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8권 고문서에게 물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삶
  • 제5장 국가 및 관리 생활과 문서
  • 5. 왕명과 상주문
  • 국왕의 명령
  • 사패
박재우

조선시대에 왕명으로 가장 널리 이용된 문서 중에 하나는 교지가 아니었나 한다. 교지는 용도가 다양하였고 용도에 따라 호칭도 달랐다. 과거 급제자의 합격증으로 이용한 것은 홍패·백패, 신료에게 관직이나 관작을 주거나 추증하고 시호를 내려 주는 임명장에 사용한 것은 고신, 향리를 면역하거나 토지나 노비를 주는 것은 사패(賜牌)라고 불렀다.

특히 사패는 국가에 공로를 세운 인물에게 주었는데, 앞서 설명한 공신녹권과도 관련이 있으므로 여기서는 사패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사패는 ‘조온 사패(趙溫賜牌)’이다.264)정구복 외, 「조온 사패 문서(趙溫賜牌文書)」, 『조선 전기 고문서 집성』, 국사 편찬 위원회, 1997.

1  왕지

2    추충협찬개국정사공신자헌대부상의문하부사동판도평의사사사의흥

     삼군부좌군동지절제사한천군 조온

3    경은 정성을 다해 모의에 협력하여 난을 평정하고 돌이켜 바로잡아

4  종사를 안정시킨 공로가 중대하여 가히 상 줄 만하므로 공신녹권에 붙

      인다. 양주부 땅 고한양 업자정(지금은 채) 5결 4속, 고견주 땅 문자

      정(지금은 적복보) 16결 33부 3

5     속 인자정 10결 42부 9속, 교하 땅 습자정(지금은 지진) 10결, 개성유

      후사 땅 고개성 제4위자정(지금은 병) 4결 14부, 광주 땅 염자정(지금

      은 견기조) 20

6     결 1속, 초자정 내시면 10결 1부 7속, 연안부 땅 초자정 10결 34부 9

      속, 이천 땅 화자정(지금은 폐처침) 15결, 강화 땅 세자정 14

7     결 92부 3속, 서원 땅 황자정(원평 지금은 미시) 10결, 마전 땅 월자정

      (지금은 영) 5결 8부 5속, 영자정(지금은 진) 5결 9부 9속, 수원임내영

      신 땅 신자정(지금은 갑장대) 10결, 수

8     원임내송장 땅 장자정(지금은 죄벌) 5결, 합하여 전답 모두 151결 38

      부를 사여하는 일이므로, 자손까지 전하여 가지고 오래도록 먹으며

      지니도록 교하심

9     건문 원년 2월 초8일 엎드려

10 왕지를 받들고 도장을 찍는다.

11   도승지 통정대부경연참찬관겸상서윤수문전직학사지제교충예문춘추관

     수찬관지이조사 신 이 (초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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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온 사패
조온 사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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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1399년(정종 1) 2월에 정사공신 조온에게 발급한 사패로서, 조온은 토지 151결 38부를 지급받았다. 정사공신은 제1차 왕자의 난에서 공을 세운 인물에게 주었던 것이다.

양식을 보면 1행은 문서 종류인 ‘왕지’, 2행은 수취자인 조온, 3∼8행은 이두문으로 작성한 문서 내용과 ‘∼하도록 교하심’의 양식, 9행은 발급 날짜인 ‘건문 원년 2월 초8일’, 9∼10행은 문서 양식인 ‘엎드려 왕 지를 받들고 도장을 찍는다’는 말미, 11행은 발급자인 도승지의 성과 초압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문서 종류가 ‘왕지’이고, 문서 내용이 이두문으로 되어 있으며, 승지가 도장을 찍고 서명하여 발급하였다는 특징은 『경국대전』의 노비 토지 사패식(奴婢土地賜牌式)과 상당히 다르다. 문서를 발급한 시점으로 보아 고려적인 양식이 남아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이러한 양식은 ‘이징석 사패(李澄石賜牌)’에서265)정구복 외, 「이징석 사패 문서(李澄石賜牌文書)」, 『조선 전기 고문서 집성』, 국사 편찬 위원회, 1997. 일정하게 변화되었다.

1  교지

2    추충좌익공신숭록대부양산군봉조청 이징석

3    경이 좌우에서 힘을 바쳐 함께 어려움을 건넜으니 내가 공을 가상히

여겨 특별히 녹권에 내려 붙인다. 양산 제용감 비 막덕 소생 비 소사  

4    나이 29, 차소생 노 오을미 나이 27, 차소생 노 소로 나이 21, 차소생

     비 감장 나이 15, 종

5    친부 비 내은이 소생 노 장명 나이 23, 차소생 비 심방 나이 18, 양

     산 관비 감음가이 소생

6    비 옥금 나이 21, 성주에 사는 호조 비 회문이 소생 노 가지 나이 16

     을 상으로 주니 가히 영세토록 전하라.

7    천순 2년 4월 20일 공경히

8  교지를 받들라.

9    좌승지 추충좌익공신통정대부경연참찬관집현전직제학지제교겸판

     군기감사지형조사 신 윤 (압)

이 문서는 1458년(세조 4) 4월에 좌익공신(佐翼功臣) 이징석에게 발급한 사패이다. 좌익공신은 세조의 즉위에 공로를 세운 인물을 책봉한 것이다. 1455년(세조 1) 9월에 좌익공신에 책봉되는 명단을 정하였는데 이징석은 3 등 공신으로 추충좌익공신(推忠佐翼功臣)으로 불렸다.266)『세조실록』 권2, 세조 원년 9월 정축. 이어 1457년(세조 3) 8월에 공신녹권을 받았고,267)『세조실록』 권8, 세조 3년 8월 무오. 1458년 4월에 사패를 받았는데 이징석은 노비 8구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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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징석 사패
이징석 사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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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식을 보면 1행은 문서 종류인 ‘교지’, 2행은 수취자인 이징석, 3행은 녹권에 붙인 이유, 3∼6행은 문서 내용, 7행은 발급 날짜인 ‘천순(天順) 2년 4월 20일’, 7∼8행은 문서 양식인 ‘공경히 교지를 받들라’, 9행은 발급자인 좌승지의 성과 초압으로 되어 있다.

‘조온 사패’와 ‘이징석 사패’를 비교하면 양식상 차이점과 공통점이 있다. 차이점은 첫째, 전자는 ‘왕지’인데, 후자는 ‘교지’이다. 둘째, 전자는 문서 내용에 이두문의 문장이 있고 ‘자손까지 전하여 가지고 오래도록 먹으며 지니도록 교하심’인데, 후자는 한문 문장이며 ‘가히 영세토록 전하라’이다. 셋째, 전자는 ‘엎드려 왕지를 받들고 도장을 찍는다’라는 양식인데 후자는 ‘공경히 교지를 받들라’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공통점은 첫째, 문서 양식의 전체 구조가 비슷하며, 둘째, 발급자로 승지가 기록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이들 조선 초기의 사패가 시기를 내려오면서 문서 양식이 변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지만, 이들 문서의 양식상 특징은 『경국대전』의 사패식과 비교하면 좀 더 명백해진다. 그러면 『경국대전』 「예전」의 토지 노비 사패식을 살펴보자.

1  교지

2    오직 그대 누구는 어떤 공이 있으니 장획 몇 구와 토지 몇 결을

3    특별히 내려 그대에게 상 주니 가히 영세토록 전하라.

4    단지 자신에게만 줄 때는 가히 영세토록 전하라를 그대는 이를 받으

     라고 고친다.

5    년 보 월 일

토지 노비 사패식은 양식상 특징이 ‘조온 사패’보다 ‘이징석 사패’와 좀 더 가깝다. 이를 테면 문서 종류가 ‘교지’이고, 문서 내용이 한문 문장이며 또 ‘가히 영세토록 전하라’의 문투가 있어 이러한 양식을 수용 정착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토지 노비 사패식은 ‘조온 사패’는 물론 ‘이징석 사패’와도 뚜렷한 차이가 있다. 첫째, 녹권에 붙인다는 긴 문장의 내용이 사라지고 ‘오직 그대 누구는 어떤 공이 있으니’ 정도의 간단한 한문 문장으로 대체되었다. 이는 문서의 간략화 및 한문 문장화로 이해된다. 둘째, ‘엎드려 왕지를 받들고 도장을 찍는다’와 ‘공경히 교지를 받들라’ 및 승지의 서명 부분이 토지 노비 사패식에는 전혀 없다. 이는 국왕의 권위를 높이려는 관점에서 ‘교지’를 표방하는 왕명에 승지의 서명이 기록되는 것이 부담스럽게 여겨져 생략된 것이 아닌가 한다.

이렇게 정착된 토지 노비 사패식은 이후 조선시대에 널리 이용되었다. 다음 ‘유근 사패(柳根賜牌)’는268)최승희, 앞의 책, 90쪽. 그러한 사례 가운데 하나이다.

1  교지

2    오직 경 진원군 유근은 호성 2등 공신이니, 장차 인천 관노 상이와 수

     원의영고 노 국이, 수원훈련원 노 덕춘, □□ 관□ □□, 괴산 관노

     애인, 괴산

     관비 옥지 등을 특별히 내려 경에게 상 주니 가히 영세토록 전하라.

3    만력 33년 정월 초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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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근 사패
유근 사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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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서는 1605년(선조 38) 정월에 호성(扈聖) 2등 공신 유근에게 내린 사패이다. 양식을 보면 1행은 문서 종류인 ‘교지’, 2행은 ‘오직 …… 특별히 내려 경에게 상 주니 가히 영세토록 전하라’의 문서 양식과 수취자 및 포상 내용이 기록되었고, 3행은 발급 날짜인 ‘만력(萬曆) 33년 정월 초8일’로 되어 있다. 이는 『경국대전』의 토지 노비 사패식과 거의 같은데, 이후에도 계속 사용되어 『전율통보』의 노비 전토 사패식도 별다른 차이가 없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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