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7권 농업과 농민, 천하대본의 길
  • 제3장 조선 전기 농업 발달과 농촌 사회 그리고 농민
  • 1. 조선 왕조가 추진한 농정책
  • 수령의 농형·우택 보고
염정섭

감농의 다른 측면인 농형과 우택 보고가 수행된 과정을 살펴보자. 한 해 농사가 시작될 무렵부터 조정의 농형 파악은 시작되어, 이 작업은 추수 이후까지도 계속되었다. 전국 8도의 농사 형편은 언제나 조정에 정확한 정보가 확실하게 집결되어야 하였지만, 특히 심하게 가물거나 큰 홍수가 났을 때는 더욱 그러하였다. 각지의 농형을 조정에 보고할 책무는 당연히 수령과 감사가 맡고 있었다. 각도의 농사 형지 즉 농형은 조정에서 논의해야 할 주요한 문제였다.329)『세종실록』 권52, 세종 13년 6월 병진. 조정에서는 각지의 농형을 파악하고 적당한 대책을 마련하는 논의를 집중적으로 진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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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사 부임
관찰사 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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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찰사가 올린 농형 보고 가운데 한 사례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1445년(세종 27) 10월 경상도 도관찰사(都觀察使) 이계린(李季疄)의 상서(上書)에서 상세한 농형 보고의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이계린은 7월 이후 도내의 군현을 돌아보고, 33개 주현의 농작(農作)이 재해를 입었다고 보고하면서 조세의 감면을 요청하였다. 이때 이계린이 올린 보고는 수전(水田)의 경우 파종 상황, 입묘(立苗) 실 상, 출수(出穗) 여부 등을 살펴본 바에 의거한 것이었고, 한전(旱田)의 경우도 포기의 조밀(稠密)함, 상재(霜災) 여부 등을 조사하여 재해 정도를 파악한 것이었다.330)『세종실록』 권110, 세종 27년 10월 계축. 이처럼 봄철의 기경, 파종에서부터 가을의 수확에 이르는 시기에 걸쳐 농형을 조사하였고, 특히 수확 무렵에는 확실한 사정을 알기 위해 감사가 군현을 순시하며 농작을 파악하였다.

봄에 기경을 시작할 때에는 기경지(起耕地)와 진황지(陳荒地)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조사하는 과업이 수령에게 부여되었다. 그리고 흉년이 든 이듬해인 경우 농형과 우택 상황에 대한 파악은 더욱 면밀하게 이루어졌다. 우택과 농형은 언제나 긴밀한 연관 관계 속에서 파악되었다. 우택 보고로 축적된 강우량 수치와 우택의 정도에 대한 정보는 최종적으로 국왕에게 도달되었다.

각도의 농형을 파악하기 위한 탐문은 조정에서 늘 이루어졌다.331)『세종실록』 권32, 세종 8년 6월 갑자 ; 권33, 세종 8년 7월 갑오. 수령과 감사의 견문에 근거한 보고뿐 아니라 다른 관리를 활용하여 작황, 농사 형지에 대한 정보를 수합하였다. 특히 조관(朝官) 가운데 하위직 관료를 가뭄이 든 지역이나 큰물이 지나간 지역에 파견하여 농형을 파악해 보고하게 하였다. 추수 상황에 대해서 조관을 파견하여 숨김없이 조사하기도 하였다. 특히 앞서 가뭄이나 큰물 등 재상(災傷)을 입어 추수 사정이 좋지 못할 것으로 예견되는 지역에는 조관이 늘 파견되었다. 경우에 따라 행대감찰(行臺監察)을 파견하여 감사나 수령의 농정 수행이 적절하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검토하고 살피는 일도 실행하였다.

감농 즉 농작 독려와 농형·우택 파악이라는 과정은 농사 감독의 긴밀함과 농형 파악의 일상성이라는 특징을 지닌 것이었다. 그리하여 실제의 농사일이 제대로 잘 수행될 수 있도록 국가적인 차원에서 감독하고 있었다. 그리고 농형의 충실한 파악에 근거하여 균등한 전세(田稅)를 부과하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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