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1권 서구 문화와의 만남
  • 3 근대 스포츠와 여가의 탄생
  • 01. 몸 위에 새겨진 근대 역사 찾기
심승구

1876년 개항은 근대의 기점이자 근대성을 논하는 출발점이다. 그로부터 40여 년간 우리나라는 서구와의 만남과 접촉을 통하여 전통 사회가 해체되고 근대 사회가 형성되는 동안 수많은 부닥침과 삐걱거림, 뒤틀림의 역사를 겪어 왔다. 충돌과 저항, 계몽과 자각, 이식과 수용 등 근대적 전환의 기폭제가 되었던 이 개화기의 종착점인 1910년에 이르러서는 식민지 수탈로 접어드는 파행적인 근대로 연결되었다. 이 시기는 식민지로 전환하는 어둠과 수난의 전사(前史)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근대성을 획득하기 위한 ‘열정의 시대’이자 ‘기원의 공간’이었다.93) 고미숙,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책세상, 2001, 참조. 체육은 지, 덕, 체의 세 가지 교육 체계 속에서 성립된 몸을 기르는 교육을 말하며, 스포츠는 가장 일반적인 정의로 규칙이 지배하는 경쟁적인 신체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가족의 유사성, 스포츠 제도론의 시각을 덧붙여 이해할 수 있다. 스포츠의 정의 자체가 사회 집단들 사이의 경쟁, 갈등, 타협의 산물이며, 스포츠의 변화 과정에는 겉으로 보기에 스포츠와 아무 관련이 없는 다양한 사회적 요인이 개입해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체육은 교육적 개념이, 스포츠는 즐거움을 찾는 여가 개념이 작동한다. 다만, 몸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근대의 출발은 봉건 사회에서 자본주의 사회로 이행한다는 정치·경제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사유 체제, 삶의 방식, 규율, 습속 등 개개인의 신체와 여가 문화를 변화시키는 차원까지 아우르는 것이다. 그리고 그때 형성된 지층은 20세기를 관통하여 오늘날까지 굳건하게 지속되어 왔다. 서구 근대성의 산물로 출현한 근대 스포츠와 여가는 개항기에 도입된 후로 문명개화(文明開化)와 자강(自强)을 이루는 데 일정한 역할을 담당해 왔다.

그 후 일제강점기와 1960∼1970년대 산업화를 거치면서 서구적 모델에 의해 ‘근대화’되어 감에 따라 근대 스포츠와 여가는 건강과 즐거움을 찾는 수단으로서 거의 유일하고 최종적인 권위를 획득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한편으로 오랫동안 건강과 즐거움을 담당해 온 ‘전통적인 놀이나 스포츠들을 주변화해 가는 과정’이었다. 그 결과 이제 우리는 서구 근대 스포츠의 신체활동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렇게 개화기에 근대 문물과 만나면서 얽힌 여러 기억은 흘러간 과거로 끝나지 않고 오늘날까지 우리의 몸 및 그와 연관한 놀이, 체육, 스포츠 문화에 대한 의식의 일부분을 규정하고 있다. 근대의 주체인 몸이 체험한 역사를 냉정하고 진지하게 분석하여 정리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울러 그 과정에서 서구의 여가와 스포츠의 만남이 오늘날 우리의 삶과 인식에 미친 연관 관계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이 글에서는 몸 위에 새겨진 근대의 역사를 추적하기 위한 하나의 기획으로 “우리나라에서 체육, 스포츠에 대한 기계론적 인식은 언제, 어떤 과정에서 출현하였으며, 그 출현은 어떤 메커니즘에 따라 몸에 대한 인식 틀을 ‘근대적’으로 전환시켰는가?”를 탐구하려 한다. 이는 몸에 대한 기계론적 인식 틀이 개항기에 이식·수용된 서구 근대성의 한 측면으로서, 지금까지 우리 몸이 겪어 온 근대의 역사를 극명하게 보여 주는 한 영역이라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이 문제를 탐구하기 위해 근대 체육 내지 스포츠를 분석 대상으로 삼은 것은 몸을 인식하는 새로운 틀의 출현과 전환에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였으리라는 판단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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