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8권 고문서에게 물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
  • 제5장 국가 및 관리 생활과 문서
  • 3. 인사 문서
  • 녹패
박재우

녹봉을 받기 위해서 고신이 필요하였다는 것은 앞서 말하였지만 보다 직접적으로는 녹패가 필요하였다. 원래 고려는 한 해에 정월과 7월 두 차례에 걸쳐 녹봉을 지급하였는데, 조선 건국 이후에 제도를 고쳐 1439년(세종 21)에 사계절의 첫 달에 녹봉을 주는 것으로 운영 방식을 바꾸었고 이를 『경국대전』에 법제화하였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에는 매달 주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녹봉을 받기 위해서는 녹패를 받아야 했다. 녹패는 매년 정월에 받았는데, 처음에는 삼사(三司)에서 발급하였으나 이후 이조와 병조에서 발급하였다. 이러한 점은 문서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다음 ‘도응 녹패(都膺祿牌)’를246)정구복 외, 「도응 녹패(都膺祿牌)」, 『조선 전기 고문서 집성』, 국사 편찬 위원회, 1997. 살펴보자.

1  왕명에 준하여 선절장군흥위위좌령장군 도응에게

2   이번 갑술년 녹 제9과 170석을 경창에서 줌

3   홍무 27년 10월 일   봉정대부삼사우자의 박(압)

이 문서는 1394년(태조 3) 10월에 삼사(三司)가 선절장군흥위위좌령장군(宣節將軍興威衛左領將軍) 도응에게 녹(祿) 제9과 170석을 지급하는 문서로서,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녹패이다. 양식을 보면 1∼2행은 발급 근거인 ‘왕명에 준하여 …… 줌’과 수취자와 문서 내용으로 도응에게 갑술년 녹 제9과 170석을 준다는 것이며, 3행은 발급 날짜인 ‘홍무(洪武) 27년 10월 일’, 4행은 발급자인 삼사의 관리와 성, 초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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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응 녹패
도응 녹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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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양식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왕명에 준하여 …… 줌’과 발급 관청이 삼사라는 점인데, 이는 이 문서가 고려시대의 양식을 계승하였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왕명에 준하여 …… 줌’은 앞서 ‘장계 홍패’에서 확인하였듯이 고려시대의 홍패 양식과 같고, 또한 고려는 삼사에서 녹패를 지급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러한 제도 운영은 조선 태조대까지 계속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녹패 양식은 녹봉 지급과 관련된 제도가 개편되면서 바뀌게 되었다. 삼사는 1401년(태종 1)에 사평부(司平府)로 개칭되었고 1405년에는 완전히 폐지되어 호조에 흡수되었는데, 이로써 녹패 발급은 이조가 전담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1432년(세종 14)에 ‘왕명에 준하여 …… 줌’을 ‘교를 받들어 …… 줌’으로 개칭하라는 명령이 있어 녹패 양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이에 더하여 1466년(세조 12)에는 녹패의 발급을 문반은 이조에서, 무반은 병조에서 나누어 관장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녹패 양식에 그대로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고문서로 현전하는 것은 없다. 대신 『경국대전』 「예전」의 녹패식(祿牌式)에 이러한 내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다음을 보자.

1   어떤 조는

2  교를 받들어 구관 누구에게 몇 년 제 몇과 녹을 줌

3   년 인 월 일

4   판서 신 모  참판 신 모  참의 신 모 정랑 신 모

5   좌랑 신 모

여기서 발급자인 ‘어떤 조는’ 이조나 병조이며 문서 양식은 ‘교를 받들어 …… 줌’으로 되어 있어 변화가 반영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경국대전』의 녹패식은 이후 그대로 이용되었는데, 예를 들면 ‘김종직 녹패(金宗直祿牌)’가247)정구복 외, 「김종직 녹패(金宗直祿牌)」, 『조선 전기 고문서 집성』, 국사 편찬 위원회, 1997. 그 사례가 된다.

1   병조는

2  교를 받들어 자헌대부지중추부

3   사 김종직에게 이번 신해년

4   제3과 녹을 줌

5   홍치 4년 정월 일

6                     참의

7   판서 신 이(압) 참판  정랑 신 곽(압)

8                     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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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직 녹패
김종직 녹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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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1491년(성종 22) 정월에 병조가 자헌대부지중추부사(資憲大夫知中樞府事) 김종직에게 발급한 녹패이다. 김종직이 지중추부사였기 때문에 병조에서 녹패를 발급한 것이다. 양식을 보면 1행은 발급자인 ‘병조’와 문서 양식인 ‘병조는 교를 받들어 …… 줌’, 문서 내용으로 김종직에게 신해년 제3과 녹을 준다는 것이며, 2행은 발급 날짜인 ‘홍치(弘治) 4년 정월 일’이다. 이로 보면 ‘김종직 녹패’는 『경국대전』 양식과 거의 일치한다. 그러나 녹패에는 발급 관청인 이조나 병조 관리의 관직과 서명이 있는 것이 보통이었다.

녹봉의 수취 절차는 다음과 같다. 먼저 관직 에 제수된 관리가 고신을 받고 녹패 발급을 신청하면 이조와 병조는 녹패를 발급해 주었다. 녹패를 받은 관리는 광흥창(廣興倉)에서 녹봉을 수령하였는데, 이때 고신과 녹패를 함께 제출하였다. 한편 이조나 병조는 관리에게 녹패를 발급하는 동시에 호조에 관련 내용을 통보하는 관문을 보냈고, 호조는 광흥창에 첩을 내렸다. 이렇게 되면 광흥창은 녹봉을 받아갈 관리가 제출하는 녹패와 호조에서 보낸 첩의 내용을 대조하면서 녹봉을 내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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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도(都城圖)
도성도(都城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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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흥창에서의 녹봉 수령은 관직에 따라 지급 날짜가 지정되어 있었으므로 해당 날짜에 가서 녹봉을 받았다. 그런데 같은 양의 녹봉을 받더라도 가급적 좋은 쌀을 받고자 하였다. 광흥창에 들어오는 쌀은 지역에 따라 품질이 달랐으므로 더 좋은 쌀을 차지하기 위해 미리 알아보고 받아가는 것이 그런 경우였다. 대개 관리들은 녹봉을 직접 수령하지 않고 관청의 사령(使令)을 시켜 대신 받았고, 녹봉을 받으면 노비가 말을 끌고 와서 운반해 갔다.248)김혁, 「조선시대 녹패 연구」, 『고문서 연구』 20, 한국 고문서 학회,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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