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7권 농업과 농민, 천하대본의 길
  • 제1장 철제 농기구의 보급과 농사의 혁명
  • 3. 삼국시대 및 통일신라시대의 수전
  • 삼국시대 초기 수전 경영
전덕재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초기까지 밭이 논보다 압도적으로 많았다.105)조선 초기 세종대에 수전은 전체 경작지의 28%에 불과하였다가 1798년(정조 22)에는 전체 농경지의 53%를 차지할 정도로 수전의 개간이 진전되었다고 한다(이현혜, 앞의 글, 1997 ; 앞의 책, 216쪽). 당연히 삼국시대 초기에도 논의 비율이 그리 높지 않았을 것이다. 중국의 경우 한대에 동일 면적에서 밭보다 논의 수확량이 서너 배 더 많았다고 한다.106)天野元之助, 「中國古代農業の展開-華北地方の形成過程-」, 『東洋學報』 30, 東洋文庫和文紀要, 1979, 139쪽. 조선시대에도 논의 수확량은 밭보다 두 배쯤 더 많은 것으로 인식하였다.107)『과농소초(課農小抄)』 수리(水利). 臣請枚擧 陂塘之所 以爲利者 夫水田所收 常倍旱田. 수전의 확대가 농업 생산의 증대와 직결되었기 때문에 고대부터 수전의 개발에 크게 관심을 기울여 왔다.

최근에 여러 곳에서 삼국시대의 논 유구가 발견되었다. 울산 무거동 옥현 유적을 비롯하여 부여 구봉리 유적, 부여 궁남지, 울산 야음동 유적, 창원 가음정동 유적, 진주 평거동 유적 등에서 수전 유구가 발견되었고, 이 밖에 여러 유적에서 소규모의 수전 유구가 조사되었다.108)곽종철·이진주, 앞의 글, 2003 ; 곽종철, 앞의 글, 2002, 26∼33쪽 ; 김도헌, 앞의 글, 2003 ; 양기석, 앞의 책, 2005, 165∼176쪽. 수전 유구는 대부분 소하천이나 계곡의 물을 보와 같은 시설을 설치하여 막고 관개한 유형이다. 그런데 다음의 기록은 백제 초기에 소택지(沼澤地)를 논으로 개간하였음을 알려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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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시대 수전 유구
삼국시대 수전 유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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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인(國人)에게 남택(南澤)에 도전(稻田, 논)을 개간하라고 명하였다.109)『삼국사기』 권24, 백제본기2, 고이왕 9년 2월.

여기서 ‘택(澤)’은 자연적으로 물이 고여 있는 소택지나 저습지를 의미한다. 수리 관개 기술이 저급한 수준이라면, 수전은 물의 공급이 원활한 지역에서 우선 개발되는 것이 상례였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소택지나 저습지 그리고 그 부근이었다. 국인에게 명하여 남택에 도전을 개간하게 한 것은 초기에 백제가 소택지나 저습지 또는 그 부근을 수전으로 만들려고 권장한 사실을 반영한다. 삼국시대 초기에 소택지나 저습지 부근에 수전을 얼마만큼 개간하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백제에서 소택지를 수전으로 개간하도록 장려한 사실로 미루어 보면 이미 적지 않은 수전이 개간되었을 것이다.

소택지나 저습지 부근에 조성된 논은 연중 물을 원활하게 공급받을 수 있어 안정적으로 벼농사를 지을 수 있다. 또 땅이 가는 점토질이어서 간단한 목제 농기구로 갈이 작업과 흙덩이를 부수는 작업을 쉽게 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실제로 수전에서 흙덩이를 부수거나 땅을 고를 때 사용하던 쇠스랑 모양의 나무괭이와 고무래가 광주 신창동 유적, 무안 양장리 저습지 유적에서 발견되었다.110)국립 광주 박물관, 앞의 책, 1997, 91∼94쪽 ; 목포 대학교 박물관·무안군·한국 도로 공사, 1997 『무안 양장리 유적』, 1997, 246∼272쪽. 반면에 이러한 곳에 조성된 논은 지하수의 수위가 높고 배수가 불량한 담수전(湛水田)이어서 생산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우선 담수 상태가 오래되면, 공기의 유통이 나빠지고 기온이 내려가서 유기 물질을 분해하는 미생물의 활동이 감소된다. 산소의 공급이 원활하고 기온이 적당히 높아야 미생물이 왕성한 활동으로 유기 물질을 산화 분해하여 벼의 생육에 필요한 질소, 인산, 칼리 등의 영양분을 공급할 수 있게 되는데,111)조백현·오왕근·이동석, 『토양 비료』, 어문각, 1972, 48∼64쪽. 배수가 불가능한 담수전에서는 미생물이 왕성하게 활동할 수 없으므로 벼의 생육에 필요한 영양분이 부족하여 다수확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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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스랑 모양 나무괭이
쇠스랑 모양 나무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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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배수가 불량하고 항상 담수 상태인 수전은 대개 작토(作土)나, 그 바로 밑의 토양은 글레이층(Gley·Glei層)의 점토로 이루어진다. 담수 상태가 오래되면 3가의 철 화합물에서 산소가 이탈하여 2가의 철 화합물(4Fe(OH)₃-O₂=4Fe(OH)₂+H₂O)로 변하는데, 이때 환원태의 철(Fe(OH)₂, FeS)이 환원층에 침전하여 흙색은 적갈색에서 청색, 녹회색, 청회색으로 바뀐다.112)노신규·곽판주, 『토양학 개론』, 정음사, 1974, 97쪽. 이처럼 담수 상태가 오래되어 환원 작용이 강하게 일어나면, 황산기가 환원되어 황화수소(H₂S) 가스를 발생시킨다. 만약에 토양 중에 산화철이 풍부하다면, 산화철이 환원되어(Fe⁺⁺⁺→Fe⁺⁺), 이것과 S⁻⁻이 화합하여 불용성의 황화철(FeS)로 응고되어 침전해 버리기 때문에 벼가 그 가스의 피해를 입지 않게 된다. 그러나 환원 작용이 심하여 황화수소가 대량 발생함에도 산화철이 부족한 경우에 황화수소와 결합할 철이 부족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S⁻⁻이 벼 뿌리에 침입하여 썩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를 근부 현상(根腐現象)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면 뿌리에 물이나 영양소의 공급이 원활하지 않 게 되어 마침내 잎의 밑부분부터 윗부분까지 마르는 호마엽고병(胡麻葉枯病)이 생기고, 결국 수확기에 쭉정이 벼가 많이 나와서, 즉 종실(種實)이 부실해져 수확량이 줄어든다. 여름철에는 잎과 줄기가 무성하다가 가을에 종실이 부실하다고 하여 이를 다른 말로 추락 현상(秋落現象)이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현상은 관개수의 공급이 용이하면서도 환원 작용이 심하게 일어나 작토층(作土層)이 썩어 점차 흙색이 암회색이나 청회색으로 변한 노후화답(老朽化畓)에서도 나타날 수 있다.113)노신규·곽판주, 앞의 책, 89∼92쪽 ; 조백현·오왕근·이동석, 앞의 책, 104∼110쪽. 특히 배수가 불량한 저습답이면서도 유기 물질이 많은 수전에서 피해가 더 심하다. 광주 신창동 저습지 유적에서 발견된 두꺼운 벼 껍질 층에 종실을 이루지 못한 쭉정이가 다량으로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것은 신창동 유적이 조성될 당시에 그곳의 수전이 주로 저습답이었고, 저습답에서 흔히 발생하는 근부 현상의 결과로 결실이 부실하였던 사정과 관련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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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 껍질
벼 껍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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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하천이나 계곡에 흐르는 물을 보에 가두어 관개한 논은 관개와 배수가 비교적 원활하여 저습지의 논보다 생산성이 높긴 하지만, 보와 같은 간단한 수리 시설로 수위를 높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어서114)보통 작은 규모의 보(洑)에 의하여 물을 상승시킬 수 있는 높이는 수십 ㎝에서 1m 내외에 불과하였다고 한다. 그것으로 관개할 수 있는 지역은 하천 연변의 좁은 범위에 한정될 수밖에 없다. 자연 제방 또는 그것과 저습지 사이의 중간 지대까지 관개가 가능하도록 하려면 한 단계 더 진전된 관개 기술이 필요하였다. 또 토사 유입, 홍수, 하천의 유로 변경 등으로 수리 시설이 매몰되거나 파괴되기 쉬웠다. 여기다가 가뭄이 들어서 소하천이나 계곡의 물이 말라 버려서 논농사를 짓지 못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런 의미에서, 보와 같은 간단한 수리 시설로 관개한 논의 생산성도 그리 높았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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