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6권 쌀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 제1장 벼농사의 도입과 쌀 문화의 시작
  • 2. 벼농사의 전래와 시작
  • 청동기시대의 벼농사
박찬흥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농경 문화 유적은 황해도 봉산군 지탑리 유적이다. 조·피 등의 곡물 낟알, 돌낫, 돌쟁기, 갈돌, 돌도끼, 토기 등이 발견되었다. 그리고 평남 온천군 궁산리 유적, 평북 용천군 신암리 유적 등에서 발견된 농구(農具) 등의 유물을 통해 볼 때 신석기시대 중기 이후에 농경을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당시 농경 형태는 밭농사에 의한 잡곡 농사가 중심이었을 것이다.

벼농사의 전래 시기는 잇따른 유적의 발굴로 신석기시대 후기라는 견해가 최근 계속 주장되고 있지만, 벼농사가 본격화되는 것은 청동기시대 중기에 들어서이다. 벼농사를 지은 직접적인 증거로는 불에 탄 쌀인 탄화미, 바닥이나 몸통에 볍씨 자국이 찍힌 민무늬 토기, 청동기시대의 논 유적 등이 있다. 또 식물체 안에 흡수·축적된 규산(硅酸)으로 구성된 유리질(琉璃質)인 식물 규산체(plant-opal)의 분석을 통해 벼농사의 기원과 양상을 연구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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볍씨 자국
볍씨 자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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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화미가 출토된 곳은 부여 송국리, 여주 흔암리 유적을 비롯하여 강릉 교동, 충주 조동리, 진주 대평리, 산청 소남리 유적 등으로, 주거지 특히 저장 구덩(貯藏穴)에서 보리, 수수, 피, 조 등과 함께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토기 바닥에 볍씨 자국이 있는 민무늬 토기는 하남 미사동, 서산 휴암리, 천안 백석동, 안면도 고남리, 순천 대곡리, 합천 봉 계리, 거창 대야리, 울산 검단리 유적 등에서 출토되었다. 또 청동기시대의 논은 논산 마전리, 보령 관창리, 울산 무거동 옥현 유적 등에서 조사되었다.11)국립 중앙 박물관, 『겨레와 함께한 쌀』, 2000, 22∼23쪽 ; 심봉근, 앞의 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출토되어 보고된 벼 자료는 대체로 신석기시대 중기 이후 단계부터 한강 하류 유역을 중심으로 발견되고 있으며, 청동기시대가 되면 한반도 중부 이남 지역으로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다. 그리고 벼의 종류는 신석기시대에는 인디카 또는 유전적으로 분화되지 않은 다양한 형태의 볍씨가 주류를 이루다가 청동기시대에 이르면 점차 자포니카가 우세하게 된다.12)조현종, 「우리나라 도작 농경의 기원과 도작 유형」, 『농업사 연구』 3-2, 한국농업사학회, 2004.

벼의 자연 생장 가능 지역이 한반도 중북부 지역을 넘지 못하고, 대부분의 벼농사 관련 유적이 이 지역과 일치하고 있으며, 『삼국지(三國志)』에는 “오곡(五穀)과 벼(稻)를 심기에 알맞다.”는13)『삼국지(三國志)』 권30, 위서(魏書)30, 오환선비동이전(烏丸鮮卑東夷傳) 제30, 변진(弁辰). 기록이 있어 삼한, 즉 한반도 남부 지역에서 벼농사를 지은 기록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벼농사는 한반도 중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생업 경제의 중심 작목(作木)으로서의 의미를 확보하였다고 볼 수 있다.14)김정배, 『한국 민족 문화의 기원』, 고려대학교 출판부, 1973, 95∼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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