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4장 음악사의 또 다른 흔적들
  • 3. 삼국시대의 음악 도상 자료
  • 신라의 주악 토우에 표현된 악기와 의례
송혜진

신라의 주악 도상 중에서는 대표적인 것은 토우(土偶)이다. 흙으로 만든 인형이라는 뜻의 토우는 사람의 모습을 비롯하여 동물·생활 용구·집 등을 그 모습대로 본떠 나타냈다.206)이난영, 「토우란 무엇인가」, 『토우』, 대원사, 1991. 신라의 고분에서 출토된 토우에는 신라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솔직하게 드러나 있다. 아무렇게나 빚은 듯하면서도 모양과 표정이 풍부한 토우들 중에는 노래하고 춤추며 악기를 연주하는 토우가 있다. 무덤 속에 잠자다 깨어난 토우들은 문헌으로만 접할 수밖에 없었던 신라의 음악을 눈앞에서 실제로 보여 주며 신라 음악에 대한 이해의 폭을 한층 넓혀 준다.

그동안 우리나라 음악학계에서는 주로 신라의 주악 토우 중 가야고의 역사와 관련한 관심을 표하였을 뿐 종합적 접근은 미진한 편이었다. 일부에서 미술학계 및 민속학계의 보고를 참조하여 신라 주악 토우가 장송 행렬(葬送行列)의 연주를 상징하는 것이라는 기능적 측면을 살폈을 뿐이다.207)송혜진, 「눈으로 보는 우리 음악사의 어제와 오늘-신라의 흙인형-」, 『국악 소식』 28, 국립 국악원, 1994, 12∼14쪽. 지금까지 조사된 주악 토우는 항아리나 술잔 뚜껑(高杯) 등에 부착된 형태 14종, 독립된 토우 세 종이며, 주로 가야금처럼 보이는 현악기가 묘사되어 있고 이 밖에 비파와 관악기의 모습을 볼 수 있다.208)김성혜, 『삼국시대 신라 음악 문화사 연구』, 동아 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2005.

확대보기
노래하고 연주하는 토우
노래하고 연주하는 토우
팝업창 닫기

토우는 2∼3세경부터 제작되기 시작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이 중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모습,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담은 토우가 형상화되어 성행한 것은 5∼6세기경이다.209)강우방, 「신라 토우론」, 『신라 토우』, 통천 문화사, 1997, 129쪽. 이러한 노래하고 춤추며 탈을 쓴 토우들은 무덤 속 주인공을 위한 장례 의식용으로 만들었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신라 토우에 나타난 악기의 종류로는 현악기인 금과 비파 및 관악기가 있다. 항아리와 술잔 뚜껑에 부착된 토우는 대부분 현악기를 연주하고 있다.210)14종의 부착형 토우 중 관악기 연주 모습 , 노래하는 모습 한 종 , 춤추는 모습 두 종을 제외한 일곱 종이 모두 현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부착형(附着型) 주악 토우는 미추왕릉 지구(味鄒王陵地區) 계림로(鷄林路) 제16지구 고분(古墳) 제30호분에서 출토된 목 긴 항아리(長頸壺)의 현악기를 연주하는 임산부 모습이다. 목 긴 항아리의 목 부분에는 거북이, 개구리를 물고 있는 뱀, 새·오리·토끼 등의 동물, 아이를 가진 임산부가 가야고처럼 생긴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 남녀가 성교하는 모습 등이 다양하게 표현되어 있다.

현악기를 연주하는 임산부 모습은 6세기 이전의 고대 현악기 모습을 알려 준다는 점에서 일찍부터 주목받아 왔다. 이 목 긴 항아리의 제작 연대 는 5세기 이전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5세기 중엽인 자비왕 때에 살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백결(百結) 선생이 연주한 현·금이나211)『삼국유사』 권48, 열전(列傳)8, 백결(百結). 『삼국유사』 사금갑(射琴匣)에 나타나는 금과 시기적으로 부합한다.

확대보기
토우 장식 목 긴 항아리
토우 장식 목 긴 항아리
팝업창 닫기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울더니 쥐가 사람처럼 말을 하였다.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살피시오.” 왕이 기사(騎士)에게 명령하여 뒤쫓게 하였다. …… 한 노인이 연못 속에서 나와 글을 올리니 겉봉에 “이를 떼어 보면 두 사람이 죽을 것이고, 떼어 보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 왕이 그렇게 여겨 떼어 보니 그 글에 “금갑(琴匣)을 쏘라.”고 하였다. 왕이 곧 궁에 들어가서 금갑을 보고 쏘니, 거기에는 내전(內殿)에서 분향 수도(焚香修道)하던 중이 궁주와 몰래 간통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사형을 당하였다.212)『삼국유사』 권1, 기이(紀異), 사금갑(射琴匣).

이 일이 발생한 때는 488년(소지왕 10) 무렵이라고 한다. 이것은 가야고 연주자인 우륵이 진흥왕 때에 신라로 귀화하였다는 문헌 기록보다 100년 이상 앞선다. 그리하여 가야의 가야고 탄생 이전 시기에 이미 후대 가야고와 같은 악기가 신라에 존재하였음을 알려 주는 결정적 단서로 보고 있다. 따라서 신라 토우에 나타나는 금을 가야고와 구분하여 ‘신라금(新羅琴)’이라 불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었다.213)김성혜, 「신라 토우의 음악사학적 조명(1)-신라고를 중심으로-」, 『한국학보』 91·92, 일지사, 1998, 84쪽.

한편, 5세기를 전후한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토우 장식 고배(高杯)의 뚜껑도 주목된다. 토기의 뚜껑에는 현악기를 타는 연주자, 엎드린 채 연주자에게 술잔을 권하는 사람, 노래를 부르며 두 팔을 벌리고 춤을 추는 남자의 토우가 부착되어 있다.

비파 타는 토우의 연주자는 크기가 작고 타원형의 모양새를 갖춘 비파를 연주하고 있다. 입을 벌리고 있는 것으로 보아 비파 반주에 맞추어 노래 부르는 것처럼 보인다. 이 토우는 출토지가 불분명하여 제작 연대가 확실히 밝혀져 있지는 않지만, 제작 기법상 5∼6세기경에 만든 것으로 추정된다.

확대보기
토우 장식 고배의 뚜껑
토우 장식 고배의 뚜껑
팝업창 닫기

한편, 독립된 주악 토우는 노래하는 모습, 춤추는 모습, 비파를 연주하면서 노래하는 모습 등을 보여 준다. 이들은 신라의 장송 행렬을 위한 연주단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곧 무덤 속에 노래하고 악기를 연주하는 토우를 함께 넣어 죽은 자의 영혼을 위로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노래하는 모습의 토우는 여러 종류가 있다. 서서 노래하는 토우는 두 손을 마주 잡고 입을 크게 벌린 채 노래를 부르는 모습이다. 주악 인물 토기에는 두 팔을 좌우로 벌려 노래 부르며 춤을 추는 모양처럼 보인다. 이렇듯 신라 토우는 문헌 기록만으로는 확인할 수 없었던 다양한 악기와 연주 모습 등을 나타내 주고 있어 음악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