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4장 음악사의 또 다른 흔적들
  • 3. 삼국시대의 음악 도상 자료
  • 고구려 고분 벽화의 악가무(樂歌舞)
송혜진

고구려 고분 벽화는 고구려인의 현실 생활과 내세관(來世觀)을 표현한 장의 미술(葬儀美術)의 한 영역이다.192)정병모, 「고구려 고분 벽화 풍속화에 대한 연구」, 『관광학 논총』, 경주 대학교, 2000, 297∼328쪽. 고구려 사람들은 죽은 이후에도 현세의 생이 계속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거대한 고분을 만들고 그 안에 그림을 그린 것이다. 벽화의 주제는 아주 다양해서 고구려 사람들의 삶과 죽음의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고구려 고분 벽화의 제재는 크게 풍속도, 장식 문양도, 사신도(四神圖)로 구분된다. 이 중에서 풍속도는 무덤 주인의 초상과 생활상을 그린 것으로 4∼5세기경에 제작된 초기 고분 벽화에서 유행하였다. 그림은 대부분 무덤의 앞방과 널방으로 구성된 두 칸에 그려졌다. 앞방은 묘 주인의 생활 모습을 보여 주는 공적인 공간이며, 주검을 안치한 널방은 침실과 같은 사적인 공간으로 해석되고 있다.193)정병모, 앞의 글 참조

그런데 풍속도는 무덤 주인이 살아있을 때의 공적(公的) 생활 가운데 기념할 만한 것과 사적(私的) 생활의 풍요로움을 무덤 안에 그려 넣어 내세에도 이와 같은 삶이 재현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때문에 여기에 는 무덤 주인이 혼자서 혹은 부인과 함께 앉아 있으면서 남녀 시종의 시중을 받는 장면,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출행(出行)하는 장면, 산야에서 말을 달리며 사냥하는 장면, 연회를 베풀고 노래·춤·곡예를 즐기는 장면 등이 자주 나온다.

지금까지 밝혀진 고구려 무덤 중 주악 도상을 표현한 고분은 안악 1호분과 3호분, 대성리 1호분, 팔청리 고분, 약수리 고분, 강서 고분, 평양 역전 고분, 감신총, 덕흥리 고분, 수산리 고분, 대안리 1호분, 쌍영총, 장천 1호분, 지안(集安) 통거우(通溝)의 오회분 4호묘와 5호묘, 삼실총, 사신총, 지안 통거우 12호 고분, 무용총 등이다.194)고분의 지역별 분포와 벽화 구성에 대해서는 전호태, 『고구려 고분 벽화 연구』, 사계절, 2000 부록 참조. 이상의 고분은 분포 지역에 따라 평양권과 지안권으로 구분된다. 평양권의 고분 벽화는 중국적인 영향이 강한 반면에 지안권에 위치한 무용총, 각저총, 장천 1호분과 2호분 등은 고구려적인 특성을 강하게 반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악학 분야에서는 지금까지 이상의 고분 벽화 주악 도상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졌으며, 주악 도상 자료를 음악사 및 악기 연구의 사료(史料)로 접근하였다.195)송석하, 「집안 고구려 고분과 악기」, 『춘추』 2권 11호, 1941 ; 이혜구, 「안악 제3호분 벽화의 주악도」, 『진단학회』 23, 진단학회, 1962 ; 이홍직, 「한국 고대 악기 도상 과안록」, 『이혜구 박사 송수 기념 음악 논총』, 한국 국악 학회, 1969 ; 전주농, 「고구려 벽화에 나타난 악기에 대한 연구」, 『문화 유산』, 1957 ; 송방송, 「장천 1호분의 음악 사학적 점검」, 『한국학보』 35, 일지사, 1985 ; 황미연, 「집안 오회분 사호묘의 주악도에 관한 연구」, 『민족 음악 학보』 10, 한국 민족 음악학회, 1997 ; 백일형, 「북한의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난 악기 연구」, 『한양대 98 국악 학술 세미나-북한 음악의 이모저모 자료집-』, 한양 대학교 국악과·전통 음악 연구회, 1998 ; 이진원, 「벽화를 통해서 본 고구려 음악과 악기-고구려 음악 문화에 관한 재검토-」, 『고구려 연구』 17, 고구려 연구회, 2003 등 참조. 이들 연구는 고대 문헌 기록에 전하는 고구려 음악과 고분 벽화상의 음악 표현을 연관 지어 고대 한국 음악사의 현황을 살피는 데 주력하였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표현된 주악 도상에는 거문고처럼 보이는 현악기, 완함(阮咸), 횡적(橫笛), 종적(縱笛), 요고(腰鼓), 각(角), 배소(排簫) 등 다양한 모양의 타악기를 연주하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기존 연구에서는 주로 그림에 표현된 개별 악기의 실제 전승, 악기 편성, 외래 문물과의 교류 등에 대하여 다양하게 논의하였다.

고구려 고분 벽화 주악 도상의 주제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첫째는 음악이 있는 잔치 장면을 그린 연향악(宴享樂), 둘째는 신분이 높은 인물이 의장(儀仗)을 거느리고 행렬하는 모습을 그린 행렬 악대(行列樂隊), 셋째는 공 던지기, 칼 던지기, 불 삼키기 등의 각종 기예(技藝)에 맞춰 악기를 연주하는 장면을 그린 잡희(雜戲), 넷째는 무덤 천정에 그린 천상 세계에 표현된 음악 연주 장면 등을 그린 천상악(天上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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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총의 악무도
무용총의 악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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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향악은 주로 관악기나 타악기, 현악기 연주에 춤과 노래를 곁들인 가무악(歌舞樂) 형태로 나타난다. 가무악 편성을 가장 잘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장면은 무용총 벽화의 악무도(樂舞圖)이다. 말을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이를 위한 송별연처럼 보이는 이 자리에는 중국의 현악기인 완함 연주에 맞춰 춤을 추는 무용수 한 사람, 노래에 맞춰 춤을 추는 무용수 다섯 사람이 아주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다섯 명의 무용수는 기둥 아래에서 춤을 추며 등장하는데, 몸을 숙여 예의와 존경을 표하는 것처럼 보인다. 무용수 다섯 명의 맨 앞에 있는 무용수는 새 깃털로 장식한 모자 곧 조우관(鳥羽冠)을 머리 에 꽂고 있으면서 전체 무용단을 이끄는 것처럼 보인다. 그 뒤에는 두루마기처럼 길게 내려오는 옷을 입은 사람 둘, 바지저고리를 입은 사람 둘이 각각 짝을 이루어 긴 소매를 나부끼며 등장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무용수들 맞은편에는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보이는 일곱 사람이 앉아 있다.

이 벽화에 생생하게 묘사된 것처럼 고구려인들은 넓은 소맷자락을 펄럭이며 날아갈듯이 춤을 추었다. 이와 같은 고구려인들의 춤추는 모습은 기록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악공들은 새의 깃으로 장식된 자색의 비단 모자를 쓰고, 큰 소매의 황색 두루마기에 자색 비단띠를 띠고, 넓은 바지에 붉은 가죽신을 신었는데, 오색으로 만든 끈으로 맸다. 무용수 네 명은 머리카락을 뒤로 틀고, 붉은 마래기로 머리를 맸고, 금으로 만든 귀고리로 장식하였다. 그런데 두 명은 누런 저고리에 붉고 누런 바지를 입었으되, 그들의 소매는 매우 길었고, 모두 검은 가죽신을 신고 쌍쌍으로 서서 춤을 추었다.196)『삼국사기』 권32, 잡지(雜志)1, 악(樂).

중국의 유명한 시인인 이백(李白)의 시에도 “금꽃 꽂은 절풍(折風) 모자를 쓰고 흰말 타고 느릿느릿 돌아가누나. 펄럭펄럭 너른 소매 춤을 추나니 마치 새가 해동(海東)에서 오는 듯하다.”고197)한치윤(韓致奫), 『해동역사(海東繹史)』 권51, 예문지(藝文志)10, 중국 시. 읊어 고구려인이 춤추는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였는데, 이 또한 무용총 벽화에 나타난 춤과 흡사하다.

또 다른 그림은 무용총보다 100년 전 쯤 앞서 조성된 황해도 안악에 있는 안악 3호분의 공연 모습이다. 이 그림에는 모두 네 명의 공연단이 등장하는데 한 사람은 춤을 추고, 나머지 세 사람은 악기 연주를 하고 있다. 악기는 거문고나 가야고처럼 길게 뉘어 놓고 연주하는 현악기, 퉁소처럼 생긴 세로로 부는 관악기, 완함처럼 생긴 악기이다.

특이한 것은 연주단의 모습이 서남아시아 계통의 외국인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의상이나 머리 모양, 장신구, 춤을 추는 사람의 얼굴 모습, 다리 를 가로 꼬고 손뼉을 치는 모양 등이 아주 이색적이다. 그래서 이 그림 속의 공연단을 고구려에 초청되어 온 외국인들로 풀이하기도 하고, 외국의 벽화를 모방하여 그린 벽화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안악 3호분은 357년(고국원왕 27)에 조성되었는데, 4세기는 매우 국제화된 사회로서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에는 새 깃털을 꽂은 조우관을 쓰고, 환두대도(環頭大刀)를 찬 모습의 고구려 사절로 추정되는 인물이 그려져 있다.198)권영필 외, 『중앙아시아 속의 고구려인 발자취』, 동북아 역사 재단, 2008. 안악 3호분의 주악도는 4∼5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이미 외래 악기 또는 외래 악무의 수용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알려준다. 한편으로 가무악 편성으로 이루어진 고분 벽화의 주악 장면은 상층 사회에 예를 갖춘 연향 문화가 정착되었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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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악 3호분의 가면희도
안악 3호분의 가면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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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 벽화의 행렬도에는 왕이나 장수, 사회적으로 신분이 높은 귀인이 깃발과 의장으로 위의(威儀)를 돋우고 공식적인 행차를 하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다. 행렬 악대의 편성은 타악기와 관악기로 이루어진 ‘고취(鼓吹)’ 편성이 기본이다. 행렬악은 말을 타고 연주하는 기마 악대와 걸어가면서 연주하는 보행 악대가 있다.199)송혜진, 「고구려 고분 벽화 중 주악도의 주제와 의미-행렬도를 중심으로-」, 『2005년 한국 동양 예술 학회 발표 논문집』,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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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악 3호분의 행렬도
안악 3호분의 행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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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단의 규모는 고분 벽화마다 차이가 있는데 지금까지 알려진 가장 큰 행렬악은 안악 3호분에 표현된 것이다. 안악 3호분 고분 벽화에 보이는 기마 악대는 말 위에서 북을 연주하는 사람, 팬파이프(panpipe)처럼 생긴 배소를 부는 사람, 짧은 나팔을 부는 사람, 작은 뿔 나발을 부는 사람, 긴 젓대를 부는 사람, 여러 가지 모양의 금속 타악기와 북을 연주하는 사람 등 무려 64명이나 되는 연주자가 등장한다. 그리고 보행 악대가 연주하는 북은 두 가지인데 담고(擔鼓)라고 하며, 기마 악대 뒤편에 메고 치는 담종(擔鐘)과 함께 편성되어 있다. 행렬 왼쪽에 있는 북은 연주자의 상반신 크기만 하고, 가운데 것은 연주자의 얼굴보다 조금 크다.

기마 악대가 연주하는 북을 마상고(馬上鼓)라 일컫고 있는데 동북아시아, 중앙아시아의 도상 자료에는 매우 다양한 형태가 나타난다. 작은 북을 말 등에 얹거나, 말에 매달아 고정시키고 연주하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으며 큰 북을 낙타 위에서 묘기하듯 연주하는 모습도 나타난다.

그런데 안악 3호분의 마상고는 형태가 매우 특이하다. 형태와 크기가 다른 두 개의 북을 북 자루에 꽂은 것처럼 연결되어 있으며, 북을 연주하는 사람은 왼손에 채를 쥐고 팔을 높이 들어 북을 치는 듯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이 북은 4인조 기마 악대(북·배소·소·탁)의 한 가지로 편성되었다.200)송혜진, 앞의 글, 2005 참조. 이렇듯 고취 편성의 모습을 보여 주는 안악 3호분 고분 벽화를 통해 고구려에서는 고취가 군악뿐만 아니라 높은 신분의 사람이 행차할 때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안악 3호분의 대행렬도와 달리 덕흥리 고분 벽화에 보이는 행렬도 구성은 매우 단출하다. 5열로 구성된 행렬이 남쪽의 입구를 향하여 행진하고 있다. 고각(鼓角)을 연주하는 악대는 행렬의 바깥쪽에 말을 타고 고(흔들 북)와 각을 연주하는 두 사람과 행렬 안쪽에 걸어가며 메는 북을 연주하는 세 사람이 묘사되어 있다. 메는 북의 연주는 두 사람이 마주 보고 서서 북을 들고 있고, 한 사람이 손에 채를 쥐고 북을 친다. 행렬 중이라면 한 사람이 뒷걸음을 치고 있는 형상인데, 이 또한 북치는 장면을 강조하기 위한 회화 기법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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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흥리 고분의 악기 연주
덕흥리 고분의 악기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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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마 악대의 흔들 북은 짧은 막대에 동그란 북을 꽂은 것으로 위쪽과 좌우에 끈이 매달려 있고 오른손으로 북채를 쥐고 흔들며 연주한다. 덕흥리 고분 벽화의 마상고는 북통 한 개가 자루에 매달린 모습이라 이채롭다. 또 덕흥리 고분 벽화의 마상고가 각(角)과 짝을 이루어 연주되는 것도 안악 3호분의 기마 악대 편성과 차이를 보여 준다.

한편, 고구려 고분 벽화에 표현된 행렬악은 행렬 주인공의 사회적 지위나 정치적 권위를 상징적으로 나타내기도 한다. 고구려의 동명왕이 나라를 세운 직후에 “우리는 아직 북과 나팔에 의한 의식을 갖지 못하였다. 비류국(沸流國)의 사신이 도착하였으나 의식을 갖추 어 그를 맞이할 능력이 없다. 그는 우리를 경멸할 것이다.”201)이규보(李奎報),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권3, 「동명왕편병서(東明王篇幷序)」, 민족 문화 추진회, 1990.라며 걱정하였다는 내용은 북과 나팔을 갖춘 의식이 국가적 위상과 직결되는 중요한 것이었음을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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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악 3호분의 북 연주
안악 3호분의 북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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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고분 벽화에 표현된 행렬악은 각각 악대의 규모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타악기와 관악기 편성을 기본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야말로 북과 뿔피리의 ‘고각(鼓角)’ 혹은 타악기와 관악기로 구성된 ‘고취’의 전형적인 예이다. 그런데 안악 3호분의 마상고는 중국 한나라의 고취 악대와 유사한 편성을 보여 준다. 반면에 덕흥리 고분 벽화의 기마 악대는 중국의 고취 악대에 편성된 북 모양과 많이 다르고 각과 함께 짝을 이루고 있다는 점에서 고구려에 정착된 고취 편성을 보여 준다고 하겠다.202)송혜진, 앞의 글, 2005, 15쪽.

고구려 고분 벽화 중에는 농환(弄丸, 방울받기), 장간희(長竿戲, 솟대타기), 도립(倒立, 물구나무서기), 칼 재주 부리기 등의 놀이가 펼쳐질 때 반주 악사(樂士)들이 놀이의 흥을 돋우는 장면도 들어 있다. 예를 들어 수산리 고분·팔청리 고분에는 장간희, 장천 1호분·수산리 고분·팔청리 고분에는 농환, 약수리 고분·팔청리 고분에는 마상재, 팔청리 고분·안악 3호분의 행렬도에는 칼 재주 부리기 등과 같이 곡예에 해당하는 연희가 그려져 있다.

이 같은 잡희는 흥을 돋우는 놀이마당에서는 어디에서나 환영을 받았으리라 생각되지만 흥미롭게도 고분 벽화에는 행렬도와 함께 등장하는 예 가 있다. 팔청리 고분과 수산리 고분 벽화의 행렬 장면의 잡희 연희자들은 귀빈(貴賓)의 행렬에 동행하거나, 혹은 행렬이 쉬고 휴식하는 곳에 대기하고 있다가 행차의 주인공을 위해 공연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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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청리 고분의 잡희와 연주
팔청리 고분의 잡희와 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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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중에서 팔청리 고분 벽화에는 행렬에 고각 편성의 악대와 함께 연희자들이 등장하여 악대의 반주에 맞추어 각자의 묘기를 보여 주고 있다. 무덤 주인의 바로 앞에 있는 연희자는 긴 솟대 위에 올라가 묘기를 보이는데 두 팔을 벌리고 엉덩이를 약간 뒤로 빼어 중심을 잡고 서 있는 긴장된 모습이다. 그 옆에는 완함 연주자 한 사람이 다리를 꼬고 선 자세로 연주하면서 솟대타기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모습이 퍽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다. 팔청리 고분 벽화의 연희를 반주하는 완함 연주자의 모습은 연희와 주악의 관계를 폭넓게 유추해 볼 수 있는 중요한 도상 자료라고 생각한다.

고구려 고분 벽화 중 가장 많은 종류는 천상악이다. 천상악은 주로 허공을 날아다니는 천인(天人)이나 신선(神仙)으로 보이는 존재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것을 그린 그림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의 천상악은 옷자락을 나부끼거나 고니를 타고 하늘을 날면서 젓대나 나발을 불거나 금(琴)·완함·비파(琵琶) 같은 현악기, 요고 등의 타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렇듯 천인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새긴 것은 고구려인들이 천상계를 음악과 노래가 끊이지 않는 곳으로 생각한 때문으로 여겨진다.

천상악 중에서 특히 주목되는 것은 천인이 연주하는 악기이며, 이 중에 서도 무용총 벽화에 표현된 거문고 연주 모습은 고구려 음악사의 대표적인 도상 자료이다. 거문고를 타는 두 선인(仙人)은 위로 길게 뻗은 장식과 소매와 바지가 날카롭게 갈라진 의상을 입고 있다. 이러한 거문고 연주 모습은 안악 3호분과 장천 1호분에도 나타나지만, 무용총 벽화에 묘사된 거문고를 타는 동작이나 손의 모습 등이 더 생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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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회분 4호묘의 주악 비천상
오회분 4호묘의 주악 비천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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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삼국사기』에는 거문고의 내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처음 진(晋)나라 사람이 칠현금(七絃琴)을 고구려에 보냈더니 고구려 사람은 비록 그것이 악기인 줄은 알았으나, 그 소리와 음곡 및 그것을 타는 법을 알지 못하여, 나라 사람으로서 그 음곡을 알아서 탈 수 있는 이를 구하여 후히 상을 주기로 하였다. 그때에 제2상(第二相) 왕산악(王山岳)이 본 모양을 그대로 두고 구조를 고쳐서, 이것을 만들고는 다시 100여 곡을 지어 이를 연주하였다. 이때에 검은 학이 날아와서 춤추었으므로 드디어 이름을 현학금(玄鶴琴)이라 하였는데 후에는 다만 현금(玄琴)이라 하였다.203)『삼국사기』 권32, 잡지1, 악.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의 재상 왕산악이 중국에서 보내 온 칠현금을 모방해 거문고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거문고의 원형으로 보이는 고대 현악기는 이미 무용총(4∼5세기경)과 안악 3호분(357)·장천 1호분(5세기경) 등에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모두 17괘 위에 얹혀 있는 4현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연주하고 있는 악기의 모양은 괘, 술대 등이 오늘날의 거문고와 대체로 같아 현행 거문고의 원형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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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용총의 거문고 타는 선인
무용총의 거문고 타는 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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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음악과 춤의 현장이 묘사된 고구려 고분 벽화의 내용에는 고구려 고유의 음악 문화를 보여 주는 것도 있고, 또 외래 문물이 고구려에 들어온 모습을 보여 주는 예도 있다. 그런가 하면 그 중에는 이웃 나라 벽화에 표현된 것과 주제와 내용이 아주 유사한 것도 있어서 벽화의 주악도가 곧 고구려의 음악 문화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 것인지, 아니면 그림만 비슷하게 그린 것인지를 놓고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벽화가 조성된 연대와 내용, 벽화에 표현된 의식주의 모습, 회화의 양식 등을 참고해 보면 고구려의 귀인들은 일상에서 가무악으로 편성된 연향악 문화를 즐겼고, 공식적인 행차를 할 때는 나팔과 북이 기본인 행렬 악대가 따랐을 뿐만 아니라 때때로 잡희로 위의를 돋우는 전통이 생겼으며, 또한 죽어서 천상에서 듣고 싶은 음악적 이상향이 형성되어 있었음을 알려 준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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