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6권 쌀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 제2장 고려시대 쌀의 위상과 생산 소비 문화
  • 1. 쌀 생산의 확대
  • 논농사와 밭농사
이정호

오늘날 농사라 하면 쉽게 벼농사를 연상한다. 그만큼 쌀 생산이 전체 농업 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역사 전체를 놓고 볼 때 벼농사의 비중이 높아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우리나라의 전통 사회에서 주로 지은 농사는 벼농사가 아니라 잡곡 농사였다.

한반도에서 처음 시작한 농사의 형태는 대체로 좁쌀, 피, 수수 등을 재배하는 밭농사(旱田農事)였다. 관련 유적의 출토 유물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신석기시대 유적인 황해도 봉산 지탑리 유적에서는 좁쌀과 피가 발견되었고, 평양 남경 유적에서도 좁쌀이 발견되었다. 청동기시대 유적 가운데 무산 호곡, 회령 오동 유적에서도 기장, 수수, 콩, 팥 등이 발견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농사를 시작할 때는 밭농사를 지어 잡곡을 먹었던 것이다. 그 후 대체로 민무늬 토기(無紋土器) 중기 단계에 이르러 한반도 서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논농사(水田農事)가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논농사가 확대되어 나가는 추세를 보였지만, 농업에서 주류를 형성하는 것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였다. 논농사가 중심이 되는 것은 조선시대 중기, 즉 17세기경에 이르러서였다. 이전 시기는 대부분 밭농사가 중심이었다. 조선 초기의 상황을 살펴볼 수 있는 『세종실록지리지』를 보더라도 논과 밭의 비율이 3 대 7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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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화 곡물(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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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화 곡물(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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