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29권 조선이 본 일본
  • 제5장 개화기에 일본을 본 두 시선
  • 2. 부정적 일본 인식
  • 서구에 비해 낙후된 일본은 따라 배울 만하지 못하다
허동현

개화기에 조선인이 가진 일본에 대한 고정 관념 가운데 하나는, 일본이 서구 문명의 중심이 아니라 그 주변에 불과한 이류 국가이기 때문에 따라 배울 만한 나라가 아니라고 평가 절하(平價切下)한 것이다. 이러한 인식은 19세기 후반 약육강식,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사회 진화론(社會進化論)이 지배하는 세계 질서에서 유교와 전제 왕조는 국가의 번영을 더 이상 보증하지 못하므로 기독교와 미국식 민주주의 체제를 받아들여 새로운 형태의 국민 국가를 세워야 한다고 하는 서구 중심주의자들에게서 비롯되었다. 대표적 인물로는 서재필(徐載弼, 1864∼1951)과 이승만(李承晩, 1875∼1965) 등이 있다. 이들에게 일본은 본뜰 만한 이상적 모델이 아니라 ‘후진적 근대’로 비판적으로 수용하여야 할 반면교사(反面敎師)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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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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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을 전후하여 조선의 근대화를 도모한 서구 중심주의적 친미 개화파 세력은 유교를 대체할 정신적 지주로 기독교를, 전제 왕권과 양반 지배 사회를 대신할 국가 체제로 미국식 민주 공화제를 받아들였다. 기독교로 개종한 서재필의 회고에 잘 나타나듯이 이들은 미국의 종교와 정체를 조선이 도입해야 할 모델로 이상시(理想視)한 바 있었다.

나는 메이슨가(街)에 있는 장로교회 예배당에 다녔는데 일요일마다 반드시 갔다. …… 믿음과 사랑의 복음을 인류에게 전해 준 그리스도의 뒤를 잇기로 맹세한 것도 이때였다. 이 종교적 영향은 나의 일생을 통하여 위대한 힘을 주었다. …… 박영효에게 본국 사정을 듣게 되자 나는 직접적으로 국가를 위하여 큰일을 하여 볼 좋은 기회가 다가왔다고 깨달았다. 미국에서 오랫동안 내가 마음 깊이 그리던 자유와 독립의 이상을 실천할 천재일우(千載一遇)의 시기가 돌아온 것이다.361)김도태, 『서재필 박사 자서전』, 을유 문화사, 1972, 153, 167∼168쪽.

이승만에게도 일본은 이상적 모델이 아니라 비판적으로 수용하여야 할 ‘후진적 근대’이자 반면교사였다. 그는 1904년 옥중에서 집필한 『독립졍신』에서 서양의 ‘개명’한 나라들이 부국강병을 누리며 ‘극락세계’를 이룬 비결은 국가를 구성하는 국민에게 ‘자유 권리’를 주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362)리승만, 『독립졍신』, 정동 출판사, 1993, 31쪽. 이처럼 그는 민주 공화제를 신봉하였기 때문에 1919년 미국에서 발표한 ‘대통령 선언서’에서 군국주의를 택한 일본을 후진시(後進視)하였다.

슬프다. 저 군국주의와 제국주의는 곧 독일 황제가 일패도지(一敗塗地)한 근원이라. 유럽과 아메리카 여러 나라가 야만적 습속을 타파하고 공화의 신세계를 성립키 위해 고금에 처음 있는 대혈전으로 독일 군사를 꺾어 뉘고 평화를 강구하는 중이라. 이 고대 유습을 유럽에서 저처럼 몰아내었거늘 아시아 주에서만 횡포를 방종하리오. 이는 세상이 허락지 않을 것이며 공리가 용납지 않으리라.363)김영우, 『대한 독립 혈전긔』, 한인 긔독 학원, 호놀룰루, 1919, 130쪽 ; 리승만, 「예수교가 대한 장래의 기초」, 『신학월보(神學月報)』, 1903 ; 원영희 외, 『뭉치면 살고 : 언론인 이승만의 글 모음(1898∼1944)』, 조선일보사, 1994, 150쪽.

또한 그가 1903년 옥중에서 『신학월보(神學月報)』에 투고한 글을 보면, “예수교는 본래 교회 속에 경장(更張)하는 주의를 포함한 고로 예수교가 가는 곳마다 변혁하는 힘이 생기지 않는 데 없고, …… 한번 된 후에는 장진이 무구하여 상등 문명에 나아가느니, …… 우리나라 사람들이 마땅히 이 관계를 깨달아 예수교를 서로 가르치며 권하여 실상 마음으로 새것을 행하는 힘이 생겨야 영원한 기초가 잡혀 오늘은 비록 구원하지 못하는 경우를 당할지라도 장래에 소생하여 다시 일어나 볼 여망이 있을 것이오.”라고 하여 조선 재활의 희망을 기독교에서 찾았다. 나아가 1900년대 초에 쓴 것으로 보이 는 ‘교화로써 나라를 세울 것(立國以敎化爲本)’이라는 논설에서 미국, 일본, 러시아의 수준을 기독교 사회화의 정도에 따라 평가하며 일본 사회의 후진성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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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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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교화가 융성한 나라에서는 백성이 정권을 장악하기 때문에 반란(叛亂), 침어(侵漁), 기만(欺瞞), 시기(猜忌) 등의 폐단이 없다. 지금의 미국이 그러한 예이다. 정법을 교화보다 우선시하는 나라에서는 임금과 백성이 모두 정치를 하는 셈이다. 그래서 무릇 각국의 양법(良法)과 미규(美規)를 찬란하게 두루 갖추고는 있지만, 이따금 뇌물과 청탁이 성행하여 투표할 때에 돈을 주고 사람을 사는 등의 갖가지 더러운 일이 일어난다. 오늘날의 일본이 그러한 예이다. 심지어 전연 교화에 힘쓰지 않는 나라도 있으니, 비록 천하를 웅시(雄視)하고 해외에 국위를 떨치고는 있지만 정변(政變)이 자주 일어나 국보(國步)에 어려움이 많다. 오늘날의 러시아가 그러한 예이다. 이것이 어찌 정법은 교화를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는 것을 쉽게 깨닫게 하는 분명한 증거가 아니겠는가.364)이승만, 『옥중잡기(獄中雜記)』 ; 유영익, 「이승만의 『옥중잡기』 백미」, 『이승만 연구』, 연세 대학교 출판부, 2000, 37쪽 재인용.

물론 미국식 민주 공화제를 이상시한 서구 중심주의자도 당시 조선의 현실을 고려할 때 이를 바로 도입할 수 없다고 판단하여 그 대안으로 입헌 군주제를 모색하기도 하였다. 서재필은 1896년에 독립 협회의 의회 설립 운동을 이끌며 입헌 군주제(立憲君主制) 정부 수립을 도모하였으며,365)유영익, 「박영효와 갑오경장」, 『동학 농민 봉기와 갑오경장』, 일조각, 1998, 101∼102쪽 ; 신용하, 「서재필의 독립 협회 운동과 사상」, 서재필 기념회, 『서제필과 그 시대』, 서재필 기념회, 2003, 149∼151쪽. 이승만도 『독립졍신』에서 민주 공화제가 ‘세상에서 가장 선미(善美)한 제도’이기는 하나 당장 도입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생각’이라고 보고 우선 입헌 군주제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었다.366)리승만, 『독립졍신』, 110∼112쪽. 그러나 서구 중심주의자에게 미국은 이상적 모델로, 일본은 반면교사로 이해되었던 것은 분명하다. 신도(神道)가 지배하고 있는 천황제 국가 일본은 천황 대권(天皇大權)을 헌법에 규정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일본이 서구 중심주의자의 눈에는 ‘후진 근대’로 비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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