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6권 쌀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 제2장 고려시대 쌀의 위상과 생산 소비 문화
  • 1. 쌀 생산의 확대
  • 전과 답
이정호

우리나라의 전통 사회에서 밭농사의 비중이 컸다는 사실은 논과 밭을 표시하는 글자를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토지를 뜻하는 대표적인 글자인 ‘전(田)’은, 우리나라에서 보통 밭을 의미한다. 반면에 논은 특별히 ‘답(畓)’이라는 우리나라에서 만든 글자를 써서 구분하고 있다. 한편 일본의 경우에는 보통 전(田)이라 하면 논(水田)을 의미하며, 반대로 밭(旱田)을 ‘전(畑)’ 혹은 ‘전(畠)’이라는 글자로 쓰고 있다.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논과 밭을 표현하는 글자가 다르다는 점은 그만큼 각각 밭농사와 논농사로, 농업의 중심이 달랐던 사정에 말미암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전통 사회에서 쌀은 일반민의 주식(主食)이라고 보기도 어렵다. 쌀이 일상의 주식으로 자리 잡은 것 역시 최근의 일이다. 전통 사회에서 쌀은 차라리 지배층의 주식이었거나 국가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 조세로 납부하는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문화로서 ‘쌀 문화’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쌀 생산의 비중이나 소비에서 다수를 차지하게 된 최근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닐까. 그러나 시각을 좀 달리해 볼 필요가 있다. 전통 사회는 사회 성격상 신분제 사회이고 또 지배 신분층이 사회와 국가를 유지·운영해 나가는 측면이 강하였다. 전통 사회를 발전시켜 나간 원인은 생산 계층으로 일반 농민과 함께 지배 신분층의 역할 또한 무시할 수 없는 측면을 지니고 있었다. 지배층의 식량이라고 해서 쌀의 중요성이 낮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더군다나 쌀의 위상과 가치 등은 전통 사회를 유지·운영하는 측면에서도 무척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쌀은 다른 곡물에 비해 포기당 수확량도 많고 맛도 뛰어나다. 수확 후 저장 기간 또한 길어, 국가의 다양한 용도에 장기간 사용할 수 있는 장점도 가지고 있다. 국가가 조세로 거두어들여 각종 용도로 사용하는 데 더 없이 적절한 곡물이었다. 우리나라 중세 사회에서 쌀이 곡물 가운데 첫 번째로 손꼽히게 된 데는 사회 제도와 국가 운영의 측면에서도 원인이 있었던 것이다.

이 장에서는 쌀이 우리나라 중세 사회에서 차지하는 위상과 기능에 대해, 특히 고려시대를 중심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표> 중국 고대의 오곡과 구곡
구분 곡물 종류 전거
오곡 마(麻)·기장(黍)·피(稷)·보리(麥)·콩(豆) 『주례(周禮)』 천관(天官) 질의(疾醫)
벼(稻)·피(稷)·보리(麥)·콩(豆)·마(麻) 『초사(楚辭)』 대초(大招)
기장(黍)·피(稷)·콩(菽)·보리(麥)·벼(稻) 『맹자(孟子)』 등문공(滕文公) 상(上)
구곡 기장(黍)·피(稷)·차조(秫)·벼(稻)·마(麻)·콩(大豆)·팥(小豆)·보리(大麥)·밀(小麥) 『주례』 천관 태재(太宰)
✽諸橋轍次, 『大漢和辭典』, 五穀·九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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