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4장 음악사의 또 다른 흔적들
  • 6. 조선시대의 음악 도상 자료
  • 국가 의식 기록화에서의 주악 도상
송혜진

조선시대의 주악 도상은 이전 시대에 비해 종류와 주제가 다양하다. 문인화(文人畵), 풍속화(風俗畵), 기록화(記錄畵), 무신도(巫神圖), 불화(佛畵), 신선도(神仙圖) 등의 회화류에 궁중 의례부터 선비들의 풍류, 서민들의 민속 음악에 이르기까지 각종 음악 문화가 반영되어 있다. 이에 먼저 주악 도상을 종류별로 살펴 대표적인 도상을 소개하고, 이어서 주악 도상에 표현된 내용을 궁중 음악, 선비 풍류, 민속 음악 세 가지 주제와 관련지어 살펴보고자 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 의식을 그림으로 그려 예제(禮制)를 실행하기 위한 참고 자료로 삼거나 궁중과 상층 사회에서 이루어진 공식적인 연향과 행사를 기념하는 기록화로 남겼다. 궁중 기록화는 의궤류(儀軌類)에 수록된 반차도(班次圖) 또는 도식(圖式)·도설(圖說)을 지칭하는 의궤도(儀軌圖)와 실제로 거행된 국가 의식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재현한 궁중 행사도로 크게 나눌 수 있다.238)박정혜, 『조선시대 궁중 기록화 연구』, 일지사, 2000, 9쪽.

국가의 예제를 위한 참고 그림으로는 국가의 인재를 선발하는 과거 시 험과 관련된 것이 많다. 그 중에 방방도(放榜圖), 유가도(遊街圖), 북새선은도(北塞宣恩圖) 등에는 의례의 진행에 따라 수반된 주악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또 종묘제례도병(宗廟祭禮圖屛)에서는 일반 행사도에서 볼 수 없는 제례악 연주 장면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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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과시도(吉州科試圖)
길주과시도(吉州科試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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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궁중 행사도 가운데 주악 도상이 포함된 그림은 궁중 잔치인 진연을 그린 진연도(進宴圖), 관청에 소속된 동료들의 모임을 그린 계회도(契會圖), 원로들의 모임을 그린 기로회도(耆老會圖) 등이 있다. 국왕이 베푼 하사연(下賜宴)을 그린 그림도 넓은 의미의 궁중 기록화의 범주에 넣을 수 있다. 궁중의 의례와 연향, 행렬 등을 담고 있는 기록화의 주악 도상은 예전(禮典) 및 의궤 기록과 함께 때와 장소, 의례의 격에 따라 다르게 편성되는 악무의 현장성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18세기 후반부터 궁중 행사의 기념화로 8∼10폭의 대형 병풍을 많이 만들었는데, 그 내용은 대부분 궁중에서 베푸는 수작(受爵)·진연(進宴)·진작(進爵)·진찬(進饌) 등의 연회에 관한 의식이었다.

18세기 후반부터 20세기까지 제작된 궁중 연향 기록화는 영조병술진연도병(英祖丙戌進宴圖屛, 1766), 문효세자책례도병(文孝世子冊禮圖屛, 1784), 화성능행도병(華城陵幸圖屛, 1795), 순조기축진찬도병(純祖己丑進饌圖 屛, 1829), 헌종가례진하도병(憲宗嘉禮陳賀圖屛, 1844), 조대비사순칭경진하도병(趙大妃四旬稱慶進賀圖屛, 1847), 무신진찬도병(戊申進饌圖屛, 1848), 무진진찬도병(戊辰進饌圖屛, 1868), 왕세자탄강도병(王世子誕降圖屛, 1874), 왕세자두후평복진하도병(王世子痘後平復陳賀圖屛, 1879), 정해진찬도병(丁亥進饌圖屛, 1887), 신축진찬도병(辛丑進饌圖屛, 1901), 신축진연도병(辛丑進宴圖屛, 1901), 임인진연도병(壬寅進宴圖屛, 1902. 4.), 임인진연도병(壬寅進宴圖屛, 1902. 11.) 등이 전하고 있다.239)이 그림들은 국립 국악원에서 간행한 『조선시대 진연·진찬·진하 병풍』 한국 음악학 자료 총서 35, 2000에 수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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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년진찬도병 중 자경전내진찬
기축년진찬도병 중 자경전내진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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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 연향은 외진연(外進宴), 내진연(內進宴), 야진연(夜進宴), 익일회작연(翌日會酌宴) 등의 큰 틀 안에서 계기에 따라 행사 규모와 절차가 늘어나기도 하고 줄어들기도 하였다. 궁중 기록화와 의궤류의 기록을 비교하면 내용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며 악대 편성의 인원과 악기의 배치, 악기의 모양 등 세부적인 면에서는 사실과 차이가 있음이 확인된다. 이를테면 1829년(순조 29) 순조의 40세 생신과 등극 30주년을 기념한 진찬 의식은 병풍 그림과 『(순조기축)진찬의궤(進饌儀軌)』가 함께 남아 있다. 그 가운데 자경전내진찬도(慈慶殿內進饌圖)를 보면 악공들이 좌우에 두 줄로 앉아 있고 악기 배치도 어느 정도 대칭적으로 이루어져 있다. 방향·현금·가야금·아쟁·비파·대금·방향·교방고·장구 등의 악기가 나타나고, 오른쪽 맨 뒤에 운라가 있다. 그런데 의궤에는 자경전 내진찬에 선유락(船遊樂) 정재 때에 대령하는 내취(內吹)가 있었는데, 병풍에는 선유락만 그려져 있고 내취는 나타나지 않는다.240)국립 국악원, 앞의 책, 2000, 151∼153쪽. 또한 등가의 악공들은 의궤에는 43명 정도가 기록된 반면에 그림에서는 36명 정도만 확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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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현당석연도(景賢堂錫宴圖)
경현당석연도(景賢堂錫宴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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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의궤류와 문헌의 도식(圖式)이 고정된 한 장면만을 그리고 있는데 비하여 병풍에서는 진연의 내용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나타내고 있고, 또 진연 의식을 채색으로 그려 진연에 소용되는 의물 및 의상의 색상을 선명하게 알 수 있기 때문에 의궤 기록을 보완해 준다.241)송혜진, 「임인년 『진연 병풍』 9폭의 그림」, 『국악원 논문집』 창간호, 국립 국악원, 1989, 93∼119쪽.

궁중 연향 기록화의 주악도를 음악 주제로 살펴보면 의례적 성격이 강한 전정 헌가(殿庭軒架) 악대와 궁중 연향에서 정재와 함께 편성된 등가 악대(殿上樂)와 건고·편종·편경 등의 악기를 갖춘 헌가 악대, 규모가 작은 삼현육각(三絃六角) 편성의 악대, 일정한 편성의 틀에서 벗어난 사악(賜樂), 공식 행차를 위한 행렬 음악 편성으로 구분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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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묘조서연관사연도
중묘조서연관사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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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가 악대에는 경우에 따라 차이가 있었지만 가야고·거문고·해금·비파·아쟁 등의 현악기, 당적·대금·피리·퉁소 등의 관악기, 교방고(敎坊鼓), 장구, 박이 기본적으로 편성되었다. 이 밖에 양금·월금·특종·특경 등이 첨가된 예도 있다. 헌가 악대에는 기본적인 관현 악기 외에 편종·편경·건고·삭고·응고·축·어 등의 의례용 악기가 부가되었다.242)서인화, 「19세기 진연·진찬·진하 병풍의 음악적 내용과 자료적 가치」, 『조선시대 진연·진찬·진하 병풍』 한국 음악학 자료 총서 35, 국립 국악원, 2000.

궁중과 상층 사회의 음악 문화는 진연·진찬·진하(進賀)를 그린 궁중 행사도 외에 사연(賜宴), 계회(契會), 기로회(耆老會), 경수연(慶壽宴) 등을 그린 연회도에도 반영되어 있다. 여러 사람이 모여 베푸는 연회에는 술과 음식이 따르고 음악과 무용이 베풀어졌으며 시회(詩會)가 열리기도 하였다. 이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목적으로 그린 연회도에는 음악과 무용의 공연 장면을 담고 있는 것이 많아 음악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 가운데 사연도(賜宴圖)와 친림 연회도(親臨宴會圖)로는 1535년(중종 30) 중종이 왕세자의 스승인 서연관(書筵官)들에게 베푼 연회를 그린 중묘 조서연관사연도(中廟朝書筵官賜宴圖), 1668년(현종 9) 영중추부사(領中樞府事) 이경석(李景奭)이 임금으로부터 궤장(几杖)을 하사받을 때의 절차와 연회를 기록한 『사궤장연회도첩(賜几杖宴會圖帖)』, 1744년(영조 20) 9월 영조가 숭정전(崇政殿)에서 진연을 마치고 종친들에게 내려 준 잔치를 그린 종친부사연도(宗親府賜宴圖)가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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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궤장연회도첩』 지영궤장도
『사궤장연회도첩』 지영궤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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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궤장연회도첩』 선독교서도
『사궤장연회도첩』 선독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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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궤장연회도첩』 내외선온도
『사궤장연회도첩』 내외선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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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종은 경복궁 근정전 앞뜰에서 서연관에게 연회를 베풀었으며, 그림에 따르면 대금류의 횡적 한 명, 해금 혹은 비파류의 현악기 한 명, 거문고 혹은 가야금과 비슷한 현악기 한 명의 연주자가 보인다. 악공은 모두 홍포(紅袍)에 대(帶)를 두르고 있는데, 오른쪽 끝에 횡적을 부는 인물과 나머지 네 명의 모자가 다른 점이 특이하다.

『사궤장연회도첩』은 행사 절차에 따라 궤장을 맞이하는 지영궤장도(祗迎几杖圖), 교서(敎書)를 낭독하고 궤장을 하사하는 선독교서도(宣讀敎書圖), 연회를 베푸는 내외선온도(內外宣醞圖)의 세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장면인 지영궤장도에서 박을 잡은 집박 악사(執拍樂師)는 녹포(綠袍)를 입고 그 뒤를 따르는 악공들은 홍포를 입었다. 악기로는 횡적·종적·당비파· 장구·북·방향 등이 나타난다. 둘째 장면인 선독교서도를 보면, 악대 앞줄에는 집박 악사를 중심으로 방향과 관악기가 좌우 대칭으로 나타나고, 뒷줄에는 장구를 중심으로 당비파·북·대금·거문고가 배치되어 있다. 셋째 장면인 내외선온도에는 가운데에서 여기(女妓)들이 처용무(處容舞)를 공연하고 있고, 오른쪽으로 악대가 위치해 있다. 악기는 둘째 장면에서의 당비파와 대금이 각각 대금과 장구로 대치되었다.

영조는 1744년(영조 20) 종친부(宗親府) 건물 내에서 종친들에게 연회를 베풀었는데, 이 그림에는 녹포를 입고 박을 잡은 집박 악공이 보이고 홍포를 입은 악공 11명과 비파·북·해금·횡적·종적 등의 악기가 표현되어 있다.

문인들이 풍류를 즐기고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서 조직한 계회는 대부분 연회의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계회도의 대표적인 작품은 1612년(광해군 4) 송도부(松都府)에 근무하는 네 명의 관원이 모두 장원 급제한 일을 기념하여 계회를 열고, 이를 그림으로 그린 사장원송도동료계회도(四壯元松都同僚契會圖)이다. 송도의 태평관(泰平館)에서 벌어진 연회에는 계단 위에 악공 다섯 명이 앉아서 연주하고 있는데, 악기로는 장구, 대금, 피리 혹은 퉁소류의 종적, 교방고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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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부사연도
종친부사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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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이상의 원로 사대부들의 모임인 기로회와 기영회(耆英會)를 묘사한 그림은 현재까지 많은 작품이 전하고 있다. 1585년(선조 18)경으로 추정되는 선조조기영회도(宣祖朝耆英會圖)에는 일곱 명의 기로 인사가 참가한 가운데 두 명의 여기가 서로 마주보고 춤추고 있고, 세 명은 연회의 진행을 돕고 있다. 악기 편성은 박 한 명을 중심으로 오른쪽으로 북 한 명, 해금 한 명, 장구 한 명, 왼쪽으로 당비파 한 명, 대금 한 명 등 악공 아홉 명이 보인다. 박 연주자가 지금처럼 서지 않고 앉아서 연주하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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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조조기영회도
선조조기영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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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91년(숙종 17) 숙종이 70세 이상의 노모를 모신 신료에게 쌀과 비단을 내려준 일을 기념하는 연회를 그린 경수연도(慶壽宴圖)에는 첫째 건물과 둘째 건물 밖에 16명으로 구성된 악대가 보인다. 집박 악사는 홍포를 입고, 다른 악공들은 녹포를 입었는데, 뒷줄 왼쪽 끝의 악공도 홍포를 입었다. 집박 악사 옆에는 편경이 있으며, 그 밖에 북·장구·해금·당비파·관악기·거문고 등의 연주 모습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1724년(경종 4) 5월 2일 여섯 명의 기로 신료가 베푼 모임을 그린 『갑진기사연회첩(甲辰耆社宴會帖)』에는 덧마루가 깔린 뜰에서 처용무와 포구락(抛毬樂)이 공연되고 있다. 두 곳으로 나누어 앉은 여기들이 보이고, 오른쪽 하단에 앉은 여기 두 명이 현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집박 악사는 여기들을 향해 서 있다. 평상복 차림의 연주자는 모두 아홉 명으로 북이 왼쪽 끝에 있 고, 대금 2, 피리 혹은 퉁소류의 종적 1, 당비파 1, 해금 2, 장구 2 등의 악기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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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진기사연회도
갑진기사연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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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연회도에는 다양한 악기 편성의 사례가 보인다. 행사의 규모와 성격에 따라 전상악(殿上樂)과 전정 헌가를 모두 갖춘 경우도 있고, 사궤장연회도와 경수연도처럼 해금·비파·장구·교방고·대금·피리·당적·퉁소·종적 등으로 이루어진 경우 등 다양한 편성의 예가 보인다. 그리고 피리 2, 대금·해금·장구·북 각 1로 구성되는 삼현육각이 보편적으로 널리 퍼져 있었음이 확인된다.243)서인화, 「조선시대 연회도의 음악적 내용과 자료적 가치」, 『조선시대 연회도』 한국 음악학 자료 총서 36, 국립 국악원, 2001.

사연과 관료 문인들의 계회 등을 그린 연회도는 궁중 기록화나 일반 풍속화에서 볼 수 없는 관인(官人)의 풍속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 가 높다.244)유진영, 「조선시대 연회도의 유형과 회화적 특성」, 『조선시대 연회도』 한국 음악학 자료 총서 36, 국립 국악원, 2001, 239∼272쪽. 또 궁중 및 관아, 사가(私家), 중앙과 지방의 다양한 음악 풍속을 담고 있는 이들 그림은 악기 편성, 음악과 춤의 내용뿐 아니라 악공, 기녀, 광대, 무동, 취고수(吹鼓手), 세악수(細樂手)의 역할 등을 살필 수 있어 주목되는 점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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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감사향연도 부분-감사행영(監司行迎)
평양감사향연도 부분-감사행영(監司行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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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행영(監司行迎)
감사행영(監司行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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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임환영(到任歡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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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향연(宣化饗宴)
선화향연(宣化饗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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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행렬도로는 국왕이나 지방 관리 및 외교 사절의 행차 그림 등이 있다. 1795년(정조 19) 정조가 화성에 행차한 일을 기록한 화성행행도(華城行幸圖), 새로 부임하는 평양 감사를 평양의 백성들이 환영하는 연회 장면을 그린 평양감사향연도(平壤監司饗宴圖), 1785년(정조 9) 황해도 안릉 현감의 부임 행사를 보여 주는 안릉신영도(安陵新迎圖), 동래 부사가 초량 왜관(草梁倭館)에 온 일본 사신을 환영하기 위해 행차하는 모습을 기록한 동래부사접왜사도(東萊府使接倭使圖) 등의 외교를 위한 행차 그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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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릉신영도 부분
안릉신영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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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릉신영도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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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이 종묘나 사직의 제사를 지내기 위해서 행차할 때나 외국 사신을 맞이할 때 혹은 왕이 활쏘기를 하기 위해 성균관(成均館)으로 나설 때에는 대가(大駕)와 법가(法駕)의 주악이 따랐다. 다만 행렬의 성격에 따라 앞에 배치하는 전부 고취(前部鼓吹)와 뒤에 따르는 후부 고취(後部鼓吹)가 모두 편성되기도 하고, 하나만 배치되기도 하는 등으로 규모와 내용에 차이가 있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소가(小駕) 행렬에도 전부 고취와 후부 고취가 다 편성되었다. 국왕의 행렬에는 방향·당비파·퉁소·피리·당적·대금·해금·장구·교방고 등으로 구성되어 위의(威儀)를 돋웠다.

지방 관리의 행차에서는 안릉신영도에서처럼 본 행렬의 앞에는 각종 깃발이 앞서고 그 뒤에는 북·바라·각·나발·태평소로 편성된 취고수가 따르고, 행렬의 뒤에는 장구·북·해금·젓대·피리로 구성된 삼현육각의 세악수가 따랐다. 악대 편성 규모는 다르지만 기본 구성은 국왕의 행차와 유사하다.

이상에서 살핀 궁중 기록화는 조선시대 주악 도상 자료 중 내용이 가장 풍부하며, 국가 예제를 기록한 문자 기록과 의궤의 내용을 사실에 가깝게 시각적으로 보여 주는 자료라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높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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