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6권 쌀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 제2장 고려시대 쌀의 위상과 생산 소비 문화
  • 1. 쌀 생산의 확대
  • 외국인이 본 고려의 쌀
이정호

고려에서 재배된 쌀이 무엇이었는지는 당시 고려를 방문한 외국 사신의 언급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1123년(인종 1) 송나라 사신의 한 사람으로 고려에 파견되어 온 서긍(徐兢)은 체류하는 동안 보고 들은 내용을 토대로 『고려도경』을 썼다. 이에 따르면 서긍은 고려에서의 쌀 재배와 관련해 “갱(秔)만 있고 나(稬)는 없는데 쌀알이 특히 크고 맛이 좋다.”고 기록해 두었다.88)서긍, 『고려도경』 권23, 잡속, 종예. 『송사(宋史)』의 기록에서도 “고려에 갱(秔)은 있지만 출(秫)은 없고 갱(秔)으로 술을 빚어 만든다.”고 하였다. 송나라에 파견된 고려의 사신 또한 고려의 실정에 대해 설명하면서 갱도(秔稻)가 잘 재배된다고 언급하고 있다.89)『송사(宋史)』 권487, 열전246, 외국(外國)3, 고려(高麗).

여기서 갱은 ‘멥쌀’을, 나와 출은 ‘찹쌀’을 뜻한다. 이들 기록에 따른다면 고려에서는 모두 멥쌀만 재배하고 있었던 셈이다. 외국인이 본 고려의 쌀은 멥쌀이었다.

또한 서긍은 고려의 쌀 저장 기술이 뛰어난 점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보통 쌀에 공기가 통하지 않으면 썩기 마련인데, 지금 고려의 창고에서는 여러 해가 지나도 쌀이 여전히 햅쌀 같은 것은 대체로 공기를 통하게 거적 을 쌓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90)서긍, 『고려도경』 권16, 관부(官府), 창름(倉廩).

그러면 당시에 찹쌀이 없었다고 기록한 것은 사실일까? 고려에 찹쌀이 없다는 기록 자체를 무시할 수는 없지만, 몇 가지 의문점이 있다. 먼저 『향약구급방』에는 약재로 찹쌀인 ‘나미(糯米)’가 기록되어 있는데,91)『향약구급방』 방중향약목초부(方中鄕藥目草部). 이 책이 고려에서 출토되는 재료를 토대로 지어진 것임을 감안할 때 고려에 찹쌀이 산출되고 있었던 사정을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조선 초기의 것이지만 1492년(성종 23)에 출간된 『금양잡록(衿陽雜錄)』에는 곡물 품종을 다수 분류하여 열거하고 있는데, 그중 벼 품종으로 찰벼 계열인 구렁(仇郞粘)·쇠노(所伊老粘)·다다기(多多只粘) 등의 이름을 찾아볼 수 있다.92)강희맹(姜希孟), 『금양잡록(衿陽雜錄)』, 농가(農家) 1, 곡품(穀品). 이러한 찰벼들이 조선 초기에 갑자기 나타나지는 않았을 터이니 이전 시기부터 재배된 것일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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