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8권 고문서에게 물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
  • 제2장 가족과 친족 생활
  • 4. 친족 조직과 활동
  • 문중의 조직과 활동
  • 문중의 조직
전경목

시기와 문중에 따라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문중의 임원으로는 문장과 문유사(門有司)가 있었다. 문장은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문중을 대표하고 문중의 중요한 일을 주도적으로 결정하였다. 물론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 하더라도 혼자서 결정하지 않고 문중의 원로, 종손 등과 상의하여 결정하였다. 문장은 대부분 학식과 덕망을 겸비한 원로 중의 한 명을 문중 구성원이 추대하는 형식으로 선발하였다. 문유사는 문중의 여러 업무를 처리하는 실무자였는데, 문중이 크고 구성원이 많을 경우에는 여러 명의 유사를 두어 업무를 분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경우에 유사의 이름은 담당 업무에 따라 집례(執禮), 사서(司書), 사화(司貨) 등으로 붙이기도 하였다. 구성원이 여러 지역에 거주할 경우에는 업무를 원활하게 처리하기 위해 지역마다 유사를 두기도 하였다.125)최재석, 「조선시대의 문중 형성」, 『한국학보』 32, 일지사, 1977, 4∼24쪽 참조.

우반동에 살던 부안 김씨는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비록 동성 마을을 이루지는 못하였지만, 문중을 결성하고 조직도 갖추었다. 이러한 점은 이 집안에 소장되어 오는 여러 가지 문서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이들 문서를 통해서는 문장의 존재나 역할을 알 수 있으나 문유사의 흔적을 파악하기는 힘들다. 그것은 문유사가 존재하지 않거나 실무자로서의 역할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굳이 그에 대한 기록을 문서에 남겨야 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우반동의 부안 김씨들도 문중을 결성하고 문장과 문유사를 중심으로 매년 한두 차례 모여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고 문중 구성원의 애경사(哀慶事)에 부조(扶助)하는 등 많은 문중 활동을 하였으며, 이를 통해서 문중 구성원 간의 결속을 다지고 또 선조와 문중을 널리 현창(顯彰)하는 여러 가지 사업을 전개하였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