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문화사
  • 31권 서구 문화와의 만남
  • 3 근대 스포츠와 여가의 탄생
  • 06. 근대 스포츠와 여가 탄생의 의미
심승구

개항 이후 우리나라에서 근대의 시간과 공간은 새로운 몸과 몸의 문화를 탄생시켰다. 청결과 위생으로 대변되는 근대의 몸은 말끔한 얼굴과 건강한 몸으로 표상되었다. 근대화의 첨병인 학교가 민족이나 국가 같은 거시적인 영역을 담당한 장소였다면, 목욕탕·이발소·병원·교회 등은 일상의 미시적 영역에서 근대적 규율과 습속을 구성원들의 몸에 새기는 일을 담당하였다. 이들 공간은 근대적 주체인 몸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근대성의 성소 가운데 하나였다.

문명개화의 길은 선망과 동경의 대상인 동시에 이식과 강요뿐인 길이었다. 이 길은 스스로 원하기보다는 강요된 선택이고 수용이었지만, 일단 이 통로를 빠져나오면 근대성을 획득한 문명인으로 변모되었다. 짧은 머리에 수염을 깎은 말끔한 얼굴, 양복에 나비넥타이를 한 신사의 모습은 문명인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하지만 개항부터 식민지로 전락하기 전까지 우리나라의 상황은 소수의 개화 지식인만이 이러한 근대의 몸을 갖추었을 뿐이었고, 아직 대부분의 사람들은 갓을 쓰고 도포를 입은 채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을 위한 자강을 모색하였다.

문명개화는 우리의 자율적인 노력과 함께 외세의 개입이 커지면 커질수록 더욱 빠르게 확대되어 갔다. 특히, 근대의 몸은 문명개화와 자강을 통해 자주적인 근대 국가를 건설한다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거듭나려면 씩씩하고 경쟁력 있는 몸이 되어야 하였다. 따라서 근대 교육 체계인 지·덕·체를 도입하고 체육을 ‘체양’으로 부르면서 강조하기 시작하더니, 국권 상실에 직면하자 체육을 최고의 교육 덕목으로 강조하며 널리 권장하였다.

문명개화와 자강을 위한 체육이 국권 상실의 위기에 맞서 국가와 민족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요 국권 회복의 근간이 되었던 것이다. 이때 체육은 개개인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국력의 기초로서의 체육이었다. 이 시기에 급속히 확대되는 근대 스포츠는 국력의 기초에 경쟁력을 더하는 효과적인 방법이었을 뿐 아니라 국기와 운동가(運動歌)를 통해 잃어버린 국가를 다시 찾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사실 오늘날까지를 포함하여 우리나라 역사에서 국가와 지식층 전체가 체육을 이토록 중요하게 여긴 시기는 없었다.

건전한 정신은 건전한 신체에 있다며 체육의 중요성을 인식한 근대의 신체관은 체력은 국력이라는 목표 아래서 형성되었다. 특히, 자주적인 근대 국가를 수립하기 위해서는 민중의 힘이 증대되고 민권 의식이 고양되어야 하였다. 그 가운데 국민의 신체 자유는 재산권, 언론·출판·집회·결사의 자유 등과 함께 국민의 기본권 확보 운동의 핵심이었다.

한편, 개항은 근대의 시간과 공간을 새롭게 부여하였다. 공휴일이라는 개념이 바로 서구의 시간 개념 속에서 탄생한 쉬는 날이었다. 한 달 또는 보름의 기준에서 일주일의 개념으로 바뀐 것이다. 공간도 마찬가지였다. 기존의 공간은 전통의 길이었다. 사람, 소나 말, 가마와 마차가 함께 다니던 공동의 길이었다. 근대는 이러한 길을 구분하기 시작하였다. 이제 도시라는 공간에 사람과 우마가 지나다니는 길이 구분된 것이다. 아울러 근대의 공간이 채워지기 시작하였다. 학교, 교회, 목욕탕, 이발소, 병원, 실내 공연장, 극장, 술집, 관청 등 다양하게 기능하는 건축물들이 세워졌다.

개항기 이후 새로이 생겨난 시간 개념과 공간 속에서 우리나라 사람은 새로운 몸과 여가 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다만, 여가의 시간과 공간은 아직 대중의 몫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학생들을 중심으로 대중여가와 스포츠 활동이 진행되었다. 대중여가를 선도할 인재들이 양성되었다. 이들의 손에서 우리나라에 근대 스포츠와 대중 여가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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