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7권 농업과 농민, 천하대본의 길
  • 제3장 조선 전기 농업 발달과 농촌 사회 그리고 농민
  • 1. 조선 왕조가 추진한 농정책
  • 진제장 운영과 환자 분급
염정섭

조선 초기에 각 지역에서 수행된 황정은 각도의 관찰사와 수령 그리고 경우에 따라 중앙에서 파견된 경차관 등이 맡고 있었다. 특히 황정 가운데 가장 주요한 부분인 굶주린 백성 즉 기민을 구제하기 위해 곡물을 나누어 주는 과정인 구황을 이들이 맡아서 수행하였다. 기민을 구제하기 위해 이들에게 곡물을 나누어 주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였는데, 진제장(賑濟場)을 설치하여 기민에게 먹을 것을 무상으로 지급하는 것과 의창곡(義倉穀)을 활용하여 환자를 분급하는 것이었다.

먼저 굶주린 백성들에게 죽을 끓여 나누어 주기 위해 진제장을 곳곳마다 설치하였다. 진제장은 대개 흉년이 든 해의 이듬해 정월부터 설치되어 양맥이 성숙할 때까지 운영하였다. 경우에 따라서는 양맥을 수확한 이후에도 진제장을 계속 운영하기도 하였지만 이는 아주 특별한 경우였다. 한성 부(漢城府)에도 진제장을 설치하였지만, 대개 보제원(普濟院), 홍제원(洪濟院), 이태원(梨泰院) 등에 진제장을 설치하는 것이 상례(常例)였다.338)『세종실록』 권105, 세종 26년 윤7월 정해. 외방의 진제장은 흉년이 닥친 고을 단위로 설치하였지만, 흉년을 모면한 이웃 고을이 흉년에 빠진 다른 고을의 백성을 구제하기 위하여 고을과 고을의 경계선상에 진제장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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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휼전칙(字恤典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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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황의 일반적인 과정은 굶주린 백성들에게 나중에 갚을 것을 전제로 곡물을 나누어 주는 환자(還上)였다. 환자(還上)는 한자의 음대로 하면 ‘환상’이라고 하기 쉽지만 ‘환자’라 읽는데, 봄철에 곡물을 나누어 주었다가 가을철에 되돌려 받는 것이었다. 이른바 진제장이 무상(無償) 구제라면, 환자는 유상(有償) 구제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환자에 활용되는 곡물은 대부분 의창(義倉)에 축적해 놓은 것이었다. 의창을 통한 환자의 분급(分給)으로 기민을 구제하는 것은 단순한 과정이 아니었고, 또한 대단히 중요한 일로 취급되었다.339)김훈식, 『조선 초기 의창 제도 연구』, 서울 대학교 박사 학위 논문, 1993. 수령은 의창을 운영하는 데 사실상 독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을 국왕으로부터 위임받았다. 수령이 지방 군현 통치에서 국왕의 대행자 노릇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의창곡 운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겨졌던 것은 빈부(貧富)를 분별하여 곡물을 나누어 주고, 이때 적당하게 차등을 두는 것이었다. 또한 절용(節用)하는 법을 충실하게 수행하여 가능하면 많은 곡물을 소모하지 않고 구황을 마무리하면서도 굶어 죽는 백성들이 없게 하는 것이었다. 이런 점에서 의창곡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줄 때 가장 이상적인 방식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측면을 자세히 조사한 장부에 의거하여 분급하는 것이었다. 각 고을의 수령에게 민호(民戶)의 빈부, 전지(田地)의 다소, 숙채(宿債)의 유무 등 흉년이 들었을 때 백성들이 버텨나갈 수 있는 경제력의 정도를 파악하여 장부에 기록해 두고, 풍년·중년(中年)·흉년을 나누어 의창곡 분급 대상을 미리 설정해 두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고 제시하였다.340)『세종실록』 권111, 세종 28년 2월 정묘.

의창을 통한 환자 분급의 본질적 성격은 결국 종량(種糧) 즉 종자(種子)와 양식(糧食)의 분급이었다. 흉년이 닥쳤을 때 각 도에서 분급한 환자 즉 종량을 살필 때 우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분급량의 막대함이다. 한 사례를 살펴보면 1444년(세종 26) 4월 충청도 관찰사 김조(金銚)가 조정에 요청한 구황곡은 곡종(穀種) 15만 석과 구량(口糧) 25만 석을 합쳐 총 40만 석이었다. 세종은 호조로 하여금 곡종 7만 석, 구량 20만 석을 내어 주게 하였는데, 김조의 요청은 이미 도내에 모아 두었던 의창곡을 모두 소모한 뒤에 나온 것이었다.341)『세종실록』 권104, 세종 26년 4월 계묘. 이와 같은 환자의 분급으로 막대한 양의 곡물이 굶주린 백성들에게 나누어졌다. 종량의 분급 가운데 종자용 곡물은 벼를 비롯하여 콩, 보리, 밀 등 수전과 한전에서 경작하는 곡물뿐 아니라 재해가 발생하였을 때 대파(代播)에 이용하는 메밀 등 각종 작물이 모두 해당되었다. 흉년이 들게 되면 백성들은 양식이 떨어져 나물, 풀을 먹으며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어 외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이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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