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7권 농업과 농민, 천하대본의 길
  • 제3장 조선 전기 농업 발달과 농촌 사회 그리고 농민
  • 4. 국가와 개인의 농서 편찬
  • 『농사직설』, 조선 고유 농서의 등장
염정섭

세종은 풍토의 차이에 따라 농업 생산의 기술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진작에 토로하고 있었다. 이러한 세종의 인식이 야말로 『농사직설』이 세상에 나오게 된 주요한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농사직설』은 1429년(세종 11)에 편찬되었다.435)『농사직설』의 편찬에 대해서는 김용섭, 「『농사직설』의 편찬과 기술」, 『애산학보』 4, 애산학회, 1986 ; 앞의 책, 1988 재수록. 편찬 과정을 대략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년 전인 1428년 윤4월에 세종은 경상도 관찰사에게 왕명을 내려 평안도와 함길도에 전습(傳習)시킬 만한 농법을 노농을 탐방하여 묻고 그렇게 획득한 내용을 추려서 책자로 만들어 조정에 올리게 하였다.436)『세종실록』 권41, 세종 10년 윤4월 갑오. 그리고 7월에는 충청도와 전라도 관찰사에게도 동일한 내용의 왕명을 하달하였다.437)『세종실록』 권41, 세종 10년 7월 계해. 세종의 명령을 받은 하삼도 관찰사가 올린 각지의 농법을 종합한 책자를 기반으로 정초(鄭招)와 변효문(卞孝文)이 편찬 실무를 담당하여 만들어 낸 결과물이 바로 『농사직설』이었다. 정초와 변효문이 한 일은 농업 기술의 내용을 세목별로 분류하고 정리하여 정서(正書)하는 작업이었다.438)『세종실록』 권44, 세종 11년 5월 신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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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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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이 언급한 『농사직설』의 편찬 목적은 후진 지역 또는 북부 지방에 하삼도의 선진 농법을 전수하고자 하는 것이었다.439)김용섭, 앞의 책, 1988, 30쪽 및 81쪽 그런데 세종은 『농사직설』을 편찬한 후 이듬해인 1430년(세종 12) 2월에 곧바로 8도의 감사(監司), 주부군현(州府郡縣)과 경중(京中)의 현직(現職)과 산직(散職) 2품 이상 관원에게 『농사직설』을 나누어 주었다.440)『세종실록』 권47, 세종 12년 2월 을유. 이와 같이 세종은 『농사직설』의 배포 지역을 북부 지방으로 한정하지 않고 전국으로 잡아 놓고 있었다. 따라서 『농사직설』은 양계 지역을 위한 특별한 편찬 작업의 결과가 아니라 조선 8도에 적용하기 위한 것이었다. 『농사직설』의 편찬은 당대 선진적인 농업 기술을 정리하여 이를 전국 농민에게 보급시키려 한 것이었다.441)『세종실록』 권111, 세종 28년 2월 갑자.

『농사직설』에 수록된 내용은 주요 작물의 경작법이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곡물의 종자를 간수하는 법, 기경하는 법, 황지를 개간하는 방법 등도 담고 있었다. 『농사직설』에 담긴 주요 작물은 삼(麻), 벼(稻), 기장(黍), 조(粟), 콩(大豆), 팥(小豆), 녹두(綠豆), 보리(大麥), 밀(小麥), 참깨(胡麻), 메밀(蕎麥) 등이었다. 앞서 살펴본 조선 전기 벼 경작법이나 잡곡 경작법의 주요한 내용은 바로 『농사직설』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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