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8권 고문서에게 물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
  • 제5장 국가 및 관리 생활과 문서
  • 3. 인사 문서
  • 해유
박재우

관리가 되면 해당 관청에서 근무를 하였는데, 대체로 묘시(卯時, 오전 5∼7시)에 출근하고 유시(酉時, 오후 5∼7시)에 퇴근하였고, 겨울에는 진시(辰時, 오전 7∼9시)에 출근하고 신시(申時, 오후 3∼5시)에 퇴근하였다.249)『경국대전』 권1, 이전, 고과(考課). 병이 나더라도 1년에 30일을 결근하면 파직되었고, 관리들의 임기는 참상관은 900일, 참하관은 450일이었다.

임기를 마치면 관리는 후임자에게 업무 내용과 관리한 물건을 인계하여 임기 내에 있었던 회계 및 물품 관리에 대한 책임을 면하게 되는데, 이를 해유라고 하였다.250)임민혁, 「조선 초기 해유제의 성립과 그 성격」, 『조선시대사 학보』 33, 조선시대사 학회, 2005 ; 임민혁, 「조선 후기 해유 행정의 문서식과 그 실제」, 『고문서 연구』 28, 한국 고문서 학회, 2006. 해유는 관리라면 중앙관과 지방관을 가릴 것 없이 누구나 해야 하였다. 특히 재정 담당 관리나 지방관의 해유는 엄격하였고, 해유를 받지 못하면 전직(轉職), 승진, 녹봉에 제약을 받았다.

현재 남아 있는 해유 문서 가운데 조선 전기의 것은 없다. 하지만 해유는 조선 전기부터 관리의 교대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업무로 인식되어 여러 차례 법제적 규정이 만들어졌고, 특히 『경국대전』 「예전」에 실려 있는 해유 이관식(解由移關式)과 해유 첩정식(解由牒呈式)은 조선 전기에 해유 문서가 분명히 존재하였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문서가 현전하지 않으므로 여기서는 조선 후기의 해유 문서를 통하여 해유에 관한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고자 한다.

해유를 위해서는 먼저 전임관이 후임관에게 해유를 요청하는 문서를 보냈다. 이 때 전임관과 비교해서 후임관의 품계가 같거나 낮으면 해유 이관(移關)을 보냈고, 후임관의 품계가 높으면 해유 첩정(牒呈)을 보냈다. 그런데 현전하는 해유 문서를 보면 전임관이 후임관에 보내는 해유 이관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왜냐하면 이 문서는 후임관이 관찰사 또는 호조나 병조에 해유 첩정을 보낼 때에 점련(粘連)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신 후임관이 보낸 해유 문서부터는 일괄 문서로 남아 있는 것이 있다. 노성현감(魯城縣監) 권석효(權錫孝)의 해유에 관한 일괄 문서가 그런 사례 중에 하나이다.

권석효는 1839년(헌종 5) 7월에서 1843년(헌종 9) 5월까지 3년 11개월 동안 노성현감으로 근무하였고, 임기가 끝나자 후임관인 행현감(行縣監) 심(沈)에게 해유를 요청하였다. 권석효가 후임관인 행현감 심에게 발급한 해유 문서는 남아 있지 않다. 그러나 권석효가 보낸 문서를 받은 행현감 심은 문서 내용을 살핀 후에 문제가 없다고 판단하였고, 이에 겸순찰사(兼巡察使)에게 해유 첩정을 올렸다. 다음은 1845년(헌종 11)에 후임관인 행현감 심이 겸순찰사에게 올린 ‘노성현감 해유 첩정(魯城縣監解由牒呈)’이다.251)『고문서』 권6, 해유(解由), 서울 대학교 규장각 한국학 연구원, 1989.

1  노성현감이 해유를 위한 일. 전현감통정대부 권석효의 당직은

2  도광 19년 경자 6월 22일 인사에서 본직에 제수되어 같은 달 23일에 사

3  은하였고 7월 초3일에 조정에 아뢰고 같은 달 초10일에 부임하여 갑진

   5월 15일에 이르기까지 계산하면

4  1,424일이다. 지금 근무한 날 및 잡다한 모든 연고와 관리한 물건을 날짜마다 나열

5  하였으니 자세히 갖춘 것을 상세히 살펴 해유를 성첩할 일. 합행첩정 복청

6  조험시행 수지첩정자

7     계 개

8     개명은 없다.

9   실제 근무일은 1,424일이다.

10    탄핵받은 것은 없다.

11 이를

12 겸순찰사에게 첩정함

13 도광 25년 4월 일 행현감 심(압)

14      해유

15 ……

30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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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성현감 해유 첩정
노성현감 해유 첩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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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1845년(헌종 11) 4월에 행현감 심이 겸순찰사에게 전 노성현감 권석효에 대한 해유를 요청하는 해유 첩정이다. 양식을 보면 1행은 발급자와 발급 목적인 ‘노성현감이 해유를 위한 일’, 2∼5행은 문서 내용으로 권석효의 해유를 해 달라는 것, 5∼6행은 문서 양식인 ‘합행첩정 복청조험시행 수지첩정자(合行牒呈伏請照驗施行須至牒呈者)’, 7행은 문서 양식인 계 개(計開), 8행은 개명 유무, 9행은 근무 일수, 10행은 탄핵 유무, 11∼12행은 수취자와 문서 종류인 ‘이를 겸순찰사에 첩정함’, 13행은 발급 날짜와 발급자인 ‘도광(道光) 25년 4월 일 행현감 심’, 14행은 발급 사유인 ‘해유’, 15∼30행은 관리하였던 물품 목록 및 문투인 ‘끝(際)’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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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 관찰사 해유 이관
충청도 관찰사 해유 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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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관으로부터 해유 첩정을 받은 관찰사는 호조에 해유 이관을 보냈는데, 이때 후임관이 보낸 해유 첩정을 점련하여 보냈다. 권석효 해유 문서도 이러한 모습을 보여 준다. 행현감 심의 해유 첩정을 받은 충청도관찰사겸순찰사는 호조에 해유 이관을 보냈고, 이때 관찰사는 ‘노성현감 해유 첩정’을 점련하여 호조에 보냈다. 다음은 ‘충청도 관찰사 해유 이관(忠淸道觀察使解由移關)’이다.

1  충청도관찰사겸순찰사가 상고를 위한 일.

2  첩정을 점련하였으므로 합행이관 청

3  조험시행 수지관자

4    이를

5    호조에 관함

6  도광 25년 4월 12일

7       상고

8  관 관찰사 (압) 도사

이 문서는 1845년(헌종 11) 4월에 충청도관찰사겸순찰사가 호조에 보낸 해유 이관이다. 1행은 발급자와 발급 목적인 ‘충청도관찰사겸순찰사가 상고(相考)를 위한 일’, 2행은 문서 내용인 첩정을 점련하였다는 것, 2∼3행은 문서 양식인 ‘합행이관 청조험시행 수지관자(合行移關請照驗施行須至關者)’이며, 4∼5행은 수취자와 문서 종류인 ‘이를 호조에 관(關)함’, 6행은 발급 날짜인 ‘도광(道光) 25년 4월 12일’, 7행은 발급 사유인 ‘상고(相考)’, 8행은 인장인 관(關), 그리고 발급자와 초압인 ‘관찰사 (압) 도사’이다.

이어 관찰사의 해유 이관을 받은 호조는 이조에 해유 이관을 보냈다. 이때 후임관의 해유 첩정이 점련되어 있는 관찰사의 해유 이관을 점련해서 보냈다. 권석효의 해유에 관한 일괄 문서에도 호조가 이조에 보낸 해유 이관이 포함되어 있는데, 여기에 ‘충청도 관찰사 해유 이관’이 점련되어 있다. 다음은 호조가 이조에 보낸 ‘호조 해유 이관(戶曹解由移關)’이다.

1  호조가 해유를 위한 일. 배서한 관 및 점련한 첩정의

2  내용으로 전노성현감 권석효 등의 내용의

3  해유를 탈 없이 성출하오니 상고하여 시행할

4  일 합행이관 청

5  조험시행 수지관자

6   이를

7   이조에 관함

8  도광 26년 9월 일

9       해유

10                      정랑 좌랑

11 관 판서(압) 참판 참의 정랑 좌랑

12                      정랑 좌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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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조 해유 이관 및 이조 조흘
호조 해유 이관 및 이조 조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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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1846년(헌종 12) 9월에 호조가 이조에 보낸 해유 이관이다. 여기에는 행현감 심의 해유 첩정과 겸순찰사의 해유 이관이 함께 점련되어 있다. 양식을 보면 1행은 발급자와 발급 목적인 ‘호조가 해유를 위한 일’, 1∼4행은 문서 내용으로 수취자에게 해유를 발급할 것을 청하는 것이며, 4∼5행은 문서 양식인 ‘합행이관 청조험시행 수지관자(合行移關請照驗施行須至關者)’, 6∼7행은 수취자와 문서 종류인 ‘이를 이조에 관(關)함’, 8행은 발급 날짜인 ‘도광 26년 9월 일’, 9행은 발급 사유인 ‘해유’, 10행은 인장인 관(關), 그리고 발급자인 호조 관리와 초압이 있다.

호조의 해유 이관을 받은 이조가 전임자에게 조흘을 발급하면 해유에 관한 처리가 끝났다.

호조의 이관을 받은 이조는 권석효에게 조흘을 보냈는데, 조흘은 호조의 해유 이관에 기록되었다. ‘이조 조흘(吏曹照訖)’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병오 9월 27일 이조가

2  조흘을 본원에게 붙임

3  당상(휘필) 낭청(압)

이 문서는 1846년(헌종 12) 9월에 이조가 권석효에게 발급한 조흘이다. 1행은 발급 날짜인 ‘병오 9월 27일’, 1∼2행은 발급자인 ‘이조’와 수취자와 문서 종류인 ‘조흘을 본 관원에게 붙임’, 3행은 발급자인 이조의 관리와 초압이다. 이조는 조흘을 작성하여 권석효에게 발급하였고 이로써 권석효는 해유를 받았다. 이처럼 조선의 관리들은 관직을 받아 근무 기간이 끝나면 이러한 과정을 거쳐 해유를 받았던 것이다.

이상을 정리하면 노성현감 권석효는 후임관인 행현감 심에게 해유를 요청하였고, 행현감 심은 관찰사겸순찰사에게 ‘해유 첩정’을 올렸으며, 관찰사는 행현감 심이 보낸 ‘해유 첩정’을 점련하여 호조에 ‘해유 이관’을 보냈고, 호조는 이들 두 문서를 점련하여 이조에 ‘해유 이관’을 보냈으며, 이조는 권석효에게 ‘조흘’을 보냄으로써 일련의 처리 과정이 종결되었다.

그런데 노성현감 권석효의 해유에 관한 일괄 문서의 양식을 보면 조선 후기 해유 문서의 일반 양식을 따랐던 것으로 보인다. 우선 ‘노성현감 해유 첩정’의 양식은 관리하였던 물품 목록을 모두 수록한 다음에 ‘끝’과 같은 용어를 써서 마무리를 하였던 『전율통보』의 해유 첩정식을 따르고 있다. 다음은 『전율통보』 「별편」의 해유 첩정식이다.

1  어떤 관직이 해유를 위한 일. 지금 전 어떤 관직 성명의 관에 따르면

   요약 운운

2  이를 얻어 장차 본원의 성명 및 도임하여

3  실제 근무한 일월로 다시 조사를 하니 본원의 원장과 서로 같고 그 외에

4  나머지 임기 내의 실제 근무 및 잡다한 모든 연고와 직책에 따라 관리

   하였던 물건을 두루 모두

5  마감하여 수를 대조하고 계산하여 명백한 별도의 조관을 뒤에 개좌

   합니다. 합행

6  첩정 복청조험시행 수지첩정자. 이를

7  어떤 아문에 첩정함. 연호 몇 년

8  몇 월 며칠 어떤 관직 성 서명 착압

9  해유

10 계개

11 하나 개명의 유무. 하나 몇 년 몇 월 며칠에 본직을 받음 몇 년

12 몇 월 며칠에 도임 몇 년 몇 월 며칠에 교체. 실제 근무는 며칠.

13 휴가와 질병은 며칠

14 하나 탄핵 받은 유무

15 하나 관리하였던 물건 운운 끝

그리고 노성현감 권석효의 해유 문서에 들어 있는 ‘충청도 관찰사 해유 이관’ 및 ‘호조 해유 이관’과 관련되는 양식은 『전율통보』에서만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충청도 관찰사 해유 이관’과 관련이 있는 『전율통보』 「별편」의 해유 이관식이다.

1  어떤 관직이 해유를 위한 일. 첩정을 점련하였으므로 합행이관 청

2  조험시행 수지관자

3  이를

4  어떤 조에 관함

5  연호 인 몇 년 몇 월 일

6  해유

7  관 압 도사 (병영은 우후)

여기서 보면 ‘충청도 관찰사 해유 이관’과 『전율통보』의 해유 이관식의 문서 양식이 같다. 다만 전자에 ‘상고(相考)’라고 표현된 것이 후자에는 ‘해유(解由)’라고 되어 있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용상 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다음은 ‘호조 해유 이관’과 관련이 있는 『전율통보』 「별편」의 해유 이관식이다.

1  어떤 조가 해유를 위한 일. 관 및 점련한 첩정의 내용으로 전 어떤 관

   성명 등의

2  내용으로 해유를 탈 없이 성출하오니 상고 시행할 일 합행이관 청

3  조험시행 수지관자

4  이를

5  이조에 관함

6  연호 인 몇 년 몇 월 일

7  해유

8                          정랑  좌랑

9  관 판서 압  참판  참의  정랑  좌랑

10                         정랑  좌랑

이를 보면 ‘호조 해유 이관’은 『전율통보』의 해유 이관식과 그대로 일치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노성현감 권석효의 해유 문서는 『전율통보』의 양식을 기본으로 하여 작성된 것이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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