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7권 농업과 농민, 천하대본의 길
  • 제3장 조선 전기 농업 발달과 농촌 사회 그리고 농민
  • 6. 농촌 사회와 농민 생활
  • 고려 말 조선 초 자연촌의 성장
염정섭

고려 말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기까지 향촌 사회 내부에서는 자연촌(自然村)의 성장이라는 변화가 나타나고 있었다. 마을 또는 촌락으로 불리는 지역 단위 공간은 향촌(鄕村)에 거주하는 주민의 생활 공간이었다. 마을은 역사적인 조건의 변화에 따라 생성, 소멸의 과정을 겪는 역사적인 존재이기도 하였다. 따라서 마을의 규모, 주민 구성 등의 성격은 당대 사회의 구조적인 성격과 깊은 관계가 있었다. 고려 말 조선 초 사이에 자연촌이 크게 성장하면서 향촌 사회 질서가 변모하였다. 즉 고려 말기로부터 향촌 사회에 주민들이 거주하는 공간이 ‘○○리(里)’라는 단위 명칭을 붙일 정도로 자립적인 지위를 획득한 것이다. 고려 말을 거쳐 조선 초에 이르게 되면 자연촌의 단위 명칭으로서 ‘이(里)’가 새로이 등장하였다.

고려 초·중기에는 자연촌보다도 자연촌을 여러 개 묶은 지역촌(地域村)이 지방 사회의 구성에서 단위성을 더 강하게 지녔다.492)구산우, 「고려 전기 향촌 지배 체제의 성립」, 『한국사론』 20, 서울 대학교 국사학과, 1988. 이 지역촌은 고유한 촌명(村名)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고려시대의 군현제 운영에서 군현의 중심 기구인 군사(郡司), 현사(縣司)에 모여 집단적 지배 체제를 형성하는 구성원인 향리(鄕吏)들은 대개 이 지역촌을 대표하는 자격을 갖추고 있었다. 즉, 고려 전기 향촌 사회의 구조는 대체로 개별 자연촌이 각기의 독자성을 가질 수 있는 정도의 규모에 이르지 못하고 몇 개의 자연촌을 묶은 지역촌 중심이었으며, 그 지역촌 몇 개가 하나의 군현(郡縣)을 이루었다. 이러한 군현은 각 지역촌을 대표하는 장리(長吏)들이 모여 최고위의 장리인 호장(戶長)을 중심으로 통치 체제를 형성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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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곡리 장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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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 자연촌의 성장을 불교 신앙 조직체인 향도(香徒)의 성격 변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고려 말에 이르러 불교의 사회적 역할이 감퇴하고 또 촌락 구조도 달라짐에 따라 촌락 공동체로서의 향도의 성격이 크게 변한 것이었다.493)이태진, 『한국 사회사 연구』, 지식 산업사, 1986, 128쪽. 신앙 공동체로서의 향도는 고려 초·중기에는 대단위 지역을 포괄하는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고려 말 조선 초에 이르러 향도는 자연촌을 단위로 결성되었다. 그리고 향도는 음사(淫祀)에서 사신(祀神)을 함께하는 무리를 일컫는 것으로 달리 지칭되었다. 바로 음사의 신당(神堂)이 각 자연촌에서 마을 제사의 구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었다.

조선 초기 향도의 인원은 규모가 작은 경우 7∼9명, 큰 경우 100여 명이나 되었을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494)『대동야승(大東野乘)』 권2 ; 성현(成俔), 『용재총화(慵齋叢話)』 권8. 향도 조직의 공동체적 유대는 첫째 남녀노소(男女老少)가 차례로 앉아 같이 음식을 먹는다는 점, 둘째 같은 향도에 속한 사람 가운데 상장(喪葬)의 일이 생겼을 때 함께 참석하는 모습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즉 향도가 자연촌 단위의 향촌 공동체 조직의 성격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향도는 바로 같은 마을 주민을 구성원으로 삼고 있었다.495)이태진, 앞의 책, 1986, 131쪽.

조선 전기에 중앙 정부는 향촌 사회의 자연촌을 말단 지방 행정 단위로 포괄하려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조정에서 군현을 거쳐 면(面)과 이(里)로 이어지는 행정 체제를 편성하려는 것이었다. 그러한 중앙 집권적인 지방 행정 편성 추진의 결과가 바로 이정(里正)의 설치라고 할 수 있다. 이정의 설치는 자연촌이 그동안 꾸준히 성장하여 규모가 커짐에 따라 독자성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사실 『경국대전(經國大典)』 「호전(戶典)」에는 “한성부와 외방(外方) 모두에 5호(戶)를 1통(統)으로 삼아 통주(統主)를 두고, 특히 외방에는 매 5통마다 이정을 두며, 1면(面)마다 권농관(勸農官)을 둔다.”라고 규정하고 있었다.496)『경국대전』 권2, 호전, 호적(戶籍). 『경국대전』에는 면과 이의 상호 관계가 어떠한 지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고 있지만, 적어도 호적 작성 과정과 호적 정리의 단계별 책임자로 이정을 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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