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8권 고문서에게 물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
  • 제2장 가족과 친족 생활
  • 1. 가족 형태와 거주율
  • 조선 전기의 가족
  • 이성 양자
전경목

조선 전기의 가족 제도에 대해 고찰할 때 솔서혼과 함께 주목해야 할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성 양자와 동성 양녀(養女)이다. 이 둘은 조선 후기의 가족 제도에서는 거의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관심을 끈다. 먼저 이성 양자에 대해 살펴보자. 조선시대에 간행된 족보(族譜)를 살펴보 면 이성으로 양자를 삼은 사례를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것은 실제로 이러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 아니라, 후에 족보를 간행하면서 이러한 사실을 모두 삭제해 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에 작성한 전기(傳記)나 묘지명(墓誌銘) 등에는 그 내용이 상세히 기록된 경우가 있는데, 『율곡전서(栗谷全書)』에 수록된 묘지명에서 그런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그 중 박응순(朴應順, 1526∼1580)과 신후(申煦, 1528∼1561)의 사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78)이 사례는 필자가 이미 전경목, 『조선시대 책의 문화사』, 휴머니스트, 2008, 94∼95쪽에서 소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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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公)의 이름은 응순, 자는 건중(健仲)이고 나주 박씨(羅州朴氏)이다. …… 공은 3세 때에 공의 고모인 군수 박수영(朴秀榮)의 아내가 길러서 자기 아들로 삼았다. …… 공이 9세에 아버지를 여의자, 외조부 사섬시 정(司贍寺正) 홍 공(洪公)이 선비 유조순(柳祖詢)을 집에 들여앉혀서 공과 손자들을 가르치게 하였는데 공은 학문을 잘하여 게을리 하지 않았다.79)『국역 율곡전서(國譯栗谷全書)』 4책, 한국 정신 문화 연구원, 1996, 264쪽∼266쪽의 「반성부원군박공묘지명(潘城府院君朴公墓誌銘)」 참조. 번역문 중 어색한 부분은 필자가 문맥에 맞게 임의로 수성하였다. 이는 다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군(君)의 이름은 후(煦), 자는 백온(伯溫), 성은 신(申), 관향은 평산(平山)으로 고려 장절공(將節公) 신숭겸(申崇謙)의 후예이다. 18세 때 그의 부친이 염병으로 작고하였다. …… 군은 고모 집에서 양육되었는데, 그 고모가 아들이 없으므로 가산(家産)을 군에게 물려주어 제사를 받들게 하려고 하니 군은 의리를 끌어 대며 굳이 사양하였다. 고모가 울면서 간절하게 타일렀으나 군은 끝내 따르지 않고 이에 동성으로서 뒤를 이어 주었다.80)『국역 율곡전서』 4책, 한국 정신 문화 연구원, 1996, 299쪽의 「신백온묘지명(申伯溫墓誌銘)」 참조.

박응순이 그의 고숙(姑叔) 박수영에게 입양되었던 사례를 통해서 이성 양자를 입양하는 것이 당시에 그리 특별한 경우가 아니었음을 우리는 짐작할 수 있다. 이 묘지명은 율곡 이이(李珥)가 써 준 것이다. 만일 이성을 양자로 들이는 것이 특이한 일이었다면 그가 이에 대해 언급하였을 터인데 아무런 이야기 없이 이를 서술하고 있다. 따라서 비록 조선 정부가 표방하였던 유교의 기본 원리와 배치되기는 하지만, 당시에는 이성 양자를 들이는 것이 하나의 관습으로 굳어져 있었기 때문에 이이조차 이를 문제삼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고모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의리를 끌어 대며 동성 양자를 선택하도록 한 신후의 사례를 통해서 다른 한편에서는 이성 입양을 지양(止揚)하고 동성 입양을 시도하는 경향이 점차 생기기 시작하였음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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