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8권 고문서에게 물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
  • 제2장 가족과 친족 생활
  • 1. 가족 형태와 거주율
  • 조선 전기의 가족
  • 동성 양녀
전경목

조선 전기에는 이와 같이 슬하에 자녀가 없을 때에는 이성 양자를 들이기도 하였지만, 그것도 여의치 못할 때에는 동성 질녀(姪女)를 데려가 기르는 경우도 많았다. 이는 늙어 가면서 슬하에 아이 없이 무료하게 지내는 것을 모면(謀免)하기 위해서 이기도 하였지만, 나아가서 그 양녀가 혼인한 후에는 그의 남편, 즉 조카사위와 함께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앞서 소개한 김석필의 손자인 김경순(金景順)은 1564년(명종 19) 10월 24일에 참봉 강주신(姜周臣)의 딸과 혼인하였다. 혼인하는 당일에 처숙부(妻叔父)인 강주보(姜周輔)가 김경순에게 특별히 재산을 지급하였는데, 이때 작성한 문서를 살펴보면 그러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가정(嘉靖) 43년 10월 24일 3촌질여서(三寸姪女婿) 김경순에게 별급하는 문서81)『부안 김씨 우반 고문서』, 204쪽, 분재기류 14.

별급 문서를 작성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내 나이가 (벌써) 50이 다 되었는데 병이 있어 (몸은 성치 못하고 슬하에) 자녀도 없다. 그래서 조카딸인 김경순의 처가 (나와) 같은 집에서 함께 살면서(同室居生) 여러 방법으로 (나를) 효성스럽게 봉양하였으니 정의(情義)가 깊고 또 중하다. 그뿐 아니라 (오늘) 그 지아비의 생김새를 살펴보니 공순(恭順)하게 생겨서 (혼인한 후에도) 반드시 (나를) 공순하게 받들 것으로 생각된다.82)『부안 김씨 우반 고문서』에는 ‘그의 지아비’ 이하가 누락되어 있다. 이 부분의 원문은 ‘厥夫亦相貌恭順 必有奉順之情爲乎乙等乙用良’이다. 여기에서는 이 부분을 첨가해서 번역하였다. 그래서 내가 갈아먹던…… 논 16마지기를 주노니 (만일) 후에 족친(族親) 등이 (이를 탐내어) 다툼을 일으키거든 이 문서를 가지고 관에 알려 바로잡을 일이다.

답주(畓主) 동성(同姓) 3촌숙(三寸叔) 강주보(수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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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를 보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강주보는 나이 쉰 살이 다 되도록 자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동성이나 이성 양자를 입양하지 않은 채 조카딸을 데려다 한집에서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녀가 이 날 김경순과 혼인하자 이제는 조카사위가 된 김경순을 맞이하여 함께 살면서 봉양 받을 계획하에 재산의 일부를 떼어 주었다. 조선 전기에는 강주보와 같이 양자를 들이지 않고 조카딸이나 조카사위와 함께 살던 사람이 상당히 많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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