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9권 조선이 본 일본
  • 제1장 조선 전기의 세계관과 일본 인식
  • 1. 조선 전기의 세계관과 자타 인식
  • 향화 정책과 향화 왜인
하우봉

화이관에는 타자에 대한 차별과 배제의 논리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교화한다는 포용의 논리도 내포되어 있다. 그것은 ‘왕화(王化)’, ‘덕화(德化)’, ‘교화(敎化)’ 등으로 표현되었으며, 때로는 단순한 슬로건이나 대의 명분론에 불과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화이관 속에 포용과 확산의 논리가 내재되어 있다는 점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조선시대의 향화 정책(向化政策)도 여기에 바탕을 두었으며, 일본과 여진에 대한 기미 정책의 명분도 ‘교화’에 두고 있다. 중국인이 북방 유목민에게 여러 차례 침략과 지배를 당하였지만 결국 한족(漢族)으로 모두 동화시킨 바탕에는 포용과 확대를 지향하는 사상적 장치가 작동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일본과 여진을 대하는 정책에서 타자화의 수단으로는 군 사적 정벌 외에 기미 정책이 강구되었다. 기미의 수단으로는 수직 제도와 사성(賜姓), 경제적 회유 등을 사용하였다. 수직 제도는 고려시대 여진인에 대한 회유책의 일환으로 행하던 것을 계승하여 일본과 여진에 적용한 것으로, 그 연원은 중국의 외이 기미책(外夷羈縻策)에서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조정은 변방에서 통교하는 일본인과 여진족에게 실직(實職)은 없고 관품(官品)만 있는 무관직(武官職)을 수여함으로써 울타리로 삼았다. 수직인은 1년에 한 번씩 하사받은 관복을 입고 수직인임을 표시하는 사령장(辭令狀)인 고신(告身)을 지참하여 입조(入朝)하여야 했다. 대신 그들은 그 직에 상응하는 접대를 받고 교역을 할 수 있는 경제적 혜택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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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 왜인 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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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 왜인 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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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좀 더 근본적으로 일본인과 여진인을 조선인으로 동화시키는 향화인 수용 정책도 시행하였다. 조선 초기 왜구 대책과 여진 정책이 성공하면서 귀순하는 자들이 생겼는데, 조선에서는 그들을 향화 왜인, 향화 야인이라고 불렀다. 이것은 ‘왕화’를 표방하면서 그들을 조선의 국민으로 수용하는 전면적인 포용 정책이었다는 점에서 기미 정책과 구별된다. 향화 왜인에게도 대상자에 따라 수직과 사성, 경제적 보상 등을 시행하였다. 따라 서 실제에서는 기미 정책과 향화 정책이 혼합, 병용되었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이 취한 향화 정책의 기본 방침은 “오는 자는 거절하지 않고 가는 자는 막지 않는다.” 혹은 “오면 어루만져 주고 가면 쫓지 않음으로써 원한을 맺거나 분쟁을 일으키지 않는다.”라는6)『세종실록』 권75, 세종 18년 11월 경자. 것이었다. 조선 조정은 이러한 정책을 임진왜란 이전까지 일관되게 유지하였다.

특히 건국 초기 10년 동안에는 향화 왜인들에게 관직을 대량으로 수여하는 등 우대하였다. 그 결과 향화인이 급증하였다. 1409년(태종 9)에는 경상도에 정주하는 향화 왜인이 2,000명에 달해 이들을 각 주군(州郡)에 분산시켜 관리하였다.7)『태종실록』 권18, 태종 9년 11월 임오. 또 향화 왜인을 관리하기 위하여 『왜안(倭案)』이라는 호적을 만들었다.8)향화 야인은 1408년부터 『향화안(向化案)』에 등록하여 관리하였다.

조선 조정은 개국 초기에 향화 왜인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다. 영향력 있던 왜구 수령이나 여진족 추장급은 변방의 안전을 위해 포섭하였다. 그 밖에 기술자와 일반인의 포섭은 각기 기술과 국방 인력을 보충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조선 조정은 그들을 적극 활용하였으며, 향화인들도 나름대로 충실히 역할을 수행하였다. 조선시대 향화 왜인의 종류에는 왜구 수령, 쓰시마 섬 토벌 시의 포로, 삼포 항거 왜인(三浦恒居倭人), 기술자(의술·조선·조검·제련), 사송 왜인, 왜승(倭僧), 항왜(降倭) 등이 있다.

향화 왜인의 역할은 상당히 다양하였다. 귀순한 왜구 수령은 대부분 수직인으로 우대받았으며, 왜구를 토벌하는 전투에 종군하였다. 그들에게서 왜구와 일본 국내의 정세를 보고받아 대일 정책의 자료로 삼았으며, 사송 왜인은 대일 사절 왕래 시 호송과 표류민 송환을 담당하였다. 삼포 항거 왜인의 수령급에게는 삼포 항거 왜인의 총괄과 쇄환(刷還) 임무를 맡겼고, 기술자들은 조선, 의술, 무기 제조 등의 기술을 전수하였다. 임진왜란 때에는 김충선(金忠善, 1571∼1642)을 비롯하여 항왜가 총 1만 명에 달하였다. 임진왜란 후 항왜는 ‘투순군(投順軍)’으로 편성되어 오랑캐의 방어와 토벌전에서 활약하였다.9)한문종, 『조선 전기 향화·수직 왜인 연구』, 국학 자료원, 2001.

향화인의 경향을 보면, 조선 초기에는 대규모의 귀순이 있었다. 하지만 대외 관계가 안정되면서 향화인의 수가 감소하였으며 그들의 역할도 줄어들었다. 한때 향화인이 너무 많아지자 조정에서는 각지에 분치(分置)하는 등 통제책을 강구하게 되었고, 향화인은 더욱 감소하였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1603년(선조 36) 한 건의 향화 왜인 사례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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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선 족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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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향화 정책은 고려시대의 그것을 계승한 것으로 회유와 교화에 목적을 두고 있었다. 그래서 향화인에 대해 다양한 동화 정책을 사용하였는데, 향화 왜인과 향화 야인에 대한 정치적·경제적 대우는 비슷하였다.10)이현희, 「대여진 무역-대야인 교섭 정책의 배경-」, 『한국사론』 11, 국사 편찬 위원회, 1982. 『경국대전(經國大典)』에 명시되어 있는 사항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다.

○ 향화인은 3년 동안 면세(免稅)한다.11)『경국대전』 호전(戶典), 수세(收稅).

○ 무릇 향화(向化)하여 온 자는 본조(本曹)에서 그 근각(根脚)·거처(居處)·공로(功勞)·재간(材幹)을 심의하여 왕에게 보고하고 장부에 기록하며(置簿), 해당 조(曹)에 공문(公文)을 보내어 관직에 임명하거나 급료와 노비를 차등 있게 지급한다. 향화인은 매달 여섯 차례(초1일, 초5일, 11일, 15일, 21일, 25일) 본조에 모여 명부(名簿)에 서명하고 관직이 있는 자는 항상 소속 위(衛)에서 근무하되 일절 조하(朝賀)·조참(朝參)에는 참여하지 못하며 문지기 등의 잡일은 맡기지 아니한다. 죄를 범한 자가 있으면 장부에 기록하여 두었다가 매 도목(都目)마다 근무 일수(仕日)와 범한 죄를 함께 참작하여 병조(兵曹)에 공문을 보내어 승진시키거나 관 직에서 쫓아낸다. 관(官)에서 집을 주되 마음대로 팔지 못하게 하며 자손대(子孫代)에 이르러 파는 것을 허(許)한다.12)『경국대전』 예전(禮典), 대사객(待使客).

○ 향화하여 새로이 내부(來付)한 사람(向化新來人)은 10년 기한으로 복호(復戶)한다.13)『경국대전』 병전(兵典), 복호(復戶).

즉 정치적 대우로는 수직(授職),14)왜구 수령이나 여진족의 추장급에 해당되는 사항이다. 수직 야인으로는 1392년(태조 1) 이지란이 최초의 사례이고, 수직 왜인은 1396년 왜구 수령에게 선략장군(宣略將軍)을 하사한 것이 최초이다. 혼인, 과거 응시 허용, 취재(取才), 체아직(遞兒職) 제수, 사성, 사명(賜名) 등이 있다. 경제적 대우로는 조세와 부역 의무 면제, 집·노비·급료·의복 지급, 과전(科田) 사급(수직인의 경우), 월료(月料)·마료(馬料)·노비 하사, 치제(致祭), 부의(賻儀) 등을 들 수 있다.

이처럼 조선 조정은 건국 초기 주로 군사적·외교적 필요에 따라 향화인을 수용하였다. 향화인들은 군사적 역할뿐 아니라 외교, 기술, 조선, 의약 등에서도 일정한 기여를 하여 민족 문화의 다양화에 공헌하였다고 볼 수 있다. 즉, 조선은 대외적 교류뿐 아니라 향화인을 통해 이질 문화를 접할 수 있었던 것이다. 향화인은 개국 공신으로 봉해진 이지란(李之蘭, 1331∼1402)처럼 높은 지위에 오른 인물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대부분 당대에 한정되었고 후손들은 조선 사회의 주류로 성장하지 못하였다.15)고려시대에는 문물의 수용을 위해 송나라의 지식인과 관료, 기술자를 적극 유치하였고, 그들은 고려 초기 중앙 집권 체제 정비 및 외교에 큰 역할을 하였다. 이는 조선시대와 다른 점이다. 또 고려시대의 향화인 정책은 조선시대에 비해 좀 더 개방적이고 적극적이었으며, 향화인의 민족적 종류와 숫자도 훨씬 많았다(박옥걸, 『고려시대의 귀화인 연구』, 국학 자료원,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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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란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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