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4장 음악사의 또 다른 흔적들
  • 4. 통일신라시대 주악상의 악기와 상징
  • 사리 장엄구, 와당 등에 표현된 주악상
송혜진

10세기 이전의 불교 주악 도상 중에서는 감은사지(感恩寺址) 석탑의 3층 탑신 안에서 발견된 청동 사리 장엄구(靑銅舍利莊嚴具)를 빼 놓을 수 없다. 사리 장엄구는 석가모니의 시신을 화장하여 나온 뼈를 무덤에 안치하여 예배 공경하기 위한 장치이다. 때문에 온갖 정성을 기울여 만들었으므로 각 시대의 공예를 대표하는 우수한 작품이다. 그리고 주로 불탑 안에 안치하였으므로 탑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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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 서탑 청동 사리 장엄구
감은사지 서탑 청동 사리 장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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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에서 발견된 청동 사리 장엄구의 주악 도상은 사리기 윗면의 네 모서리에 앉아 비파·동발·요고·젓대를 연주하고 있는 인물상인데, 이들이 부처의 분신인 사리를 향해 네 가지 악기로 공양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비파를 연주하는 주악상은 왼쪽 다리는 무릎을 꿇고 오른쪽 다리는 무릎을 세워 앉은 자세이다. 비파의 생김새는 공명통이 약간 타원형으로 지판 끝의 마감이 봉황 머리로 되어 있어 특이하다. 동발을 연주하는 주악상은 무릎을 약간 벌리고 꿇어앉아서 두 손을 가슴 옆까지 올려 동발을 치려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요고를 치는 주악상은 왼쪽 다리는 무릎을 세우고 오른쪽 다리는 무릎을 꿇고 앉아 한 손은 치켜 올리고 다른 한 손은 요고의 한쪽 면과 수평이 되도록 놓았다. 이러한 자세 는 9세기 이전의 범종에 표현된 요고를 치는 모습의 주악상과 유사하다. 젓대를 부는 주악상은 다리 사이를 벌리고 앉아 양손으로 젓대를 잡고 오른쪽으로 고개를 숙여 젓대에 입술을 대고 있는 모습이다. 이 자세는 일본 고꾸후하찌망큐지 소장 무진사명 범종의 횡적을 부는 천인상과 모습이 같다.228)감은사지 청동 사리 장치 주악상에 대한 설명은 강순형, 「감은사탑 내 사리기 주악, 무동상론」, 『고고 미술』 178, 한국 미술사 학회, 1988, 3∼42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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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 서탑 청동 사리 장엄구의 주악 도상 세부
감은사지 서탑 청동 사리 장엄구의 주악 도상 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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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은사지 서탑 청동 사리 장엄구의 주악 도상 세부
감은사지 서탑 청동 사리 장엄구의 주악 도상 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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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10세기 이전의 주악 도상 중에는 와당(瓦當), 벽돌(塼), 불상의 광배(光背) 등에 새겨진 것이 여러 종류 전하는데 공통적으로 주악 비천과 가릉빈가의 모습이 주류를 이룬다. 와당과 벽돌에 새겨진 주악상으로는 동국 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수막새와 불국사(佛國寺) 강당지에서 출토된 주악문전(奏樂文塼), 신라 암막새 평와(平瓦) 등이 있다. 여기에는 요고·당비파·생황·장소·피리 등을 연주하는 주악상이 표현되어 있다.

불상 광배에 보이는 주악상으로는 계유명 전씨 아미타불 삼존 석상과 안압지(雁鴨池)에서 출토된 동판불(銅板佛)이 대표적이다. 계유명 전씨 아미타불 삼존 석상에는 많은 주악상이 석불의 좌우에 조각되어 부처를 장엄하고 있다. 안압지에서 출토된 동판불에는 횡적·적·비파를 연주하는 주악상이 나타나고 있다.229)황미연, 앞의 글, 1996, 32∼34쪽.

탑과 승탑 등의 석조 미술품과 동종, 사리기 등의 불교 미술품 주악 도상에는 생황·공후·비파·요고·횡적·피리·박·동발 등 주로 당악기가 표현되었다. 이들 악기는 둘 혹은 넷으로 짝수로 표현된 경우가 많고, 악기와 춤이 함께 어울린 예가 많아 특정 공연 편성을 암시하는 듯하지만, 이들 도상에서 전형적인 편성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또한 악기의 종류와 공연 구성은 10세기 이전의 문헌 기록에서 언급된 삼국 및 통일신라의 음악 문화와 완전히 일치하는 예도 찾기 어렵다. 따라서 이들 불교 미술품의 주악 도상에 표현된 악기와 내용은 음악사적으로는 통일신라시대까지의 당악 수용 사실을 알려 주는 방증 자료로 논의되고 있는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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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압지 출토 동판불
안압지 출토 동판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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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에서처럼 불교 미술품에 표현된 주악 도상의 주제는 비천상, 가릉빈가, 팔부중 등 불법 세계의 장엄과 부처에 대한 존숭(尊崇), 수호(守護)를 의미하는 주악 인물이 주류를 이루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미술 사학계에서 동시대 불교 미술의 양식으로 해석하고 있으며, 부분적으로는 중국이나 일본 등의 불교 미술 양식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고구려 고분 벽화나 신라 토우가 연향, 행렬, 장례 의식 등의 현실적인 음악 문화를 보여 주는 것과 차이가 있다. 즉, 현실 문화의 반영이라는 측면보다는 종교적인 세계관을 표현한 장엄 양식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통일신라시대의 당악 수용 사실을 뒷받침하는 자료로서뿐 아니라, 동시대 보편적 불교 문화 속에서 통일신라 고유의 주악 도상이 정착되었는지, 이 같은 고유성이 문화적 배경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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