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7권 농업과 농민, 천하대본의 길
  • 제4장 조선 후기 새로운 농사 기술과 상품 작물, 농민 지위의 변화
  • 1. 인구 증가
  • 과부의 활발한 재혼
김건태

과부의 활발한 재혼 또한 인구를 증가시키는 데 일정 정도 영향을 미쳤다. 과부의 재혼 사실은 호적에서 파악하기 매우 어렵다. 단성 호적에서는 과부의 재혼에 대한 기록을 전혀 찾을 수 없다. 즉 과부가 재혼하면 전남편 의 호적에서는 어떠한 기록도 남기지 않고 슬그머니 사라지고, 새로운 남편의 호적에는 단지 부인이라고만 기재된다. 따라서 재혼하는 남자에게 시집오는 여성의 나이를 살펴봄으로써 여성의 재혼 풍습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밖에 없다. 호적에는 남자의 재혼에 대한 직접적인 기록이 없다. 하지만 전산화된 호적을 활용하면 부인을 잃은 남자가 새로운 부인을 맞아들이는지, 아니면 홀로 지내다가 생을 마감하는지를 비교적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즉 부인의 사망 신고를 한 사람을 계속해서 추적하면 그의 재혼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단성 지역 홀아비의 재혼율은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졌다.

표 ‘18∼20세기 초 단성 지역 홀아비의 재혼 현황’에서 볼 수 있듯이 처의 사망 신고를 한 식년(式年)에 재혼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홀아비의 비율은 18세기 29.1%, 19세기 9.3%이다. 그리고 그 다음 식년에 재혼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비율은 18세기 50.3%, 19세기 31.5%이다.539)재혼남은 전처의 사망으로 기재된 식년(式年) 혹은 그 다음 식년에 후처를 맞아들인 사람이다. 그리고 ‘기재된 수’는 처가 사망으로 기재된 다음 식년의 호적에서 사망으로 확인되거나 그때까지 홀아비로 남아 있는 사람을 뜻한다. 즉 전처가 사망으로 기재된 식년에 재혼 사실이 확인되는 홀아비 가운데 다음 식년에 그 이름이 확인되지 않는 경우는 계산에서 제외시켰다. 한편 홀아비의 재혼율은 20세기 초가 되면 더 낮아진다. 1909∼1923년 민적에서 확인되는 홀아비는 27명이고, 그 가운데 4명(14%)만이 재혼하였다.

<표> 18∼20세기 초 단성 지역 홀아비의 재혼 현황
단위 : 명
재혼
시기
부인의 사망 신고가 된 해 부인 사망 신고부터 3년 뒤
홀아비 수 재혼 백분율 홀아비 수 재혼 백분율
18세기 1158 337 29.1 515 259 50.3
19세기 516 48 9.3 168 53 31.5
✽①18∼19세기 자료(경상도 단성현 호적 대장 전산 CD, 성균관 대학교 대동 문화 연구원. 2006)
  ②20세기 자료(경상도 산청군 신등면 제적부. 신등면 사무소 보관본)

무슨 이유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단성 지역 홀아비의 재혼율이 낮아졌을까?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단성 호적에 등재된 홀아비의 연령이 18세기보다 19세기에 훨씬 높았을 가능성이 있다. 즉, 19세기 단성 지역의 홀아비는 대부분 고령이어서 재혼을 하지 않았을 가능 성이 있다. 하지만 호적 대장을 살펴보면 홀아비의 연령이 그들의 재혼율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도표 ‘18∼19세기 단성 지역 홀아비의 연령별 비율’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 단성 지역 홀아비의 연령은 큰 차이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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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 단성 지역 홀아비의 연령별 비율
18∼19세기 단성 지역 홀아비의 연령별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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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19세기가 되면 과부의 개가(改嫁)를 천대하는 경향이 더욱 강해졌을 가능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과부가 개가하면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그 자식까지도 멸시를 받았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때문에 과부가 개가를 꺼리게 되면 홀아비는 어쩔 수 없이 처녀 가운데서 재혼 상대자를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문제는 결혼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상대방이 있어야 된다는 데 있다. 어느 부모인들 결혼한 경험이 없는 자신의 딸을 다른 사람의 두 번째 부인으로 출가시키기를 좋아하겠는가. 더구나 상대가 자신의 딸보다 20∼30살 연상의 홀아비라면 더욱 망설일 것이다. 따라서 홀아비가 재혼할 때 처녀를 맞이하려면 사회적 명망이 높거나 아니면 경제력이 든든해야만 하였다. 이러한 저간의 사정 때문에 19세기 홀아비의 재혼율이 낮았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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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9세기 단성 지역 재혼남과 결혼한 여성의 연령별 비율
18∼19세기 단성 지역 재혼남과 결혼한 여성의 연령별 비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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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홀아비가 처녀와 재혼하는 비율은 18세기보다 19세기가 더 높았다. 도표 ‘18∼19세기 단성 지역 재혼남과 결혼한 여성의 연령별 비율’에서 볼 수 있듯이 재혼남에게 시집간 여성 가운데 25세 미만은 18세기에는 35%였으나, 19세기에는 무려 63%나 되었다. 이 같이 19세기가 되면 그 이전 시기에 비해 홀아비의 재혼율은 낮아지지만 재혼하는 남자가 처녀를 부인으로 맞아들이는 비율은 오히려 더 높아졌다. 이러한 사실은 상대적으로 과부의 재혼율은 시간이 갈수록 낮아졌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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