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5장 소리의 기록, 음반사
  • 1. 1896년 첫 녹음부터 1910년대까지
  • 1913년 일본 축음기 상회의 우리 음악 양면판
노재명

1913년 일본 축음기 상회에서 취입한 독수리표 양면판(NIPPONOPHONE)에는 판소리 명창 송만갑과 그의 아들 송기덕, 경서도 명창 박춘재·문영수·이정화, 정가 명창 조모란·김연옥, 태평소 명인 한응태, 기독교 청년회, 성대모사(聲帶模寫) 명인 구승현 등의 녹음이 수록되어 있다. 모두 중요한 녹음으로 평가된다. 이때 취입한 동편제 명창 송만갑과 송기덕의 녹음은 판소리를 전문으로 이어 전승해 온 일가 2대의 육성이 동시대에 음반화된 최초의 기록으로, 1925년 중고제 명창 심정순과 그의 딸 심매향이 일본 축음기 상회에서 같이 나란히 음반을 낸 사례 등과 함께 판소리사적 자료 가치가 상당히 높다. 구승현이 녹음한 동물 소리 흉내 녹음 등은 매우 특이한 유성기 음반이다. 두 마리의 개와 닭이 서로 싸우는 것을 구승현 혼자서 실감나게 성대모사한 것 등이다. 구경거리가 많지 않고 유성기가 최고의 진보적인 신매체였던 당시에는 이처럼 음악 외에도 갖가지 소리 기록이 유성기 음반에 담겼다. 당시 이 음반을 가진 사람은 부의 상징물로서 마을 사람들을 모아 놓고 함께 이 소리 묘기를 신기하게 감상하며 자랑하였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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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만갑 명창
송만갑 명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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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축음기 상회는 1913년부터 본격적으로 양악(洋樂) 음반을 취입하기 시작하였다. 1913년 기독교 청년회 회원들의 찬송가와 창가, 1920년대 초반 박채선과 이류색의 신식 창가(新式 唱歌), 1925년 안기영, 홍난파의 양악 음반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들은 당시 신문화에 대한 대중들의 호기심과 취향의 변화 과정을 읽을 수 있는 자료이다. 또 단순히 외국 음악을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우리나라 토양에 맞게 음악을 구사하였던 그들의 노력과 흔적도 동시에 살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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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승현의 성대모사 음반
구승현의 성대모사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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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기영의 독창 음반
안기영의 독창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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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 입고 자동차, 라디오, 유성기를 장만하고 사람들을 모아 놓고 평소 듣지도 보지도 못한 양식 요리를 대접하며 희한한 양악 소리를 들려주면 당시 사람들은 우주선을 목격한 것처럼 깜짝 놀라고 부러워 하였을 것이다. 물론 갓 쓰고 한복 입고 한식 먹고 판소리 듣고 전통 문화에 익숙하여 신문화가 체질에 맞지 않은 사람도 일부 있었지만 사람들은 대개 양악에 관심을 더 많이 가졌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받아들였다. 그에 따라 음반에 담기는 녹음과 대중적으로 유행하는 음악은 차츰 외래 음악이 국악을 밀어내고 주도권을 차지해 나갔다.

이처럼 유성기와 음반이 당시에는 음악 감상의 용도로 이용되었지만, 부의 과시, 첨단 신문물 소유 욕구, 새로움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의 측면으로도 대중들에게 강하게 작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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