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6권 쌀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 제3장 조선시대의 벼농사와 쌀
  • 5. 쌀밥·떡·볏짚
  • 쌀밥
이정철

이제까지 우리는 벼농사와 관련된 다양한 측면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이것들은 쌀의 생산적 측면에 해당된다. 이제부터 쌀의 소비적 측면에 대해서 살펴보자. 이것과 관련해서 우리는 쌀밥, 떡 그리고 벼농사의 부산물인 볏짚에 대해서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것들이야말로 벼농사보다 훨씬 더 쌀의 문화사적 측면과 관련된다.

여러 번 지적하였듯이, 조선시대 대부분 기간 동안 대다수 백성들에게 쌀은 주식이 아니었다. 주식으로 하기에 쌀은 너무 귀하였고, 너무 적은 양만 생산되었다. 쌀밥은 매우 특별한 음식이었다. 하지만 18세기를 지나면서 논 면적은 급격히 늘어났고 밭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이것은 사회 전체가 쌀 생산에 매달리기 시작하였음을 뜻한다. 사회 전체적으로 높아진 인구압이 이런 현상의 배경이었다. 제한된 땅에서 늘어나는 인구를 부양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벼농사가 선택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역설적으로 백성들에게도 쌀을 먹을 수 있는 기회가 늘었다. 쌀이 주식으로 자리를 잡아 가는 모습은, 1833년(순조 33) 한양에서 일어났던 ‘쌀 폭동’을 통해서 도 확인된다.216)강만길, 『조선 후기 상업 자본의 발달』, 고려대학교 출판부, 1974, 84쪽 ; 한국역사연구회,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1, 청년사, 2005. 12장, 서울의 장사꾼들(이욱) 부분에 상세하다. ‘쌀 폭동’은 적어도 한양에서는 중간층 이하 사람들조차 쌀을 주식화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식생활에서 쌀 소비가 늘어났음은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의 저자 서유구(徐有榘, 1764∼1845)도 언급하였다. 그는 거의 100년 이래 쌀을 먹는 풍조가 만연하여, 옛날에 잡곡을 심었던 땅 중에 논으로 바뀐 곳이 무척 많다고 말하였다.217)한국학문헌연구소, 『농서(農書)』 36, 의상경계책(擬上經界策) 하(下), 한국 근세 사회 경제사 총서 3, 1986. 이 말이 19세기 전반에 나온 것임을 감안하면, 18세기 전반이나 중반 이후로 쌀을 먹는 풍조가 퍼져 나갔음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확대보기
서유구 초상
서유구 초상
팝업창 닫기

물론 농민들은 대부분 인구압으로 경작 규모 자체가 줄어들었기 때문에, 1년 내내 쌀을 먹을 수는 없었다. 또 쌀을 먹는다고 해도 대개는 도정(搗精)을 좀 덜한 쌀을 먹었다.218)『승정원일기』 정조 23년 3월 19일. 추수 후부터 초봄까지 쌀을 먹었고, 늦은 봄부터는 대개 보리를 먹어야 했다. 그조차 여의치 못하면 구황 작물(救荒作物)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이렇듯 농민들의 쌀 소비는 각자의 살림살이 정도에 따라, 해마다의 풍흉에 따라 많은 편차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18·19세기에 쌀은 보통 사람의 주식으로 자리를 잡아 나갔다.

쌀이 대다수 사람들에게 언제나 충분한 양식은 아니었다. 그 때문에 그들에게 쌀밥을 먹는 동안은 행복한 시간이었다. 쌀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 대다수의 이런 집단적 경험과 기억은 쌀이야말로 이상적 먹을거리이며, 밥은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는 강력한 인식을 만들어 냈다. 그 결과 조선시대는 쌀의 중요성에 대한 많은 관습과 속담을 남겼다. 지금은 거의 사라졌지만, 과거 시골에는 집집마다 성주 단지가 있었다. 이것은 집을 지키는 가신(家神)들 중 으뜸으로 꼽히는 성주신을 모신 쌀 항아리였다. 이 성주 단지를 대청(혹은 마루) 한 구석에 모셔 두고 집안의 안녕을 바랐다. 이것은 쌀 자체에 곡령(穀靈), 즉 곡식의 영이 깃들어 있다는 생각이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밥술이나 뜬다.”, “밥줄 떨어진다.”는 표현은 생계의 넉넉함이나 생계 수단을 잃는 것을 말한다. 밥은 그 자체가 생계와 동일시되었다. “밥숟갈 놓다.”는 표현은 죽었다는 것의 다른 말로, 밥을 생명 그 자체와 동일시하는 표현이다. 또 사람이 죽어갈 때 대나무 통에 쌀을 담아 귓가에 흔들면 목숨이 잠시 연장된다는 말도 있었다. 이 말은 쌀이나 쌀밥에 대한 바람이 얼마나 절실하였는지를 담고 있다. 평상시에 얼마나 원하였으면, 죽어 가는 순간에 죽음조차 잠시 미룰 수 있었겠는가.219)이규태, 앞의 책, 107쪽.

확대보기
성주 단지
성주 단지
팝업창 닫기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