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4장 음악사의 또 다른 흔적들
  • 2. 우리나라의 주요 음악 유물과 종류
  • 현악기
  • 전 공민왕금
송혜진

고려시대의 현악기로는 공민왕(재위 1351∼1374)의 유품이라고 전해 오는 거문고가 있다. 수덕사 근역 성보관에 소장되어 있는 전(傳) 공민왕금(恭愍王琴)은 승려 만공(滿空)이 고종의 둘째 아들인 의친왕(義親王) 이강(李 堈, 1877∼1955)에게 받아 소장하게 된 것이라고 한다. 거문고에는 의친왕 탄생 이전인 1837년에 화가이자 금석 고증(金石考證)의 전문가였던 육교(六橋) 이조묵(李祖默)이 쓴 ‘공민왕금(恭愍王琴)’이라는 글씨와 악기의 내력을 담은 찬문(撰文) 및 만공이 지은 한시 한 편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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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거문고가 공민왕의 유품으로 알려진 것은 바로 거문고 뒤판에 적힌 ‘공민왕금’이라는 글씨, 찬문의 내용, 만공이 의친왕에게 거문고를 받을 때 들었다는 ‘구전된 이야기’에 따른 것이다. 찬문에 따르면 공민왕이 연주하던 거문고가 야은(冶隱) 길재(吉再, 1353∼1419)에게 전해졌고, 이후 여러 명사의 손을 거치며 귀한 대접을 받았으며, 찬문을 쓴 1837년에 이미 상당 부분 마모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찬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알아보려면 악기의 재질을 분석하는 방법 등을 세밀하게 시도하여야 하겠지만, 이런 방법도 유물 전승 과정에서 보수된 부분이 많아 정확한 제작 연대를 측정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있다.

전 공민왕금은 길이 164㎝, 너비 20㎝으로 전체적인 악기 재료, 구조, 형태는 현행 거문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거문고를 연주할 때 술대로 내려치는 공명통 부분에 부착한 대모(玳瑁) 등 다른 유물에서 볼 수 없는 부분은 눈길을 끈다. 거문고의 구조상 술대를 내려치는 공명통 부분을 ‘대모’라고 부르게 된 것은 본래 바다거북의 일종인 대모의 등과 배를 싸고 있는 껍데기 말린 것을 부착하던 데서 비롯된 듯하다. 그러나 현행 거문고는 물론 조선시대에 제작한 거문고 가운데 실제 대모를 붙인 경우가 전무하다. 대모는 일반적으로 값이 비쌀 뿐더러 재질이 플라스틱처럼 딱딱하기 때문에 그 대신에 부드러운 돼지나 멧돼지 가죽을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전 공민왕금은 대모를 부착하여 거문고에 부착하는 ‘대모’의 실례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유물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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