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6권 쌀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 제1장 벼농사의 도입과 쌀 문화의 시작
  • 2. 벼농사의 전래와 시작
  • 한반도에서 벼농사의 시작 시기
박찬흥

우리나라에서 가장 처음 발굴된 쌀 자료는 1920년에 조사한 김해 패총에서 발견된 탄화미이다. 출토된 탄화미는 자포니카로 기원전 1세기경의 쌀로 밝혀졌다. 일본에서는 기원전 3세기의 쌀이 여럿 출토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자료를 토대로 일본 열도에서 한반도로 벼농사가 전래되었다고 주장하는 일본인 연구자도 있었으나, 현재 이 견해를 따르는 한국인 연구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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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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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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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1970년대에 경기도 여주군 흔암리 유적, 충남 부여군 송국리 유적, 평양의 남경 유적 등에서 잇따라 탄화미가 출토되었다. 이들 유적에서 출토된 탄화미는 모두 자포니카로 밝혀졌고, 연대는 청동기시대로 측정되 었다. 부여 송국리 유적에서 출토된 탄화미는 기원전 6∼5세기경으로 밝혀졌고, 흔암리 유적의 연대는 기원전 13∼12세기까지 소급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또 한반도에서 출토된 벼 재배의 흔적 가운데 가장 위쪽에 자리한 평양 남경 유적의 연대는 기원전 999년이다. 이에 따라 한반도의 벼농사는 기원전 10세기경, 즉 청동기시대에 시작되었다고 보는 견해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1980년대 들어, 전남 나주의 영산강 유역에서 발견된 벼의 화분(花粉) 분석 결과 기원전 2000년기 후반에 벼가 재배되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고, 경기도 강화군 우도 조개더미(貝塚)에서 출토된 민무늬 토기(無紋土器) 바닥에 남은 인디카로 추정되는 볍씨 자국을 근거로 후기 신석기시대에 벼가 재배되었을 것으로 추측하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전자는 연대 추정에 잘못이 있고, 후자의 토기는 신석기시대가 아니라 청동기시대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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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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볍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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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뒤 한강 하류에서 발견된 볍씨들을 근거로 점차 신석기시대 후기인 기원전 2000년경 전후에 벼농사가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경기도 김포군 가현리 토탄층(土炭層)과 경기도 일산 가와지 유적에서 출토된 탄화미에서 기원전 2000년경에 해당되는 연대가 나왔던 것이다. 이 연대를 그대로 따른다면, 신석기시대에 벼가 한강 하류 유역에서 재배되었다고 인정할 수 있지만, 이들 볍씨와 토기가 출토된 층위(層位)와 연대에 대하여 회의적인 견해를 보이는 학자들도 있기 때문에 좀 더 확실한 고고학적 증거가 필요한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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