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6권 쌀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 제3장 조선시대의 벼농사와 쌀
  • 7. 쌀의 문화 정체성
이정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이지만, 오늘날 전 세계는 거센 세계화의 물결 속에 있다. 사람과 물자, 돈과 정보가 국경을 넘어 흘러 다니고 있다. 그런 세계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들 중 하나가 음식의 세계화일 것이다. 20년 전만 해도 한국 어린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자장면이었지만, 어느덧 그것이 햄버거로 바뀌었고 다시 피자나 파스타 같은 음식으로 바뀐 지 오래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연간 쌀 소비량은 해마다 줄어들고 있다. 최근 몇 년간의 통계를 보면 이제 우리나라 사람 한 명이 일 년에 먹는 쌀의 평균은 80㎏이 안 된다. 이것은 10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30㎏ 가까이, 20년 전과 비교하면 거의 50㎏ 가까이 줄어든 양이다. 다시 말해서 한 세대 전과 비교하면 이제 우리나라 사람이 식사 때 먹는 밥의 양은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이것이 우리나라 사람의 식습관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가리킬까?

어떤 면에서 음식은 언어와 비슷한 면이 많다. 음식이나 언어는 모두 선천적이지는 않지만 그에 못지않게 강력하다. 두 가지 모두 어머니를 통해서 전달받는다. 어릴 때 한번 익힌 언어나 음식은 이미 그 사람의 일부가 되고 말아서, 그것이 익숙해진 이후에는 좀처럼 분리되지 않는다. 이런 면에서 사회와 개인은 완전히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근본적으로 개인은 사회 그 자체를 내면화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언어가 그렇듯이 음식 역시 문화의 가장 핵심적인 요소들 중 하나이다. 고유한 문화가 있는 곳에는 고유한 음식이 있기 마련이다. 또한 문화의 본질 속에는 정체성과 관련된 요소가 있듯이, 음식 역시 그렇다. 이것을 잘 보여 주는 것이 외국으로부터의 쌀 수입 문제이다. 전근대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쌀의 생산적·경제적 측면은 극단적으로 중요하였다. 하지만 오늘날 쌀을 포함한 농업 전체가 우리나라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0%에도 훨씬 못 미친다. 이제 경제적 측면에서만 볼 때 농업을 우리나라의 중심적 산업이라고 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경제적 근대화 과정은 벼농사의 이러한 성격 변화와 짝한 과정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외국 쌀을 수입하는 문제에 대하여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심리적으로 거부감을 느낀다. 이것은 쌀이 우리 사회의 집단적 정체성과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247)이 점은 일본도 마찬가지이다. 오누키 에미코, 박동성 옮김, 『쌀의 인류학-일본인의 자기 인식-』, 소화, 2001. 요컨대 쌀은 전근대 우리 사회에서 정치·경제를 포함한 전 부문에서 가장 중요한 대상이었지만, 그러한 중요성을 잃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여전히 집단적 정체성의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쌀의 성격 변화야말로 우리나라의 전근대와 근대를 가르는 이정표(里程標) 같은 의미를 갖는다.

근대를 통과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쌀이 겪은 사회적 의미 변화를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아마도 박경리(朴景利, 1926∼2008)의 『토지(土地)』는 그것에 대한 한 은유가 될 수도 있을 듯하다. 이 소설은 구한말 지리산 자락에 있는 하동 평사리에서 5대째 만석꾼으로 내려오던 최씨 집안의 흥망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이야기이다. 소설은 만석꾼 집안과 그 동네에서 여러 대 살아왔던 소작인들의 일상과 정서를 손에 잡힐 듯이 그린다. 하지만 그 속에는 지주와 소작인들의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동학 농민 운동군과 독립군, 형평(衡平) 운동과 친일파, 양반과 신지식인, 기생과 신여성 등 구한 말에서 1945년까지의 온갖 정경(情景)과 군상(群像)이 등장한다.

왜 저자는 소설의 제목을 『토지』라고 붙였을까? 이 긴 이야기에서 『토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마 이 소설에서 ‘토지’가 직접적으로 뜻하는 것은 최씨 집안이 차지하였던 평사리 땅, 소설 속 주인공 서희가 그토록 되찾으려고 애썼던 그 땅을 말할 것이다. 하지만 소설이 후반부로 가면서 차차 드러내듯이 ‘토지’는 단순한 땅은 아니다. 독자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한말 이후 나라 없이 이역(異域)을 떠돌던 조선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일 수도 있고, 아마도 궁극적으로는 조선 사람들 그 자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쌀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갖는 문화사적 의미는 『토지』에서 저자가 그리려고 하였던 그것과 비슷한 면이 있다. 최씨 집안의 현실적·경제적 힘으로서의 토지가 조선의 패망과 함께 사라졌듯이, 조선시대에 쌀이 가졌던 정치적·경제적·사회적 힘은 조선이 패망하면서 변질되기 시작하였다. 하지만 땅은 잃어도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살아남았고 그들의 삶이 지속되는 한, 그 토지는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쌀 역시 마찬가지이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전통’에 대해서 많은 말이 있지만, 사실 조선시대로부터 우리에게 전해지는 것 중에서,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감성적으로 내면화되어 있는 것은 많지 않다. 이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자신의 전통을 돌보는 정성이 적었기 때문이었다기보다는, 우리나라가 지난 100여 년 동안 경험하였던 변화가 너무나 거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 삶의 구석구석을 살펴보더라도 오늘날 100년 전의 흔적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다. 아직도 우리에게 남아 있는 옛것의 대다수는 단지 겉모습만 남았을 뿐, 현실적이고 감성적인 알갱이를 전달하지 못하는 것이 많다.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문화사적으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쌀이 가지는 의의는 압도적이다. 벼농사의 확대는 18세기 이후 점증하는 인구압에 맞서서 조선 사람들이 사회적으로 선택한 방법이었다. 이것은 사람이 살아 가는 기초적 구조인 가족 제도를 변화시켰을 뿐 아니라, 기본 먹을거리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말하자면 쌀은 18세기 이후 조선 사람들의 일상적 삶을 변화시켰던 것이다. 앞서 보았듯이 쌀은 우리나라 역사에 긍정적으로 기여한 측면뿐만 아니라, 구한말 외세에 대한 대응에서 보듯 그늘도 드리웠고, 그 밝은 면과 어두운 면 모두가 우리나라 사람의 정체성으로 깊이 각인되었다. 또 지난 100여 년간 쌀은 깊은 정체성의 변화를 경험하였다. 전근대에 쌀이 현실적·경제적·정치적 측면에서 압도적으로 중요하였다면 이제 그것은 문화적 정체성의 측면에서만 힘을 잃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떤 면에서 이것은 쌀에 새겨진 우리나라의 전근대와 근대의 흔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