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4장 음악사의 또 다른 흔적들
  • 4. 통일신라시대 주악상의 악기와 상징
  • 석조물에 표현된 주악 도상
송혜진

불교 문화가 꽃핀 통일신라시대에는 석탑·승탑·사리기(舍利器)·동종(銅鐘) 등의 유물에 주악상이 아름답게 새겨져 있다. 불교 미술품에 표현된 주악 내용은 음악과 춤을 부처에게 바치는 공양의 일종으로 표현된 것이다. 불가(佛家)에서는 수행 중에 유흥을 목적으로 즐기는 것을 금하지만 높은 덕을 기리는 음악이나 경(經)을 노래하는 것은 불도(佛道)를 이루는 방법이라 하여 권장하였다. 그런 불교의 일면이 중국 둔황 석굴(敦煌石窟)을 비롯한 중앙아시아의 여러 벽화에서 요고·공후(箜篌)·비파·생황(笙簧)·적·배소·나각(螺角)·동발(일명 제금) 등을 연주하는 인물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일본에도 이런 표현 방법이 그대로 전해져 특히 통일신라시대에 많이 제작되었다.

석탑과 승탑 등의 석조물은 통일신라의 주악상이 가장 많이 나타나고 있는 불교 미술품이다. 현재 주악상이 새겨진 석조물은 전국적으로 21점이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214)황미연, 「석조물에 나타난 주악상에 관한 연구」, 『한국 음악 산고』 6, 한양 대학교 전통 음악 연구회, 1995. 이 시기의 대표적인 주악 도상 석조물의 종류와 내용 등을 정리하면 표 ‘석조물에 표현된 주악 도상’과 같다.

<표> 석조물에 표현된 주악 도상
명칭 조성 시기 주악상
조식명
주악상의 악기 위치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 8세기 중엽 비천상 생황, 향비파, 요고, 공후, 횡적 하층 기단
쌍봉사 철감선사탑 868년경 가릉빈가 당비파 중대석
상주 석각 천인상 8세기 후반 비천상 비파, 생황 전면
실상사 백장암 3층 석탑 9세기 비천상 박판, 요고, 생황, 동발, 당비파 2·3층 탑신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 924년 비천상 당비파, 박, 동발, 생황, 횡적, 피리 중대석
진전사지 3층 석탑 통일신라 팔부중상 공후 하층 기단
신계사지 3층 석탑 통일신라 팔부중상 공후 2층 기단
선림원지 3층 석탑 9세기 팔부중상 공후 하층 기단

8세기 중엽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華嚴寺四獅子三層石塔)은 하층 기단 각 면석에 큼직한 안상(眼象)을 세 구씩 오목새김하고 그 안에 천인상을 각각 한 구씩 총 12구를 돋을새김하였다. 천인상의 모습은 보관(寶冠)과 영락(瓔珞)을 두르고 천의를 공중에 휘날리며 앉은 자세는 모두 같으나, 악기를 들어 연주하고 있는 모습도 있으며, 혹은 팔을 벌려 춤을 추고 있기도 하고, 어떤 천인은 꽃을 바쳐 공양하고 있기도 하다. 화엄사 4사자 3층 석탑의 주악상에 나타난 악기는 생황·향비파(鄕琵琶)·요고·공후·횡적의 다섯 종으로 보는 견해와215)황미연, 앞의 글, 1995, 37쪽. 당비파(唐琵琶)·생(笙)·횡적·공후·배소·동발(銅鉢)·요고·피리의 여덟 종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216)송방송, 「화엄사 삼층 석탑의 주악상」, 『한국학보』 108, 일지사, 2002, 1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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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소를 연주하는 천인상
배소를 연주하는 천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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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봉사 철감선사탑(雙峰寺澈鑒禪師塔)은 868년(경문왕 8)경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팔각 원당형의 아름다운 승탑(부도)이다. 탑신 굄대의 여덟 귀퉁이에는 오목새김한 안상 안에 악기를 연주하는 가릉빈가(迦陵頻伽)를 한 좌씩 돋을새김하였는데, 모습이 각각 다르다. 가릉빈가는 상상의 새로 머리와 팔은 사람의 형상이나 새의 몸체를 하고 있다고 한다. 자태가 매우 아름답고, 소리가 오묘하여 묘음조(妙音鳥)·호음조(好音鳥)·미음조(美音鳥) 혹은 극락에 깃들인다 하여 극락조(極樂鳥)라 부르기도 하며, 불교 미술에는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쌍봉사 철감선사탑에 새겨진 가릉빈가가 연주하고 있는 악기는 당비파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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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비파를 연주하는 가릉빈가상
당비파를 연주하는 가릉빈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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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릉빈가상
가릉빈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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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릉빈가상
가릉빈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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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릉빈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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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릉빈가상
가릉빈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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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릉빈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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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릉빈가상
가릉빈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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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릉빈가상
가릉빈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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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세기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상주 석각 천인상(尙州石刻天人像)은 통일신라 천부상의 우수한 모습을 잘 드러내는 작품으로 손꼽힌다. 왼쪽 판석(板石)에는 공양상(供養像)이 조각되어 있는데, 오른손으로 연봉을 받쳐 들고 오른쪽을 향하고 있는 모습이다. 오른쪽 판석에는 비파를 연주하는 모습의 주악 천인상이 조각되어 있다. 공양상을 마주 보는 듯 왼쪽을 향하여 머리를 약간 숙이고 한 발은 약간 앞으로 내민 유연한 자세이다. 천의(天衣)를 흩날리며 미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비파를 연주하는 모습이 매우 실감나고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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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를 연주하는 천인상
비파를 연주하는 천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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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기경에 건립한 실상사 백장암 3층 석탑(實相寺百丈庵三層石塔)은 통일신라시대를 대표하는 석탑으로 이 름 높다. 이 탑의 2층 탑신 각 면에는 두 구씩 모두 여덟 구의 주악 천인상이 돋을새김되어 있으며, 3층 탑신의 각 면에도 한 구씩의 천인 좌상이 각각 새겨져 있어 매우 화려하다. 마모가 심한 두 구를 제외한 여섯 구의 주악 천인상이 연주하는 악기는 박판(拍板)·요고·생황·동발·당비파·횡적 등이다.217)황미연, 「전북 소재 유물에 나타난 주악 도상 연구」, 『예술 문화』 2, 전주 대학교 예술 문화 연구소,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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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와 횡적을 연주하는 천인상
비파와 횡적을 연주하는 천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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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4년(경애왕 1)에 세운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鳳巖寺智證大師寂照塔)의 중대석에는 여덟 면에 똑같은 양식의 안상을 오목새김하고 그 안쪽으로 여러 형태의 조각을 배치하였다. 그 가운데 1면은 사리함이고, 2면은 무릎을 꿇고 공양하는 합장 공양상이며, 나머지 5면에는 피리·박판·생황·횡적·비파를 연주하는 주악 비천상(飛天像)이 묘사되어 있다.218)김성혜,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의 음악사적 조명」, 『한국 음악사 학보』 39, 한국 음악사 학회, 2007.

진전사지 3층 석탑(陳田寺址三層石塔)에는 이중의 둥근 두신광(頭身光)을 두르고 천의를 날리며 연화좌 위에 앉아 공후를 연주하는 모습의 주악상이 있다. 이 탑에 표현된 주악상은 천상을 향한 음악의 응집력을 내포하고 있다고 한다.219)황미연, 「신라 통일 시대 주악상에 관한 고찰」, 『낭만 음악』 33, 낭만 음악사, 1996, 38쪽.

선림원지 3층 석탑(禪林院址三層石塔)은 2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건조한 전형적인 통일신라의 석탑이다. 여기에도 공후를 연주하는 모습의 주악상이 부조되어 있다. 그런데 그 표현과 배치 방식이 진전사지 3층 석탑과 매우 유사하여 세울 때 진전사탑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밖에도 673년(문무왕 13)에 조성한 비암사 계유명 아미타불 삼존 석상에도 여러 가지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 비천상이 있다. 계유명 전씨 아미타불 삼존 석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三尊石像)이라 부르는 이 석상의 옆면에는 주악천과 용을 새겨 앞면의 아미타 세계를 장엄하고 있는데, 연꽃 위에서 요고·비파·장소·금·생황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의 주악상은 동작이 사실적이며 자연스럽게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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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암사 계유명 아미타불 삼존석상의 주악상
비암사 계유명 아미타불 삼존석상의 주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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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 살펴보았듯이 통일신라의 석탑과 승탑에 새겨진 주악 도상의 주체는 비천상이 주류를 이루며, 불교 경전에 나오는 상상의 새인 가릉빈가, 불법과 부처를 수호하며 중생에게 이익을 주는 여러 신중(神衆)인 팔부중(八部衆)도 있다. 이들은 각기 횡적·요고·생황·향비파·당비파·봉수 비파·공후·금(또는 쟁)·장소·배소·동발·피리·박 등 외래 악기의 연주 모습을 보여 준다. 그리하여 기존 연구에서는 불교 석조 미술품에 표현된 주악 도상 자료를 이 시기 당악(唐樂) 수용의 주요 근거로 인용하기도 하였다.220)이혜구, 「주악도(1-3)」, 『공간』 75, 공간사, 1973 ; 이홍직, 「한국 고대 악기 도상 과안록」, 『이혜구 박사 송수 기념 음악학 논총』, 한국 국악 학회, 1969 ; 송방송, 「신라 중대 향악기의 수용 문제」, 『한국 고대 음악사 연구』, 일지사, 1985 ; 송방송, 「신라 삼현의 음악 사학적 검토」, 『한국 고대 음악사 연구』, 일지사, 1985 ; 송반송, 「『고려도경』 소재 향악기의 음악사적 의의」, 『한국학보』 9, 일지사, 1985 ; 황미연, 앞의 글, 1995 참조.

탑과 승탑 등의 석조물에 나타나는 주악상에는 비천상, 가릉빈가, 팔부중상 등이 표현되고 있다. 비천상은 비교적 이른 시기에 조성된 석조물에 나타나고 있으며, 가릉빈가는 비천상에서 팔부중상의 과도기에 나타나는 양식인 것을 볼 수 있다. 가릉빈가가 나타나는 주악상으로는 쌍봉사 철감선사탑과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이 대표적으로 9세기 말에 나타나다가 10세기에 접어들면서 더 이상 나타나지 않는다. 이것은 통일신라 말의 급격한 사회 변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이해되기도 한다.221)황미연, 앞의 글, 1996, 38∼39쪽.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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