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6권 쌀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 제1장 벼농사의 도입과 쌀 문화의 시작
  • 2. 벼농사의 전래와 시작
  • 벼 재배의 기원과 전래 과정
박찬흥

벼가 어느 지역에서 처음 재배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다. 구체적으로 인도설, 동남아시아설, 윈난·구이저우설(雲南貴州說)·화남설(華南說)·양쯔강 하류설 등의 중국설, 인도 아삼(Assam)·중국 윈난 지역설, 필리핀 또는 그 인접 도서설(隣接島嶼說), 아프리카설, 아시아 동남부 및 아프리카 양 지역설 등이다. 그 가운데 아시아 대륙 동남부의 열대 및 아열대 지역에서 가장 먼저 재배되었다는 동남아시아설이 가장 유력하다고 인정되어 왔지만, 근래에는 인도의 아삼, 미얀마 북부, 타이 북부, 중국 남서부를 잇는 동서(東西)로 긴 지대가 벼 재배의 기원 중심이 되어 이곳에서 방사형(放射形)으로 퍼져 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중심 지역으로부터 재배 벼인 인디카종과 자포니카종이 퍼져 나갔는데, 이 가운데 자포니카가 중국 윈난 지방에서 양쯔강을 끼고 강 하류의 동북 방향으로 올라와 한반도와 일본 열도로 전파되었다.8)이은웅, 앞의 책 ; 허문회, 「벼농사의 기원과 벼의 이용」, 『한국 짚 문화』, 국립민속박물관, 1991 ; 이춘녕, 「한국 고대 농업 기술과 생산력 연구」, 『국사관논총』 31, 국사편찬위원회, 1992.

중국 화남 지방에서는 인디카가, 화중 지방에서는 인디카와 자포니카가, 화북 지방에서는 자포니카가 각각 재배되었다. 벼가 원래 열대성 식물이지만, 한랭한 화중·화북 지방으로 전해지면서 인디카에서 자포니카로 변해 갔다고 이해하고 있다.

벼는 중국 화남 지방으로부터 한반도로 전해졌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 구체적인 전파 경로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의 견해가 있다. 첫째는 북방설이다. 인도의 아삼과 윈난 지방에서 하모도(河姆渡) 유적이 있는 양쯔강 하류를 거쳐 북상하여 산둥 반도(山東半島)와 랴오둥 반도(遼東半島)를 통해 육로로 한반도에 들어왔다는 견해이다. 그리고 한반도 남부에서 일본 규슈(九州)로 전파되었다고 이해한다.

둘째는 양쯔강 하류 또는 산둥 반도에서 서해를 건너 곧바로 한반도 서해안으로 들어왔다는 서해 횡단설이 있다. 양쯔강 하류에서 수확 도구인 배 모양의 반달 모양 돌칼이 쌀과 함께 발굴되었는데, 한반도 서해안에서 나온 유물들과 아주 유사하다는 점이 강력한 근거가 되고 있다.

셋째는 남방설이다. 인도의 아삼과 중국의 윈난성 지역에서 타이를 거치고 오키나와(沖繩)를 지나 쿠로시오 해류(Kuroshio current)를 타고 규슈와 한반도 남부에 들어왔다는 견해인데, 방증 자료가 없다는 단점이 있다. 그 밖에 북방과 서해를 횡단하는 길, 즉 두 지역에서 동시에 전래되었다는 견해도 있다.9)이은웅, 앞의 책 ; 임효재, 「Ⅲ. 한국사의 시대적 특징. 1. 선사」, 『한국사』 1, 국사편찬위원회, 2002 ; 심봉근, 「한국 선사 시대 도작 농경」, 『한국 고고학보』 27, 한국고고학연구회, 1991.

이러한 벼농사의 전파 경로에 대한 견해는 모두 관련 유물, 특히 반달 모양 돌칼(半月形石刀), 홈자귀(有溝石斧), 토기 문화 등과 탄화미(炭化米) 및 볍씨 자국의 품종 논의 등이 연결되어 진행되고 있다.10)김정배, 「청동기시대의 사회와 경제」, 『한국사』 3, 국사편찬위원회, 1997. 현재 우리나라의 벼 전래 과정은 북방설이 많은 지지를 받고 있지만, 서해 횡단설도 유력한 가설로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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