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9권 조선이 본 일본
  • 제4장 조선 시찰단이 일본에서 맛본 근대
  • 4. 조사 시찰단이 남긴 역사적 교훈
  • 시간의 경쟁에 지다
허동현

근대에 조선과 일본은 둘 다 외압에 의해 개국을 강요당하였으나 결과적으로 일본만 식민지화되지 않고 자주적 근대화를 성취하였다. 그 이유는 외압의 차이를 기준으로 비교사적 관점에서 조명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보는 관점은 일본이 조선과 중국에 비해 개국 이전의 생산력 발전 조건이 앞서 있었거나, 지도층이 뛰어났다고 보는 일본 학계의 통설(通說)보다 설득력이 크다. 일본이 식민지화를 면한 이유를 양심적인 일본인 학자 도야마 시게키(遠山茂樹)와 가지무라 히데키(梶村秀樹)는 동아시아 여러 민족 가운데 일본의 사회 발전 단계가 앞서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서구 자본주의의 외압이 조선이나 중국보다 느슨하였다는 점, 개국 시기가 중국보다 늦었지만 조선보다 앞섰던 점 등에 있다고 보았다.347)遠山茂樹, 「近代史から見た東アジア」, 『歷史學硏究』 276, 1963 ; 梶村秀樹, 「東アジア地域における帝國主義體制への移行」, 富岡·梶村, 『發展途上經濟の硏究』, 世界書院, 1981. 특히 강동진은 일본이 식민지화를 면하고 자율적인 근대화를 할 수 있었던 이유가 개국 이전의 자본주의 발전 단계의 차이, 외압의 강도 차이, 개국 시기의 차이 등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요인은 일본이 일찍부터 구미 열강, 특히 영국과 미국의 도움을 받으며 아시아로의 침략주의를 채택하였으며, 침략의 제1차적 대상이 조선이었다는 점에서 찾아야 한다고 보았다.348)강동진, 『일본 근대사』, 한길사, 1985.

조선도 후기부터 근대 지향적 실학사상과 자본주의의 맹아(萌芽)가 싹트고 있었으며, 개항 이후에도 갑신정변, 갑오개혁, 독립 협회 운동 등 근대 국가 수립에 매진하였다. 하지만 서구 제국주의 열강과 이를 모방한 청나라와 일본의 침략 때문에 자주적인 근대 국가 수립에 실패하였다. 일본이 근대 국가를 수립할 수 있었던 것은 근대 이전 일본의 역량이 조선보다 월등히 높았기 때문도 아니고,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의 대응 능력이 탁월하였기 때문도 아니다. 또 일본이 식민지 종속의 길을 모면할 수 있었던 것은 막부 말기에서 메이지 유신에 이르는 근대 국가 수립기에 외압이 거의 없었고, 발 빠르게 서구에 문호 개방을 하였으며, 조선을 침략하여 희생양으로 삼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일본이 조선보다 앞서 근대 문물을 수용할 수 있었던 주된 원인은 지리적 위치가 좋아 서구와 먼저 접촉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 조선은 그렇지 못한 데서 비롯된 시간의 경쟁에서 뒤처졌기 때문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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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과연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을까? 우리는 평화를 사랑하는 백의민족임을 강조하면서 제국주의 열강과 일본의 침략성을 부각하는 것만으로 한 세기 전 참담한 실패의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사실 우리 선조들이 세상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우물 안 개구리로 자족하면서 서양의 발전한 문물을 수용하는 데 게을렀기 때문에 일본에 나라를 빼앗겼다고 본 알렌(H. N. Allen)의 지적은 일면 타당하다. 물론 조사 시찰단의 예를 보더라도 당시 조선인들이 수수방관(袖手傍觀)하면서 세월을 보낸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이방인의 눈으로 조선의 영욕을 지켜본 알렌의 말은 우리의 가슴을 예리하게 찌른다. 1884년(고종 21) 미국인 알렌은 의료 선교사로 조선에 와서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乙巳條約)의 체결로 조선의 외교권이 박탈되기까지 22년간 조선에서 살았다. 그는 조선이 국민 국가 수립에 실패하고 일본의 보호국으로 전락한 원인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불쌍한 조선 사람들이여! 그대들은 너무도 오랫동안 무사안일의 세월을 보냈다. 아마도 조선의 땅이 남의 나라에 의해 망한 것이 아니라 지진과 화산에 의해 폐허가 되었더라면 조선은 벌써 곤한 잠 속에서 깨어났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선 사람들이 잠자고 꿈꾸며 세상사에 개의치 않는 동안에 조선의 오랜 적인 일본인은 지금 당신들이 보고 있는 낯선 서양 사람들의 기술을 배우기에 분주하였다. …… 기술을 배운 후에 일본인들은 지난날 자기들에게 문명을 전해 준 스승의 나라를 정복하였으며, 원기 왕성해진 지난날의 제자가 당신의 국토를 넘보는 차제에, 한때는 저들의 선생이었으나 지금은 늙어 빠진 퇴역이 된 현 왕조에게 여러분은 무엇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있겠는가. 이제 잠을 자고 있을 때가 아니다.349)알렌, 신복룡 옮김, 『조선 견문기』, 집문당, 1999, 58쪽.

알렌은 일본이 서구 근대의 성과를 배우고 익혀 일취월장(日就月將)할 때 어찌하여 당신들은 잠만 자고 있느냐고 반문한다. 조선도 좀 더 빨리 시작하였더라면, 아니 외세의 간섭이 없었더라면 조사 시찰단을 계기로 일기 시작한 서구 근대 문물의 따라 배우기는 성공하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본이 서양 탐험에 열중하던 1860년부터 20여 년 동안 우리는 알렌과 후쿠자와 유키치의 지적처럼 미몽(迷夢)에 사로잡혀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역사의 시간을 허송하였으며, 서구 근대 문물을 능동적으로 섭취하는 데 미흡하였다. 한 세기 전 조선과 일본이 걸은 상반된 길, 제국과 식민지로의 분화는 서세동점의 시기에 벌어진 시간의 경쟁에서 조선이 낙후한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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