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0권 이방인이 본 우리
  • 제4장 서양인의 눈에 비친 조선, 조선인
  • 1. 조선과 서양의 만남, 그리고 그에 대한 기록들
김경란

조선 전기에는 외부 세계와의 관계가 중국과 일본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국가에 국한되어 있었다. 조선인의 외부에 대한 인식은 이 지역에 제한되어 있었고, 조선에 대한 외부의 인식 역시 몇몇 동아시아 국가에 머물러 있었다. 조선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 이외의 세계에서는 낯선 존재였다.

그런데 조선 후기에 들어 지리 지식의 확대와 더불어 조선인의 외부 세계에 대한 인식, 특히 서양에 대한 인식이 점차 넓어져 갔다. 또한 서양 여러 나라를 중심으로 하여 진행된 이른바 ‘지리상의 발견’ 이후 조선의 존재도 점차 서양에 알려졌다. 우리나라의 존재는 이미 9세기 중엽 무렵부터 사라센(Saracen) 상인에게 알려져 있었다. 사라센 계통의 여행가나 지리학자가 신라나 고려의 존재를 그들의 책에 언급하였고, 이 기록은 유럽에도 전해졌다. 또한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의 『동방견문록(東方見聞錄)』에도 고려의 존재가 언급되었으나, 지리적 위치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지 않았다.239)조광, 「서양과의 관계」, 『한국사』 32, 국사 편찬 위원회, 1997.

그러나 ‘지리상의 발견’ 이후 유럽인의 시야가 확대되어 갔고, 그 과정에서 조선에 대한 인식도 점차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것으로 변화되어 갔 다. 조선과 서양인과의 만남은 크게 네 가지 경로와 목적으로 이루어졌다. 첫째, 중국과 일본 나가사키(長崎)를 오가던 서양 선박이 난파하여 조선에 표착(漂着)한 경우이다. 둘째, 그리스도교의 선교를 목적으로 선교사가 직접 조선에 파견되는 경우이다. 셋째, 서양인이 조선의 해안 측량을 목적으로 조선의 해안을 탐사하는 과정에서 조선인과 접촉한 경우이다. 넷째, 조선과의 교역을 목적으로 서양의 상선(商船)이 접근하는 경우이다.

확대보기
『동방견문록』
『동방견문록』
팝업창 닫기

대체로 이와 같은 네 가지 경로를 통해 조선 후기에 조선과 서양인이 직접적으로 접촉하였는데, 이러한 조선과 서양인의 만남의 형태는 시기별로 편차가 있다. 첫 번째의 경우, 즉 조선에 대한 의도적인 접근이 아닌 선박의 난파로 인한 서양 선원의 단순한 표착은 19세기 이전의 기록에서 자주 발견된다. 이에 비해 조선에 대한 서양의 관심이 본격화된 19세기 전반 이후에는 조선을 탐사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해졌으며, 그리스도교의 포교를 목적으로 선교사가 직접 파견되기도 하였다. 특히 19세기 중반 이후로는 조선과 교역할 목적으로 서양의 상선이 파견되면서 이를 거부하는 조선 측과 무력 충돌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1866년(고종 3)의 병인양요(丙寅洋擾)와 1871년(고종 8)의 신미양요(辛未洋擾)는 조선과 서양과의 만남에서 빚어진 무력 충돌을 대표하는 사건이다.

확대보기
『하멜 표류기』의 표지
『하멜 표류기』의 표지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하멜 표류기』
『하멜 표류기』
팝업창 닫기

이와 같이 17세기부터 18세기까지는 표착인과의 조우를 통해 서양인과의 만남이 이루어졌으며, 19세기 이후에는 선교나 교역 등 구체적 목적을 가지고 조선에 파견된 그리스도교 선교사나 서양의 상선을 통해 서양인과 접촉이 이루어졌다. 특히 1876년(고종 13) 개항을 전후로 하여 상당수의 서양인이 조선에 왔으며, 조선에 대한 구체적 기록을 남겼다. 이에 따라 서양인의 조선에 대한 인식은 개항 이전 시기에 비해 좀 더 구체화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인의 조선에 대한 인식이 어떠하였는지에 대한 문제는 주로 개항을 전후로 한 시기에 조선을 방문한 서양인의 기록을 중심으로 검토되었다.240)기존의 연구 성과 가운데 서양인의 한국관에 대하여 전면적으로 검토한 연구는 그다지 많지 않으며, 대부분 어느 한 개인의 한국 인식을 다루고 있다. 또한 주로 개항 이후의 한국 인식에 대한 연구가 주종을 이루고 있다. 개항을 전후로 한 서양인의 한국 인식에 대한 연구 성과는 다음과 같다. 홍이섭, 「벽안에 비친 한국-구미인의 한국 연구」, 『한국 현대사』 6, 신구 문화사, 1971 ; 윤경로, 「Homer B. Hulbert의 한국관-한국 민족과 역사 이해를 중심으로-」, 『한국 사상』 18, 한국 사상 연구회, 1981 : 『헐버트의 한국에서의 활동과 한국관』, 역민사, 1992 ; 신형식, 「일제 초기 미국 선교사의 한국관-Griffis의 Corea, The Hermit Nation을 중심으로-」, 『일본 식민지 지배 초기의 사회 분석』 1, 이화 여자 대학교 한국 문화 연구소, 1987 ; 이광린, 「비숍 여사의 여행기」, 『진단 학보』 71·72, 진단 학회, 1991 : 「헐버트의 한국관」, 『한국 근현대사 연구』 9, 한국 근현대사 연구회, 1998 ; 손정숙, 「구한말 헐버트의 대한 인식과 그 활동」, 『이화 사학 연구』 22, 이화 사학 연구소, 1995 ; 최덕수, 「개항기 서양이 바라본 한국인, 한국 역사」, 『민족 문화 연구』 30, 한성 대학교, 1997 ; 정연태, 「19세기 후반 20세기 초 서양인의 한국관」, 『역사와 현실』 34, 한국 역사 연구회, 1999 ; 이배용, 「서양인이 본 한국 근대 사회」, 『이화 사학 연구』 28, 이화 사학 연구소, 2001.

그런데 본격적으로 서양인이 조선에 진출하기 이전 시기인 17세기부터 19세기 전반의 조선에 대한 몇몇의 기록이 남아 있다. 이 기록은 서양인이 조선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이전에 조선에 대한 그들의 인식이 어떠하였는지를 보여 준다. 또한 이를 통해 당시 조선에 파견된 선교사나 상선이 어떤 정보를 가진 채 조선에 진출하였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스도교의 선교사나 서양의 상선이 직접 진출하기 이전의 기록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하멜 표류기』, 『조선전』, 『조선 서해 탐사기』 등이 있다. 네덜란드인 헨드리크 하멜(Hendrik Hamel)이 남긴 『하멜 표류기(Narrative and Description of the Kingdom of Korea)』는 서양인이 직접 조선에서 체류하고 남긴 가장 유명한 기록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1653년(효종 4)에서 1666년(현종 7)까지 약 13년 동안 조선에 체류하면서 경험한 것을 기록하였는데, 하멜이 조선 탈출에 성공하여 귀국한 1668년 네덜란드에서 처음 출간되었다. 이후 프랑스, 독일, 영국 등에서 잇따라 출간됨으로써 조선에 대한 서양 세계의 인식을 넓혔다.241)당시 출판된 『하멜 표류기』는 판본에 따라 다소 차이가 있으며, 국내에 소개된 『하멜 표류기』도 어떤 판본을 번역하였는가에 따라 차이가 있다. 이 글에서는 국내에서 번역된 여러 판본 가운데 다음의 번역본을 참조하였다. 강준식, 『다시 읽는 하멜 표류기』, 웅진 닷컴, 1995. ; 헨드릭 하멜, 김태진 옮김, 『하멜 일지 그리고 조선국에 관한 기술-1653∼1666-』, 전남 대학교 출판부, 1996. ; H. 하멜, 신복룡 옮김, 『하멜 표류기』, 집문당, 1999.

프랑스의 예수회 신부 장 바티스트 뒤 알드(Jean-Baptiste Du Halde, 1674∼1743)가 쓴 『조선전(Kingdom of Korea)』은 1741년 런던의 와츠사(J. Watts社)에서 발행되었다. 이 책은 본래 『조선전』이라는 제목의 단행본으로 출간된 것이 아니며, 『중국 통사 : 중국 제국, 타타르, 조선 그리고 티베트에 대한 지리적·역사적·연대기적·정치적·자연적 묘사와 그들의 독특한 관습·풍습·의례·종교·예술 그리고 과학에 대한 정밀한 기술(The General History of China ; Description geographique, historique, Chronologique, Politique et L’Empire de la Chine et de la Tartarie chinoise)』이라는 긴 제목으로 출간된 전 4권 가운데 4권에 수록된 조선편(朝鮮篇)이다.242)뒤 알드, 신복룡 옮김, 『조선전』, 집문당, 1999. 이 책은 조선 왕조에 관한 지리적 관찰, 조선의 약사(略史), 조선의 풍물 등 3부로 구성되어 있는데, 중국에서 활동한 예수회 신부들이 모은 자료와 중국 정사(正史)에 나오는 조선에 대한 기록을 이용하여 『하멜 표류기』와는 다른 조선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였다. 특히 그리스도교 선교사가 본격적으로 조선에 파견되기 이전에 사전 학습용으로 활용되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즉, 선교사가 조선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가지고 조선에 들어왔는가를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조선 서해 탐사기(A Voyage of Discovery to the West Coast of Corea)』는 영국 해군 장교 바실 홀(Basil Hall)이 1816년(순조 16)에 조선의 서해안을 탐사하고 1818년에 간행한 탐사기이다.243)바실 홀, 신복룡 옮김, 『조선 서해 탐사기』, 집문당, 1999. 동인도 회사(東印度會社)에 근무하였던 그는 알세스트호(Alceste號) 선장 머리 맥스웰(Murrey Maxwell)과 함께 서해 5도와 군산 앞바다 일대를 측량하였다. 육지에 상륙한 그는 잠시나마 조선인과 조선의 풍물을 접할 기회를 가졌다.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간행한 『조선 서해 탐사기』에서는 지리적 위치 및 특성, 풍습, 조선인의 성품 등 조선의 지리적·문화적 특성에 대해 소개하고 있으며, 홀이 중국에 머물렀던 당시의 지식을 통해 중국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기록하고 있다.

확대보기
『사마랑호 항해기(Narrative of the Voyage H.M.S Samarang)』
『사마랑호 항해기(Narrative of the Voyage H.M.S Samarang)』
팝업창 닫기
확대보기
정의현감 임수룡
정의현감 임수룡
팝업창 닫기

이상의 기록은 19세기 말 서양인이 본격적으로 조선에 진출하기 이전에 조선에 대해 어떠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것이다. 또한 19세기 이후 조선에 진출한 서양 선교사와 상인은 이 기록을 토대로 조선에 대한 사전 정보를 얻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상의 기록을 중심으로 조선 후기 서양인의 조선에 대한 인식과 이해 정도가 어떠하였는지를 살펴보자.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