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7권 농업과 농민, 천하대본의 길
  • 제3장 조선 전기 농업 발달과 농촌 사회 그리고 농민
  • 2. 농지 개간과 수리 시설 축조
  • 조선 왕조의 농지 개간 장려
염정섭

조선 초기에 국가적인 차원에서 추진된 농지(農地) 개간(開墾)은 새로운 왕조가 반드시 이룩해야 할 큰 과업이었다. 고려 말 이후 무너진 농업 생산 기반을 새로 확충하고 그리하여 농업 생산력을 복구하기 위한 것이었다. 농지 개간을 통해 농경지를 확보하는 일은 국가 뿐 아니라 농민들에게도 필요한 사업이었다. 특히 농경지의 확보는 국가의 입장에서 수세지(收稅地)를 넓히는 일이기도 하였다. 또한 농업을 장려하기 위한 목표로 수행하는 여러 가지 시책(施策) 가운데 농지의 절대 면적을 확대하는 개간은 언제나 권장되고 장려되는 방법이었다.342)조선 초기 농지 개간, 북방 개척 등에 대해서는 다음 책이 자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경식, 『조선 전기 토지 제도 연구』(Ⅱ), 지식 산업사, 1998. 새로운 농경지를 개발하였을 때는 조세 감면의 특혜가 주어졌고, 농민들 누구나 농지 개간의 주체가 될 수 있었다. 농지 개간은 연해 지역의 개간, 저지(低地)와 저습지(低濕地) 개간, 양계(兩界) 지역 개발과 병행된 북방 지역 개간 등 여러 방면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신전(新田)과 진황지(陳荒地)의 개간을 장려하고, 수차(水車)와 같은 새로운 수리 도구를 이용하기 위한 시도도 이루어졌다.343)이태진, 「조선시대 수우(水牛)·수차(水車) 보급 시도의 농업사적 의의」, 『천관우 선생 환력 기념 한국 사학 논총』, 정음 문화사, 1985 ; 『한국 사회사 연구-농업 기술의 발달과 사회 변동-』, 지식 산업사, 1986 재수록. 진황지를 농경지로 개발할 수 있게 된 데에는 농업 기술이 발달하고 그것이 농민들의 경험 속 에 축적된 결과이기도 하였다.344)이호철, 「수전 농법」, 『조선 전기 농업 경제사』, 한길사, 1986, 50쪽.

조선 왕조의 개간 장려는 수령에 대한 업적 평가 항목으로 개간 전답 면적의 많고 적음을 포함시키는 데까지 이르렀다. 간전(墾田) 즉 개간하여 경작지로 활용하는 전답의 면적 크기에 따라 수령에게 상벌을 내릴 것이라는 규정을 만들었다. 이러한 수령에 대한 개간지 확보 독려와 포상 등의 규정은 나아가 일반 백성들이 개간에 나서도록 장려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개간자에 대한 소유권 내지 이용권에 대한 우선 승인, 면세 혜택의 부여 등을 통해 개간을 장려하고 독려하였다.345)이경식, 앞의 책, 1998, 58쪽.

15세기 후반에 편찬된 『경국대전(經國大典)』에 3년이 넘은 진전(陳田)은 다른 사람이 신고하여 경작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규정이 들어 있었다.346)『경국대전』 권2, 호전, 전택(田宅). 過三年陳田 許人告耕. 이 규정은 진전 상태에 놓여 있는, 이전에 경작지로 활용하던 농지를 다시 경작지로 만드는 것을 권장하는 규정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관(官)에 신고하고 경작하는 것을 허락한다(許人告耕).”는 규정 속의 한 구절이 진전을 경작한 사람에게 그 땅의 주인 노릇까지 부여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에 있었다. 사실 진전을 경작한 사람 입장에서는 그 땅을 자기의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경국대전』의 이 규정은 주인이 있는 진전 즉 유주진전(有主陳田)도 기경한 사람을 주인으로 삼는다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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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동궁 전답 경자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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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6년(명종 11)에 명종이 내린 수교(受敎)에 이러한 상황을 확실하게 규정하였다. 3년이 지난 진전을 관에 신고하고 경작해 먹는 것을 허락해 준 것은 영구히 전토(田土)를 지급해 주는 것이 아니며, 만약 본주(本主)가 나타나서 돌려 달라고 요구하면 이에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다.347)『수교집록(受敎輯錄)』, 호전(戶典), 제전(諸田). “過三年陳田 許人告耕者 非謂永給 待本主還推間 姑許耕食(嘉靖丙辰承傳)” ; 『속대전(續大典)』 권2, 호전, 전택(田宅). 하지만 16세기 이후에 주인이 없는 무주(無主) 한광처(閑曠處)일 경우 기경자(起耕者)를 주인으로 삼는다는 규정은 확고한 것이었다. 이러한 법 규정을 마련하여 시행하는 것은 농민들에게 한광지(閑曠地)를 개간하여 자기 소유 토지를 확보하도록 장려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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