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8권 고문서에게 물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
  • 제3장 사회 경제 생활과 문서
  • 1. 정소, 조선 사회를 비추는 거울
  • 정소, 소지로 말하다
김경숙

사람은 평생을 살아가는 동안 다양한 사회적 관계를 맺으며 사회 활동을 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인의 문제, 개인 대 국가 문제, 개인 대 개인의 갈등 등 각종 사회 문제와 갈등을 어떻든 조정하며 해결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국가의 공권력을 필요로 한다. 사회 문제는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있게 마련이고, 그렇기 때문에 국가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백성들의 민원(民願)을 해결하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를 갖추게 마련이다.

조선 사회는 유교 이념하에 민심을 천심(天心)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이러한 민원 해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였다. 백성들 사이에 원성이 가득차면 곧 하늘에 닿아 결국에는 천심을 잃게 되고 군주의 정통성을 상실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군주에게는 백성을 사랑하고 위하는 애민(愛民)과 위민(爲民) 정치가 요구되었고, 백성들의 원성이 넘치지 않도록 항상 민심을 살펴야 했다. 위민 정치의 구체적인 실현은 세종대의 공법(貢法) 제도를 비롯하여 환곡(還穀) 제도, 진휼(賑恤) 정책 등 시대나 상황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구체화되었다. 이와 함께 조선 왕조는 백성들이 국가에 청원하거나 요구하는 사항이 있을 때 국가에서 수용하고 해결해 주는 장치를 갖추어 운영하였다. 조선시대의 이러한 시스템을 필자는 ‘정소 제도(呈訴制度)’라고 칭하고자 한다.

정소는 문서를 관청에 제출함으로써 이루어지게 되는데, 대표적인 문서 양식이 소지(所志)이다. ‘소지’라는 명칭의 유래는 알 수 없지만 ‘마음속의 뜻하는 바’를 청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소지는 이미 고려시대에도 사용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장(狀)이라는 용어와 함께 사용하였는데, 조선시대에 들어와 장보다는 소지가 보편화되면서 대표어가 되었다. 이와 함께 시대가 내려가면서 작성 주체, 관청 등 상황에 따라 다양한 문서 양식으로 분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 결과 소지와 함께 단자(單子), 상서(上書), 원정(原情), 발괄(白活), 등장(等狀), 의송(議送) 등 다양한 문서 양식을 사용하였으며, 이들 문서를 통틀어 보통 소지류라고 일컫는다.

정소와 소지가 민인(民人)의 입장에서 일컫는 표현이라면 국가에서는 이를 민인들의 정소라는 뜻에서 민소(民訴)라 파악하였고, 소지는 ‘민장(民狀)’이라 칭하였다. 민인들이 제출한 소지라는 뜻이다. 소지를 제출한 사람도 ‘장자(狀者)’라고 하였다. 관에서는 백성들이 제출한 소지의 내용을 장부에 기록해 두었는데, 이를 ‘민장치부책(民狀置簿冊)’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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