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6권 쌀은 우리에게 무엇이었나
  • 제4장 개항에서 일제강점기 쌀 수출과 농촌 사회
  • 2. 일제강점기 쌀 생산과 농촌 사회
  • 쌀 생산과 유출을 위한 경제 기반 정비
  • 농업 개발을 위한 금융 기구의 설립
김윤희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된 이후 일본은 일본의 면화와 조선의 쌀을 안정적으로 교환하기 위해 조선의 경제 환경을 재편하는 한편, 식민지 경영 비용을 식민지에서 조달하기 위한 목적으로 경제 제도 정비에 나섰다.

1905년 일본은 제일 먼저 대한제국 통화였던 백동화(白銅貨)를 정리하고 일본 제일은행권(第一銀行券)을 유통시켜 일본과 대한제국 사이에 존재하던 환율을 폐지하였다. 일본이 대한제국 화폐 정비에 나선 것은 기존 양국 간 존재하던 환율의 극심한 변동으로 인해 일본 자본이 안정적으로 이윤을 확보하지 못하였기 때문이었다. 일본 상인과 기업 나아가 조선의 토지 경영을 위해 일본 자본의 진출을 꾀하기 위해서는 양국 시장의 경계였던 환율의 폐지가 무엇보다 필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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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화(앞면)
백동화(앞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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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화(뒷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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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동화를 정리한 통감부는 일본의 일개 사립 은행이었던 제일은행권을 유통시켜 식민 지배에 필요한 자금을 조선 내에서 조달하였다. 그리고 1909년 11월 식민지 중앙은행으로서 한국은행을 설립하여 식민지 통화 체 계를 구축하였다. 한국은행은 1911년 조선은행으로 개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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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은행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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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금융 조합 협회
조선 금융 조합 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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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식산은행
조선식산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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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금융 조합
지방 금융 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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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자국의 자본주의 발달에 중요하였던 조선 쌀의 생산과 유통 나아가 농촌 경제를 통제할 금융 기구를 설립하였다. 1906년 설립된 농공은행(農工銀行)은 조선의 농공업 개량과 발달을 표방하면서 조선의 주요 도시에 세워졌다. 그리고 1907년에는 농촌 각 지역에 지방 금융 조합이 설립되어 농촌 경제를 통제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1910년 토지 조사 사업(土地調査事業)과 지세 개정(地稅改定)을 통해 식민지 재정 재원을 확보한 후 농촌 경제를 통제하기 위한 금융 기구의 계통화도 추진하였다. 1918년 6개 주요 도시에 있던 농공은행을 병합하여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을 설립하였으며, 같은 해 도시 금융 조합을 설립하고 기존에 설립되어 있던 지방 금융 조합을 함께 통제할 금융 조합 연합회를 설립하였다.

이로써 농촌 경제를 통제할 금융 기구의 정비가 마무리되었는데, 농공업의 식민지 경영을 위한 자금은 조선식산은행에서 금융 조합 연합회를 통해 금융 조합으로 공급되었으며, 그 반대의 경로를 통해 자금을 흡수하여 식민지 농업 경영을 위한 자금의 순환을 계통적으로 수립하였다.266)河合和男, 「산미 증식 계획과 식민지 농업 지배」, 『한국 근대 경제사 연구』, 사계절, 1983, 375∼421쪽.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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