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8권 고문서에게 물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
  • 제2장 가족과 친족 생활
  • 3. 가계의 운영
  • 조선 후기
  • 매입을 통한 재산 증식
전경목

우반동에 살던 부안 김씨들은 임진왜란을 겪고 나서부터 가계를 운영하는 형태가 크게 바뀌었다. 조선 전기에는 축보작답과 호노를 통한 다른 지역의 농장 경영에 주력하였는데, 임진왜란을 겪은 이후부터는 그들이 살던 주을래리와 우반동 주위의 토지를 매입하여 이곳에 농장을 형성하려고 하였다. 이와 같은 변화가 일어난 원인은 임진왜란 이후에 여러 가지 여건 때문에 다른 지역에 농장을 만드는 일이 쉽지 않았고, 호노를 통해서 이를 관리하기가 매우 어려웠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러한 이유는 먼저 호노 군석의 탄원서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임진왜란 중에 뿔뿔이 흩어졌던 노비들이 임진왜란이 끝난 후에도 돌아오지 않아서 농장을 조성하고 관리하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근본적인 원인은 관의 협조가 예전과 같지 않았던 데에 있다. 사실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에 농장을 만들어서 이를 잘 관리하거나 그 농장 주위에 살던 외거 노비(外居奴婢)에게 소작료나 신공(身貢) 등을 원활하게 거두어들이는 것은 농장주 혼자만의 힘으로는 어려웠다. 농장이 있거나 외거 노비가 거주하고 있던 지역의 수령이 전적으로 협조해 주지 않으면 농장을 제대로 관리하거나 신공을 신속하게 거두는 일은 실제로 거의 불가능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임진왜란을 겪은 이후에는 이러한 협조가 원만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는 관련 자료의 소실, 행정 체계의 미복구, 사회 기강의 문란 등이 주요 원인이었을 것이다. 따라서 호노를 통해서 다른 지역의 농장을 운영하는 일은 난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그러자 김홍원과 그의 후손들은 거주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던 지역의 농장을 처분하고 거주지에서 가까운 주을래리와 우반동 주위에 있던 토지를 매득해 나갔다. 앞서 김홍원이나 그의 호노가 임진왜란 후에 임실현과 용담현에 탄원서를 제출하여 그곳에 있던 농장에 대해 입안을 받으려고 하였던 것은 자신들의 소유를 인정받아 이를 방매하려 하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또 김홍원과 그의 후손들이 임진왜란 직후부터 주로 ‘보남’, 그 중에서도 특히 ‘4작’에 있던 토지를 구입한 점에 대해서도 이미 앞서 살펴보았는데, 이는 이곳에 농장을 만들고 거주하려 하였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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