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7권 농업과 농민, 천하대본의 길
  • 제3장 조선 전기 농업 발달과 농촌 사회 그리고 농민
  • 3. 벼농사 짓는 법과 밭작물 재배법
  • 15세기 벼의 재배법
염정섭

조선 초기의 벼 재배법은 경종법을 중심으로 몇 가지 방법으로 나뉘어 있었다. 경종법이란 농사의 시작에서부터 파종과 파종 직후의 작업까지 포함하는 복합적인 작업을 가리키는데, 수전의 전토 상태에 따라서 기경하는 방식이 달라지고, 기경한 이후의 숙치(熟治), 마평(摩平)의 형태도 달라지게 된다. 또한 파종 직전의 상태로 정리된 전토의 특성에 따라서 파종법도 또한 변한다. 따라서 수전의 경종법은 벼를 경작하는 여러 가지 경작 방식이 지니고 있는 각각의 독자적인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농업 기술의 핵심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농사직설』에서도 경종법을 세 가지로 나누고 있다.

『농사직설』은 다음과 같이 세 가지 경종법을 제시하고 있는데, 바로 조선 초기 벼 재배법의 대강을 표현하고 있다.

도종(稻種)에는 이른 것이 있고, 늦은 것이 있다. 경종법에는 수경(水耕)이 있고, 건경(乾耕)이 있으며, 또한 삽종(揷種, 苗種)이 있다. 제초하는 법은 대개 모두 같다.389)『농사직설』 종도(種稻) : 『농서』 1, 10면.

『농사직설』에 기록된 경종법은 수경과 건경, 그리고 삽종 즉 이앙(移秧)이었다. 수경과 건경은 곧 수경 직파와 건경 직파를 가리키고 있다. 세 가지 경종법 가운데 15세기 수전 농법에서 일반적으로 채택하고 있던 경종법은 바로 수경 직파법(水耕直播法)이었다.390)이태진, 「14·15세기 농업 기술의 발달과 신흥 사족」, 『동양학』 9, 단국 대학교 동양학 연구소, 1979 ; 김용섭, 앞의 책, 1991 ; 이호철, 앞의 책, 1986. 『농사직설』에서 수전에서 벼를 재배하는 경종법 가운데 수경 직파법을 첫머리에 올려 서술하고 있는 것은 당시에 수경 직파법이 가장 지배적인 경종법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수경 직파법은 조도(早稻)와 만도(晩稻) 양자 모두에 적용될 수 있는 기술이었다. 수경 직파법에서 수경(水耕)이란 물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논을 기경한다는 뜻이고, 직파(直播)란 벼가 자라 날 논에 종자를 뿌리면 그 자리에서 벼가 자라나도록 한다는 뜻이었다. 이러한 수경 직파법이 15세기에 논에서 벼를 재배하는 가장 일반적인 재배법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벼 경종법 가운데 오늘날 모내기법, 이앙법으로 알려져 있는 삽종법이 『농사직설』에 세 가지 경종법 중의 하나로 수록되어 있다. 『농사직설』에 소개되어 있는 이앙법의 기술 내용을 살펴보면, 모판의 관리, 이앙의 구체적인 방식 등이 잘 정리되어 있어 기술 내용도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고려 후기에 해당하는 14세기 후반에 이미 이앙법이 알려져 있었고, 일부 농민이 이앙법을 활용하고 있었다. 고려 말에 활약한 인물들이 남긴 시문(詩文)에서 당대 이앙법의 존재를 알려 주는 증거를 찾아볼 수 있다.391)이종봉, 「고려 시기 수전 농업의 발달과 이앙법」, 『한국 문화 연구』 6, 부산 대학교 한국 문화 연구소, 1993.

또한 태종대(1400∼1418)에 편찬된 『농서집요(農書輯要)』도 이앙법 기술을 수록하고 있다. 『농서집요』는 중국 황토 고원에서 수도(水稻)를 재배 하는 방식을 옮겨 놓으면서 문맥을 바꾸어 당시의 농업 기술, 즉 이앙법으로 번안(飜案)하였다.392)『농서집요』 수도(水稻). 『농사직설』은 삽종(揷種) 즉 묘종(苗種)이라는 명칭으로 이앙법의 기술 체계를 소개하였다.393)『농사직설』 종도(『농서』 1, 10면). 이와 같이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에 이르는 시기에 우리나라에서 이앙법을 실시하고 있던 것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조선 초기 벼 경종법에 관심을 기울일 때 중요한 점은 이앙법이 존재하였는가, 또는 이앙법이라는 기술을 당시 농민들이 적용하였는가에 대한 여부가 아니라 언제부터 이앙법이 점차 보급되고 확산되어 갔는지에 관한 문제 즉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앙법은 모내기법으로 모판에서 모를 키우다가 본답(本畓)에 옮겨 심는 방법이었다. 그런데 근현대 벼 경종법에서 누구나 당연하게 여기는 모내기법에 대하여 『농사직설』의 편찬자는 이앙법을 설명하는 항목 맨 끝 부분에 이앙법이 제초에는 편하지만 큰 가뭄이 들면 실수하게 되어 농가의 위험한 일이라고 단서를 붙여 놓았다. 이러한 이앙법의 약점을 지적하는 것은 조선의 기후 조건에 비추어 볼 때 당연한 일이었다. 초여름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이앙을 한다는 것은 시기를 잘 맞추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태종대에는 이앙법에 대한 금령(禁令)을 내리기까지 하였다. 이러한 사정 때문인지 15세기 무렵에 이앙법은 강원도와 경상도 일부 지역에서 채택되는 정도에 불과하였다.

수경 직파법과 이앙법 이외에 건경법(乾耕法), 즉 건경 직파법이라는 방식도 벼 재배 경종법으로 실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건경법은 만도에 대해서만 적용할 수 있었고, 한해(旱害)로 말미암아 수경 직파법이 불가능한 조건에서 시행할 수 있는 기술이었다.394)『농사직설』 종도(『농서』 1, 10면) ; 『세종실록』 권104, 세종 26년 4월 갑진 ; 『성종실록』 권16, 성종 3년 3월 경술. 또한 건경 직파법은 많은 노동력의 투하가 요구되어 쉽게 행하기 어려운 방식이었다. 따라서 때 이른 가뭄으로 말미암아 수경이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이앙하기 위한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을 때 보완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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