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7권 농업과 농민, 천하대본의 길
  • 제3장 조선 전기 농업 발달과 농촌 사회 그리고 농민
  • 4. 국가와 개인의 농서 편찬
  • 조선 초기 농서 편찬의 의의
염정섭

조선의 지배층은 농업 생산력의 증진을 농업 기술의 발달이라는 측면에서 추구하였다. 국가적인 차원에서 선진적인 농업 기술을 보급하고, 기존의 농업 기술을 개선·개량하는 방법을 동원하였다. 그런데 선진적인 농업 기술을 정리하여 보급하는 작업은 궁극적으로 농서의 편찬이라는 방식으로 현실화되었다. 즉 국가와 지배층은 농업 기술의 발달을 추구하면서 농서 편찬을 실행하였다.422)조선시대에 편찬된 농서에 대한 개괄적인 해제는 김용섭, 「농서 소사」, 『농서』 1, 아세아 문화사, 1993 참조.

농서는 광의의 의미로는 농업 생산에 관계되는 모든 요소를 서술 대상으로 삼고 있는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농업 생산 기술, 농업 경영, 토지 소유 등에 대한 저술을 농서라 부를 수 있다. 그리고 좀 더 범위를 넓게 잡으면 농업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역법(曆法)에 대한 설명, 기후적인 요인으로 인해 초래되는 재해에 대한 설명과 대책 등에 관한 저술도 농서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있다. 하지만 조선시대에 편찬된 농서란 일반적으로 기본적인 식량 작물에 대한 재배 기술과 기타 부수적인 채소, 의료 식물 재배의 기술적인 요소들을 담고 있는 저술을 가리키는 것이었다.423)중국의 경우 북위의 가사협(賈思勰)이 편찬한 『제민요술』을 비롯하여 원대의 『농상집요』 등이 채소 재배 기술 등을 포함하고 있다. 조선에서도 『산림경제』 이후의 농서들이 종합적인 농업 생산 활동 전반의 기술 내용을 담고 있다.

조선시대에 편찬된 농서는 개개의 농서마다 뚜렷한 나름의 특색을 가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현실의 농업 생산에 적용되고 있는 또는 적용시키려는 농업 기술을 문자로 정리한 것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외국의 구체적인 농업 기술을 견문(見聞)하여 소개하는 목적을 갖고 있는 농서도 존재하였다.424)19세기 말 안종수(安宗洙)가 지은 『농정신편(農政新編)』은 서양과 일본의 농법을 소개하고 보급시키려는 목적으로 편찬된 농서였다(안종수, 『농정신편』 서(신기선)). 이러한 경우를 제외하면 농서에 수록된 내용은 특정한 시기에 농서가 편찬된 지역의 농업 기술로 파악하는 것이 온당할 것이다. 현실의 농업 기술을 문자화시킨 것이 농서라고 보는 입장은 『농사직설』의 서문(序文)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세종은 주현(州縣)에서 이미 시험한 경험을 모아서 『농사직설』을 만들게 하였고, 이렇게 하여 전야(田野)의 백성이 알기 쉽게 한 것이라고 설명하였다.425)신속(申洬), 『농가집성(農家集成)』, 권농교문(勸農敎文)(세종) : 『농서』 1. 이와 같이 세종은 『농사직설』의 내용을 실제 조선에서 관행으로 적용하고 있던 현실의 농법으로 평가하였다.

조선시대의 농서는 일정 시기에 통용된 농업 기술을 정리하여 수록한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선진적인 농업 기술을 널리 보급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었다. 이러한 농서를 검토할 때 주의할 점은 첫째 농서에 수록된 농업 기술을 어느 시기의 것으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연대 비정(比定)의 문제이다. 둘째로 농서에 수록된 농업 기술이 특정한 지역에서 적용되는 농업 생산 기술의 특색을 반영한 것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426)농서의 지역성 문제는 결국 지역적인 농업 생산의 특색, 지역적인 농업 기술의 특색을 가리키는 지역적 농법의 문제와 연결된다. 이러한 두 가지 점에 유의하면서 조선시대에 만든 농서를 검토하면 당대의 농업 기술 실상에 접근할 수 있고, 또한 농서를 만든 사람이 갖고 있던 생각도 찾아낼 수 있다. 또한 장기간에 걸쳐 농서가 편찬되는 흐름을 정리하면 이를 통해 전체 사회의 변화하는 모습도 정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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