하나 다른 한쪽은 파손된 조각이 떨어져 나간 상태이다. 형태가 온전한 관의 끝부분에는 고리가 매달려 있다. 또 파손된 다른 한쪽에는 취구(吹口)로 보이는 구멍의 흔적이 일부 남아 있고, 복원도(復原圖)166)문화재 관리국 문화재 연구소, 「서포항 유적」, 『북한 문화 유적 발굴 개보』, 문화재 관리국, 1991, 468∼480쪽 및 479쪽의 그림 57.를 보면 구멍을 뚜렷하게 그려 넣은 것으로 보아 골제 적의 형태를 횡적(橫笛)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파손된 조각을 이어 붙인 복원도에서는 사진상으로 보이는 지공 일곱 개 외에 3번과 4번 지공 사이에 두 개의 구멍이 더 보이는데, 이것은 완전한 원형을 유지하고 지공과의 거리가 비교적 균등한 다른 구멍과 형태가 다르다. 지공 외에 자연적으로 발생한 구멍이라고 판단된다. 또 취구 위치에 있는 구멍의 크기는 지공과 같다.

한편, 기원전 2000년 전의 유물인 골제 적을 누가, 무슨 목적으로 사용하였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 송방송은 『한국 음악 통사』에서 골제 적을 만든 이들을 신석기시대의 고아시아인 또는 청동기시대의 예맥족(濊貊族)일 가능성과 제천 의식(祭天儀式)에 사용되거나 연주용이었을 가능성에 대해 포괄적으로 추정한 바 있다.167)송방송, 「상고 사회의 관악기」, 『한국 음악 통사』, 일지사, 1984, 36∼38쪽. 그리고 권오성은 우(禹)나라의 동이족이 만든 갑문(甲文)·골문(骨文)에서 볼 수 있듯이 일종의 제사 의식의 의물(儀物)로서 점(占)을 치는 기구의 하나로 쓰였을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하였다.168)권오성, 「고대 음악사」, 『한국 음악사』, 대한민국 예술원, 1985, 27∼28쪽. 그러나 현재 이 유물이 북한의 조선 중앙 역사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어 접근이 어렵고, 북한에서 소개한 내용도 매우 제한적이어서 더 이상 추론이 불가능한 형편이다. 그렇더라도 기원전 2000년경에 만든 골제 적은 한반도에 살던 한민족의 먼 조상들이 동물의 뼈를 이용해 관악기를 만들어 연주한 사실을 알려 주는 음악사 기록 자료로서 귀중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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