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6권 쌀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 제2장 고려시대 쌀의 위상과 생산 소비 문화
  • 2. 쌀 증산 정책
  • 권농 정책
이정호

농업 생산 활동이 주된 경제 활동이던 전통 사회에서 농업 생산 증진을 위한 정책이 기본을 이루었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고려 왕조 역시 앞선 시기와 마찬가지로 농민과 농업을 보호하는 한편 농업 생산 활동을 진작시키기 위한 각종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쌀을 비롯한 곡물의 증산을 위해 수리 시설을 확충하고 토지 개간을 장려하는 한편, 시비 기술과 농기구의 개선 등 농업 기술의 증진을 위한 시책을 적극 추진하였다. 쌀 재배가 늘어나게 된 것은 농업 기술의 발달과 직접 관련된 것이었다.99)고려시대의 농업 기술에 대해서는, 이태진, 「14·15세기 농업 기술의 발달과 신흥 사족」, 『동양학』 9,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소, 1979 ; 위은숙, 「12세기 농업 기술의 발전」, 『부대사학』 12, 부산대학교 사학회, 1988 ; 이평래, 「고려 후기 수리 시설의 확충과 수전 개발」, 『역사와 현실』 5, 한국역사연구회, 1991 ; 이종봉, 「고려 시기 수전 농업의 발달과 이앙법」, 『한국 문화 연구』 6, 부산대학교 한국문화 연구소, 1993 참조.

확대보기
미륵하생경변상도 부분
미륵하생경변상도 부분
팝업창 닫기

자연재해 등으로 피해를 입은 농가에 대해 국가로서는 우선 이들이 다시 영농에 임할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었다. 그 구체적인 사례로는 이들 피해 농가에 식량과 이듬해 농사에 필요한 종자를 지급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100)『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권3, 현종 7년 정월 ; 『고려사절요』 권4, 문종 8년 4월. 더 나아가 농사에 필요한 농기구를 지급하거나, 관에서 소를 대여해 주기도 하였다. 식량과 종자는 일반 농민들 스스로 마련하는 것이 원칙이었겠지만, 자연재해 혹은 전쟁 등으로 인해 조달하기 어려워졌을 경우, 관에서 지급해 주는 은혜가 베풀어졌던 것이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