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7권 농업과 농민, 천하대본의 길
  • 제3장 조선 전기 농업 발달과 농촌 사회 그리고 농민
  • 4. 국가와 개인의 농서 편찬
  • 『금양잡록』, 사찬 농서의 효시
염정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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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양잡록』
『금양잡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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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후반이 되면 새로운 농서 편찬 흐름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15세기 중후반에 걸쳐 활동한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이 편찬한 『금양잡록(衿陽雜錄)』에서 새로운 농서 편찬 흐름을 찾아볼 수 있다. 강희맹은 관직 생활 중에 보고 들은 것과 금양(衿陽)에 물러나 생활하면서 경험한 것을 모아 『금양잡록』을 지었다.442)『금양잡록(衿陽雜錄)』에 대한 연구로는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김용섭, 「『금양잡록』과 『사시찬요초(四時纂要抄)』의 농업론」, 『겨레 문화』 2, 한국 겨레 문화 연구원, 1988 ; 片山隆三, 「衿陽雜錄の硏究」, 『朝鮮學報』 13, 朝鮮學會, 1958. 『금양잡록』은 강희맹의 문집인 『사숙재집(私淑齋集)』에 실려 있다.443)강희맹(姜希孟), 『사숙재집(私淑齋集)』 권11, 금양잡록. 그리고 1581년(선조 14)에 선조가 신하들에게 내려 준 내사본(內賜本) 『농사직설』에 합철(合綴)되어 있다. 그리고 1655년(효종 6)에 신속(申洬)이 편찬한 『농가집성(農家集成)』에도 『농사직설』 등과 더불어 포함되었다. 또한 『금양잡록』에 소개된 벼를 비롯한 여러 작물의 품종에 대하여 정리한 부분은 17세기 중반 이후에 등장하는 여러 농서에 많이 인용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금양잡록』은 편찬 이후 조선시대 내내 주요한 농서로 활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금양잡록』의 주요 내용은 대부분 강희맹과 금양 지역의 노농 사이의 문답 형식으로 정리 되어 있었다. 「농가(農家)」는 농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금양 지역 부로(父老)들의 말을 인용하여 농사의 주요 사항을 정리한 부분이었다. 이어서 나오는 「곡품(穀品)」은 벼와 다른 잡곡의 품종을 정리하여 소개한 것이다. 「농담(農談)」은 금양의 지역적 농업 현황을 설명하고 있는데, 깊게 갈기(深耕), 빨리 파종하기(早種), 씨앗 많이 뿌리기(密播), 자주 김매기(數耘) 등을 꼭 해야 할 일로 지목한 부분이다. 그리고 「농자대(農者對)」에서는 농부 중에 천시(天時)와 지리(地利)를 잘 알아 100배의 수확을 얻는 상농(上農)과 천시와 지리는 모르지만 뛰어난 기술이 있어 10배의 수확을 얻는 중농(中農), 별다른 능력이 없이 부지런히 노력하여 배의 이익에 그치는 하농(下農)의 존재를 나누어 설명하면서, 선비들도 발군(拔群)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 밖에 바람의 성격에 대해서 설명한 「제풍변(諸風辨)」, 파종의 적당함을 지적한 「종곡의(種穀宜)」, 농가(農歌)를 채록하여 수록한 「농구(農謳)」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희맹이 지은 『금양잡록』은 개인이 자신의 힘으로 편찬한 사찬(私撰) 농서라는 점에서 그리고 금양 지역의 농사 기술 특색을 담고 있는 지역 농서라는 점에서 중요한 역사적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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