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7권 농업과 농민, 천하대본의 길
  • 제3장 조선 전기 농업 발달과 농촌 사회 그리고 농민
  • 4. 국가와 개인의 농서 편찬
  • 유팽로가 편찬한 『농가설』
염정섭

16세기 후반 지역 농서의 편찬 흐름을 잘 보여 주는 농서가 유팽로의 『농가설』이다. 유팽로는 전라도 옥과현에서 거주하다가 임진왜란 때 순절(殉節)한 인물로, 호남 지역의 의병장으로 활약한 인물의 행적을 모아 정리한 『호남절의록(湖南節義錄)』에도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447)유팽로, 『월파집』 권2, 농가설. 유팽로의 아버지 유경안(柳景顔)은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가 일어났을 때 조정에서 물러나서 전라도 옥과현에 위치한 합강(合江) 근처로 이사하였고, 이곳에서 얻은 두 아들 가운데 첫째가 유팽로였다.448)유팽로의 생애에 대한 자료는 『월파집』 권3 부록에 실려 있는 왕조실록초(王朝實錄抄), 행장(行狀), 묘갈명(墓碣銘), 세계(世系) 등에 단편적으로 보인다. 유팽로는 서울에 올라가 관직에 나아간 것을 제외하고는 이사를 간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의 견문에 의존한 『농가설』은 전라도 옥과 지역의 농법에 근거한 지역 농서로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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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설』
『농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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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설』 가운데 농가에서 매달 필수적으로 해야 할 농사일을 정리한 내용이 있는데, 바로 지역적 농법의 모습을 잘 보여 주는 부분이다. 매달 농가에서 해야 할 일을 규정하는 방식의 농서를 ‘월령식(月令式)’ 농서라고 하는데, 『농가설』의 주요 내용이 바로 월령식 농서에 해당한다. 정월에는 저수지와 천방을 다스리는 일을 크게 강조하였다. 2월에는 해충을 제거하기 위해 두둑을 불태우는 일과 분전에 힘써야 하는 일을 지적하면서 한식(寒食)에 종자를 담가 두었다가 나흘이나 닷새 후에 파종하라고 하였다. 3월에는 특히 목화(木花) 재배에 적당한 파종 시기와 토질을 거론하였다. 이에 덧붙여 앙판(秧坂) 즉 모판을 한 번 제초하라는 작업 지시를 내리고 있다.449)유팽로, 『월파집』 권2, 농가설. 이러한 작업 지시는 이앙을 하기 위한 농작업이라는 점에서 이앙법을 채택하고 있음을 확실히 알 수 있다. 4월에는 망종(芒種)이 이앙하는데 경계 시기임을 지적하고 권농을 맡은 자가 힘써 일할 것을 강조하였다.450)유팽로, 『월파집』 권2, 농가설. 오뉴월에는 제초를 열심히 해야 되고, 7월에는 보리를 심어야 되는데 가을보리와 더불어 봄보리의 적당한 파종 시기를 적시하였다. 9월이 되면 수확을 하는데 하늘의 움직임을 잘 살펴 어긋나지 않도록 하고 근실히 수확한 것을 지키도록 하였다. 이와 같이 월령에 맞추어 농가에서 해야 할 농사일을 정리해 두었다.

『농가설』은 항목과 조목으로 나누어 일정하게 정리한 『농사직설』처럼 체계를 갖춘 농서는 아니었지만, 월별로 농가에서 해야 할 일을 정리하여 지시하는 등 월령식 농서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게다가 전라도 옥과 지역의 농업 관행을 알 수 있는 지역적인 특색을 지니고 있다는 점과 개인적인 저술이라는 점에서 이 시기 이후의 농서 편찬의 흐름을 잘 반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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