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4장 음악사의 또 다른 흔적들
  • 2. 우리나라의 주요 음악 유물과 종류
  • 타악기
  • 고려시대 이후의 도자기 장구 유물
송혜진

고려시대 이후의 도자기 장구 유물은 주로 도자기로 만든 장구통이다. 최근까지 온전한 형태로 학계에 소개된 장구류 유물은 모두 10여 종이며, 이화 여자 대학교 박물관, 해군 박물관 등에 파편 형태로 전하는 유물도 몇 점 있다. 또 2004년에도 고려청자 장구통이 두 점이나 새로이 공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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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불화에 표현된 장구
고려 불화에 표현된 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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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자기의 재질은 흑유(黑釉), 청자(靑磁), 백자(白磁)이고, 형태는 긴 조롱목 양쪽에 크기가 다른 북통을 연결한 세요고형이다. 장구류 타악기 유물은 국내의 청자요(靑磁窯) 발굴 과정에서 출토되거나186)이화 여자 대학교 박물관, 『부안 유천리요 고려 도자』, 1983. 1980년대 이후 남해안 해저에서 인양(引揚)된187)국립 광주 박물관, 『국립 광주 박물관』(도록), 통천 문화사, 1994 ; 국립 해양 유물 전시관, 『국립 해양 유물 전시관』(도록), 1998 등. 것이 주류를 이룬다. 청자 장구통의 경우 상감(象嵌) 기법, 철회(鐵繪) 기법, 음각의 방법으로 당초문(唐草紋), 모란문(牧丹紋), 국화문(菊花紋) 등의 꽃무늬를 정교하게 새겨 넣었다.

장구의 규격은 표 ‘고려시대 장구류 유물 현황’에서 제시한 것처럼 각각 다르다. 다만 12세기경의 장구는 조롱목 길이 50㎝ 내외, 북통 너비 20㎝ 내외였으며, 북통은 채편과 북편의 음량과 음색을 고려하여 차이를 두었고, 북통의 배가 완만하게 부른 형태로 정착되었음을 보여 준다. 즉, 15세기 이전 장구류 유물의 특징은 이성산성 출토 요고에 비해 통의 지름과 너비가 전체적으로 확장되었으며, 특히 조롱목이 좁고 길게 변형되었고, 후기로 갈수록 북편과 채편의 ‘배’가 발달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또 조선시대 『악학궤범』 등의 문헌과 도상 자료에 표현된 장구나 실제 유물로 전하는 조선 후기의 장구와도 다른 형태라는 점이 눈 길을 끈다. 이는 장구가 통일신라 이전의 요고에서 장구로 변화하고, 또 조선시대를 통해 전승되는 과정에서 규격과 구조에 몇 단계의 변형이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고려시대와 조선 초기의 장구류 유물 현황은 표 ‘고려시대 장구류 유물 현황’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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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청자 철회 모란 당초문 장구
녹청자 철회 모란 당초문 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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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고려시대 장구류 유물 현황
명칭 제작 시기 북통 길이(㎝) 북면 지름(㎝) 소장처
채삼백퇴화초엽문 장구
(彩三白堆花草葉紋杖鼓)
11세기 44.6 22.1 국립 중앙 박물관
동원 선생 기증 장구
(東垣先生寄贈杖鼓)
11세기
(추정)
30.4 13.7 국립 중앙 박물관
흑유 유약시유무지 장구
(黑釉釉藥柴油無地杖鼓)
11세기
(추정)
30.4 23/21 개인 소장
청자 철회 당초문 장구
(靑瓷鐵繪唐草紋杖鼓)
12세기 54.6 19.5/17.1 국립 광주 박물관
청자 철회 모란 당초문 장구
(靑瓷鐵繪牧丹唐草紋杖鼓)
12세기 51.3 19.2 국립 해양 박물관
녹청자 철회 모란 당초문 장구
(綠靑瓷鐵繪牧丹唐草紋杖鼓)
12세기 51.6 22/15.2 국립 광주 박물관
청자 철채 백퇴화당초문 장구
(靑瓷鐵彩白堆花唐草紋杖鼓)
12세기 45.7 21.1 전남 대학교
박물관
청자 철회 당초문 장구
(靑瓷鐵繪唐草紋杖鼓)
13세기 51.8 20.3 국립 중앙 박물관
청자 음각 추규문 장구
(靑瓷陰刻秋葵紋杖鼓)
13세기 48.2 16∼17
17.7∼20.9
이화 여자 대학교
박물관
고려 역상감청자 장구
(高麗易象嵌靑瓷杖鼓)
13세기 59.5 지름 미상
두께 : 7㎜
개인 소장
분청사기 상감 초문 장구
(粉靑沙器象嵌草紋杖鼓)
15세기
전반
56 23.8/19 부산 시립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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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청사기 상감 초문 장구
분청사기 상감 초문 장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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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고려시대 장구류 유물에서 장구통의 양면 크기가 다른 것은 음색과 음량을 대비시켜 다양한 음악적 변화를 추구하였음을 알려 준다. 15세기 이전의 장구 유물은 대체로 양쪽 북통 지름에서 약 2㎝가량 차이가 나고, 북통의 입구 가운데 높은 음을 내는 채편의 입구는 벌어진 형태로, 낮은 음을 내는 북편의 입구는 오므린 형태로 제작하였다. 이러한 도자기 장구통의 전통은 대개 15세기까지 지속된 것으로 보이며, 이후로 장구의 구조에 변화가 있었음을 악기 유물 및 문헌 자료와 비교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즉, 20세기 이후에 제작된 보편적인 장구에 비해 15세기 이전의 장구는 채편과 북편의 길이가 짧고 조롱목은 길며, 북통의 배가 발달된 형태였음을 알려 준다. 또 무게는 목제로 만든 현행 장구가 대개 3∼4㎏인 데에 비해 도자기 장구는 7㎏이나 되기 때문에 어깨에 메고 연주하거나 춤을 출 때, 또는 행진 등의 이동 시에 사용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고려청자 장구통을 재현해 본 결과188)한기복, 「고려시대 도자기 장구에 관한 연구」, 목원 대학교 석사 학위 논문, 2002. 나무 북통에 가죽을 댄 장구에 비해 음이 매우 높고 맑다는 점이 확인되었다. 그리고 고려시대 도자기 장구 유물이 당시의 상류층 문화생활에 폭넓게 수용되던 청자류 유물처럼 정교하고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는 점은 당시 상류층에서 애호하던 장구의 소리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짐작하게 해준다.

아울러 『악학궤범』에서 “장구통의 재료로 나무 외에 도자기나 질그릇 등이 쓰였으나 그 중에 가장 좋은 것은 나무 북통에 칠포(漆布)를 입힌 것이며, 그 다음으로 도자기가 낫고, 질그릇은 좋지 않다.”189)『악학궤범(樂學軌範)』 권7, 당부악기도설(唐部樂器圖說), 장고(長鼓).고 한 데에서, 15세기 이전의 도자기 장구통 유물들은 시대에 따라 장구 소리에 대한 선호도가 달랐음을 추측하게 해준다.

이상에서 살핀 것처럼 15세기 이전의 장구류 유물은 10세기 이전의 요고류 악기에서 장구로 변형되는 과정을 다양한 실물 악기로 입증해 주는 음악 역사의 중요한 기록물이다. 그뿐 아니라 이들 유물은 문헌 기록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장구의 음색과 음량을 알게 해 주며, 청자로 제작한 장구통은 당대 명품으로 꼽힐 만한 예술품으로 그것이 수용되던 시기의 문화적 양상을 알려 주는 유물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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