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5권 기록과 유물로 본 우리 음악의 역사
  • 제5장 소리의 기록, 음반사
  • 2. 1920년대부터 1945년 광복까지
  • 1928∼1945년 일본 빅타 음반 회사의 우리 음악 음반
노재명

1900년대 후반에 우리 음악 음반을 제작 판매하던 미국 빅타 음반 회사가 시장을 포기하고 되돌아간 지 20여 년 만인 1927년 전기 녹음 기술을 개발하여 일본에 지사를 설립한 다음 다시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 일본 축음기 상회가 음반 시장을 거의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빅타는 막대한 자본을 바탕으로 어깨를 겨루었다. 이때부터 시작된 두 회사의 치열한 경쟁은 우리나라 음반 시장이 한 단계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 빅타 음반 회사는 1928년에 우리나라 문화 예술 음반을 취입하기 시작하였고, 1929년부터 광복 때까지 빅타 정규반, 고급반, 주니어 대중반, 아동반(8인치)으로 나누어 음반을 제작하였다. 이 회사에서는 판소리 명창 김창환, 이동백, 송만갑, 정정렬, 방진관, 한성태, 김세준, 이화중선, 이중선, 김초향, 김소향, 임방울, 임옥돌, 박록주, 김여란, 김연수, 정광수, 하농주, 오비취, 김소희, 신숙, 조금옥, 조소옥, 신향심, 김옥련, 김강남월 등이 음반을 취입하였다. 경서도 명창으로는 박춘재, 문영수, 김종조, 민형식, 최섬홍, 백운선, 구재회, 김능사, 신해중월, 표연월, 김추월, 이영산홍, 장금화, 길진홍, 조모란, 김연옥, 박농옥, 박월정, 김인숙, 김옥엽, 장학선, 이정렬, 김주호, 김순홍, 이금옥, 손진홍, 김춘홍, 김란홍, 김부용, 신옥도, 김채운, 곽옥옥, 곽경옥, 곽명월, 전경희, 김진명, 고연옥, 김옥진, 손금홍, 이진홍, 송금선, 유선화, 정유색, 조기탁, 이원녀, 김향란 등이 이 회사에서 녹음을 남겼다. 그리고 거문고 산조의 창시자 백락준과 그의 제자 신쾌동, 대금 명 인 김계선·박종기, 양금 명인 김상순, 해금 명인 김덕준(진), 퉁소 명인 유동초·정해시, 단소 명인 이병우, 가야금 명인 심상건·김해선·강태홍·정남희, 가야금 병창 명인 오태석·이소향·김채련, 정가 명창 고영태, 불교 음악 명인 하룡남·장월암, 남도 무속 명인 신수덕, 정악 합주단 조선 정악 전습소원, 고수 한성준·지동근 등도 이 회사에서 음반을 취입하였다. 또 대중 가수 이애리수·강석연·강홍식·안명옥·전옥·김복희·박단마·이규남, 양악 전공자 안기영·이인범·김천애, 영화 변사 김영환·서상필, 그리고 윤백남(동화), 김순임, 김정임, 계혜련, 진정희, 신흥 동인회(동요) 등도 이 이 회사에서 음반을 제작되었다. 일본 빅타 음반 회사에서 낸 전집물로는 이왕직 아악부 음반(초판 13SP, 재판 6SP)과 정정렬 도창 창극 춘향전 전집(19SP)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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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백의 새타령 음반
이동백의 새타령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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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빅타 음반 회사가 일제 강점기에 제작한 우리나라 관련 음반 가운데 대중반(주니어) 일부가 원반으로 남아 있다. 이는 1992년까지 일본 제이브이시(JVC) 음반 회사에 보관되어 있었고 1993년 서울 음반에서 인수하여 복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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